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저 어린 남매는 왜 저리 '디비 쪼을까?'

김훤주 2011. 6. 2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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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표준말에 '디비 쪼은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울 표준말로 하면 '뒤집어 죈다'쯤이 될 것입니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원래 의도나 취지와는 거꾸로 처리해 나갈 때 이런 말을 쓴답니다. "니는 그거를 뭐 그리 디비 쪼아노?" 이런 식이지요.

제가 알기로 이 말은 화투판에서 나왔습니다. 화투로 노름할 때 자기 패를 상대에게 읽히면 안 되기 때문에 대부분은 화투짝을 두 손으로 감싼 채 한 장씩 한 장씩 조금씩조금씩 조심스레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짝 '쪼으고' 있는데, 문제의 화투짝이 '디비져(뒤집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심스레 '쪼으는' 일이 '디비진' 화투짝 때문에 '말짱 도로묵'이 돼 버리고 더 나아가 상대에게 패가 읽히는 불이익까지 당하게 됩니다.


6월 17일 남해에 갔다가 한 초등학교에서 이런 인형상을 봤습니다. '책 읽는 형상'은 여자아이 혼자 모자 쓰고 앉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여기는 오누이가 나란히 앉아 같은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좀 색다르다 싶은 느낌이 들어 다가가 봤더니 더욱 우스운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책을 '디비 쪼으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책 안쪽을 보지 않고 표지를 보고 있습니다. 책 가운데 튀어나온 부분이 아래로 가 있지 않고 위로 솟아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디비 쪼으게' 만들었을까 싶었습니다. 행여나 교육 당국의 틀에 박힌 독서 장려 정책을 은근히 비웃어 주려고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가능성 0.000001%도 없는 생각까지 한 번 해 봤습니다.

어쨌든, 저로 하여금 웃음을 짓게 만든 요즘 보기 드문 풍경이었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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