지역에서 본 세상

파업권 부정하는 법률과 '뻥파업'

김훤주 2011. 7. 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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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에서 나오는 '총파업' 얘기를 듣다 보면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지난 6일 2시간 시한부 파업을 벌이면서 총파업이라는 표현을 썼다.

금속노조 경남지부의 경우 사업장에 따라 참여 여부가 엇갈려 전체 조합원 1만2000명 모두가 파업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전면파업'도 못되는 파업인데도 '총파업'이라는 말을 썼다.

전국언론노조도 '종합편성채널 직접 광고영업 규제'를 주장하는 투쟁을 벌이며 '총파업'을 입에 올렸다. 금속노조는 부분적이나마 실제 파업을 했지만 언론노조는 그냥 집회만 하는 선에서 그치면서도 이렇게 한다.

아시는 대로 총파업은 사업장 노조든 산업별 노조든 단독 조직은 절대 할 수 없는 단체행동이다. 해당 지역이나 나라의 모든 산업 모든 노동자가 일손을 놓아야 총파업(general strike)이라 할 수 있다. 개별 노조가 할 수 있는 단체행동은 '전면 파업'이 최대치다.

단체행동으로는 이밖에도 피케팅이나 태업처럼 세기가 상대적으로 덜한 것에서부터, 부분파업 파상파업 동정파업 지명파업 게릴라파업 순환파업 등등 같은 파업이라도 여러 가지가 있다.

7월 6일 창원 만남의 광장에서 열린 금속노조 경남지부 '총파업 결의대회' 사진. /경남도민일보


그런데도 우리 노동계는 어떤 파업을 해도 대부분 '총파업'이라 한다. 그러나 진짜 총파업은 실행하기가 매우 어려운 투쟁 전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29년 1~4월 원산노동연합회가 이끈 원산총파업과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가 이끈 1946년 9월총파업, 그리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벌인 1996~1997년 총파업 셋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 6·25 전쟁 이후 최초라고 하는 민주노총 총파업은 산업별로 노조들이 골고루 참여했지만 총파업에 걸맞은 위력을 보이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만큼 조직력과 지도력과 기획력을 비롯한 실력을 탄탄하게 갖춰야 할 수 있는 가장 수준 높은 전술이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총파업'이 남발되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해 보니 노동조합들의 어려운 사정이 떠올랐다. 파업 같은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도 당장 파업을 할 처지는 되지 못하니까 말이라도 큰 소리를 내보자는 심정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실제로 눈길을 노동현장으로 돌려보면 비정규직, 산업재해, 노조 탄압, 개악 노동법 문제 등등 싸워야 할 과제는 많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파업을 비롯한 단체행동을 법률과 제도가 꽁꽁 묶어두고 있다. 헌법에서는 단체행동권과 단결권·단체교섭권 같은 노동3권을 보장한다면서도 하위 법에서는 사실상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으로 규정되면 그 파업은 바로 박살이 난다. 특공대 같은 경찰이 동원돼 파업 현장을 장악하고 파업 참여 노동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단체행동권을 보장한다면 비록 그 파업이 불법이라도 당장 '진압'해서는 안 된다. 불법이든 합법이든 파업이라는 단체행동을 할 권리는 제대로 보장해 주고 불법한 부분이 있다면 그에 대해서는 사후에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노동계 자체에서는 이런 '뻥파업'에 그치는 '총파업'이 비판받는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실제로도 그런 줄 안다. 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보면 이 같은 노동계의 안타까움이 얼핏 읽힌다.

'말로만 하는 총파업'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 '양치기 소년'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도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와 함께 파업을 비롯한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부정되는 현실, 더욱이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인데도 그보다 아래인 법률과 제도로 봉쇄되고 있는 현실 또한 마찬가지 비판받아야 하고 바로잡혀야 한다.

김훤주
※7월 26일치 <경남도민일보>에 실었던 글을 조금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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