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사람이야기

송미영 이야기(9)냄새도 맡기 싫은 중국음식

기록하는 사람 2011. 7. 4.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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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모두 달라붙어 중국음식점을 차렸지만 장사는 쉽지 않았다. 평소 요리 솜씨가 있는 사람이라도 중국음식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따로 배워야 했지만, 월급을 200만~300만 원씩이나 주면서 고용한 요리사는 절대 요리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렇게 1년 후, 장부를 정리해보니 돈을 벌기는커녕 빚만 남았다. 결론은 요리사 인건비 때문.

안 되겠다 싶어 미영 씨가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너댓 살밖에 안 된 아들은 뒷전에 두고 주방에서 설겆이를 하면서 어깨너머로 요리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자신감이 붙자 요리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미영 씨의 손목이 워낙 약해 후라이팬을 돌리는 건 무리였다. 남편 도연 씨도 주방에 투입됐다.

"주방도 맡고, 배달도 했죠. 보통 중국집과 달리 우리는 새벽까지 배달을 했어요. 하루는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미끄러지는 바람에 짬뽕과 자장면을 길바닥에 다 쏟아버렸어요. 그걸 바로 앞 여관집 주인 할머니가 본 거예요."

그 할머니는 쏟아진 음식을 다 치우고 가라고 고함을 쳤다. 그 때가 새벽 두 시였다.

"할머니, 제가 다 치우긴 할텐데요. 빗자루하고 쓰레받기 좀 빌려주세요."

그 때 할머니가 받아친 말을 미영 씨는 평생 잊지 못한다.

"이년아, 니는 손도 없나?"

미영 씨는 쏟아진 국수를 손으로 그러담는데, 빗물과 눈물이 섞여 흘러내렸다. 이를 악물었다.

지금도 식당을 운영하고 있지만, 미영 씨에게 중국집은 쳐다보기도 싫고, 중국음식은 냄새도 맡기 싫은 대상이다.


그렇게 악착같이 번 결과 미영 씨 가족은 1년만에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


이 때 남동생이 독립해 나가 새로 중국집을 차렸다. 그러나 그 식당도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창원 중앙동 대동관을 처분하고, 이번엔 남동생의 중국집에 미영 씨가 구원투수로 투입됐다.

"PC방이나 당구장, 오락실에서 손님이 자장면을 주문하면 한 번 주문 때마다 그 업소에 500원의 리베이트를 줬어요. 그랬더니 8개월만에 그 일대에서 가장 장사 잘되는 중국집이 돼버렸죠."

그러나 두 번의 중국집 운영으로 인해 미영 씨는 아들에게 정말 못할 짓을 하고 말았다. 너댓 살바기 아들을 방치하는 바람에 큰 상처를 남긴 것이다.

"딸은 초등학교에 가야 하니까, 그동안 반지하 단칸방에 김밥 한 줄과 요강단지 넣어놓고, 그 어린 것을 가둔 채 문밖에서 자물쇠를 잠궜어요. 아이를 개처럼 키운거죠."

밤에는 식당에 아들을 데려다 상다리에 묶어놓은 후, 새벽까지 빈 그릇을 찾으러 다닌 적도 있었다.

"그 때 아들이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았나 봐요.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아예 다 빠져버렸어요. 병원에 가보니 스트레스 때문이라더군요."

미영 씨 인생에서 유일하게 미안한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아들인 까닭이다. 지금 중학생이 된 아들녀석은 그래도 엄마 걱정만 한단다.

"쬐그만 게 '엄마 고생 좀 그만 해라'는 말을 달고 살아요. 엄마 고생한다고 용돈 달라는 소리도 안 하는 녀석이예요."

미영 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방안에 있는 아들을 보니 지금은 머리가 까맣다.

"지금도 병원 치료를 계속 받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아직도 듬성듬성 빠진 데가 있어요."


남동생 중국집에서 나온 후부터 중국음식은 이제 냄새도 맡기 싫다고 한다. 중국요리에 일가견이 있지만, 굳이 호호국수를 창업한 이유다. 호호국수가 배달을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호호국수를 창업하기까지도 무수히 많은 직업을 거쳤다. 낮에는 분식집, 밤에는 갈비집에서 서빙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새벽에는 24시 찜 배달업소에서 설겆이를 하기도 했다. 쉬는 날에는 스티커 작업도 했고, 목욕탕 청소, 신문 배달, 물티슈 납품업도 해봤다. 비정규직 용접공으로 일했던 공장도 여럿 된다. 정수기 필터교환 코디로도 일했고, 보험회사 콜센터 근무도 했다.

콜센터 근무 때 문제가 생겼다. 하루종일 앉은 채 전화통을 붙잡고 있다 보니 덜컥 허리 디스크가 왔다. 물건을 들다 뚝! 했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병원에 실려가 바로 수술날짜를 잡았다.


수술 당일, 남편도 일하러 보내고 혼자 병원에 갔다. 마취 직전 의사가 물었다.

"왜 혼자 왔어요? 가족이 없나요?"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아줌마가 간도 크네. 그래도 전신마취를 하는데, 죽음도 겁나지 않아요?"

"그게 뭐가 무서워요? 죽으면 죽는 거지."

"마취 들어가기 전에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만일 이곳에서 죽는다면 가장 보고싶은 사람이 누구예요?"

"아들이 보고싶습니다."

"남편도 아니고?"

"남편과 아버지에겐 그동안 내가 줄 수 있는 걸 모두 줬습니다. 그러나 내 아들에겐 아무 것도 해준 게 없습니다."

눈물이 주르륵 귓전을 적셨다. 의사가 미영 씨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마취 들어갑니다. 수술 자~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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