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주완

경주에서 발견한 박정희 송덕비

기록하는 사람 2008. 5. 26.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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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대학 땐 적잖이 데모도 해봤지만, 한총련과 그 이전의 전대협이 내놓는 유인물이나 대자보에서 유난히 거부감을 느꼈던 게 있습니다. '000 의장님께서 연행되셨습니다'는 따위의 어처구니 없는 존대어 때문이었습니다.

대외적으로 발표되는 성명서 같은 데서 '~님께서 ~되셨습니다'는 식의 표현을 쓰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더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수 국민이 대통령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게 상식이고, 전대협이나 한총련 의장 또한 그 조직을 구성하는 학생 대중의 대표 심부름꾼일 뿐 대중보다 높은 사람은 아닙니다.

저는 한총련이나 전대협이 그런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스스로 북한 추종주의를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위원장께서 교시하시었습니다' 따위의 표현을 쓰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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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난 주말(24~26일) 저희 가족과 함께 신라의 천년고도였던 경주에 역사기행을 갔다가 대능원 천마총 입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아부성 빗돌을 발견했습니다.

1976년 10월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세운 '천마총 사적기'라는 빗돌이었는데, 숫제 '박정희 송덕비'에 가까웠습니다. 빗돌의 문구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곳은 국토통일의 기상이 넘치고 민족문화가 찬란하게 꽃핀 신라의 천년고도 서라벌의 옛터다.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신라의 통일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고 찬란한 민족문화를 기리 보존하기 위하여 경주지구 개발의 대영단을 내리셨다.
(...중략...)
우리 민족문화의 전통을 발전 한국의 위대한 기상 속에 재현코져 하는 그 드높은 뜻을 여기 새겨서 기리 전하고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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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북한 김일성이나 김정일에 대한 그것이나 별로 다를 게 없었습니다. 한총련, 전대협을 비판하기도 머쓱합니다.

2년 전 중국 여행을 갔더니 관광지 곳곳에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이름이 새겨져 있더군요. 장쩌민과 김일성, 김정일, 박정희, 그리고 한총련까지...공통점이 뭘까요?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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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지역신문 기자의 고민과 삶을 담은 책. 20여 년간 지역신문기자로 살아온 저자가 지역신문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기자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풀어낸다. 이를 통해 서로 비슷한 고민을 가진 지역신문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촌지, 살롱이 되어버린 기자실, 왜곡보도, 선거보도 등 대한민국 언론의 잘못된 취재관행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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