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폐왕성 자리에 갔더니 안개만 자욱하더라

김훤주 2011. 6. 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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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에 가면 둔덕면 우두봉에 폐왕성이 있습니다. 고려 때인 1170년 정중부을 비롯한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켜 당시 24년째 임금 자리에 있던 의종(1127~73)을 쫓아낸 적이 있습니다.

그 의종이 1170년부터 1173년까지 살았던 데가 바로 여기라고 합니다. 가서 보니 성벽은 장하게 쌓여 있었고 가운데에는 먹을 물로 쓰려고 빗물을 모아두던 시설도 복원해 놓고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의종은 여기서 3년안팎을 살다가 경주로 옮겨진 다음 정중부 일당에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김보당이라는 인물이 정중부에 맞서 군사를 일으키면서 명분을 얻기 위해 거제에서 의종을 데리고 나와 경주에 갖다 뒀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중부는 김보당을 물리치고 나서는 당연한 순서로 의종을 죽이고는 그 주검을 경주 가까운 데 있는 절간인 곤원사 북쪽 연못에 던져버렸다고 합니다. 더없이 서글픈 한살이입니다.

그 폐왕성을, 요 며칠 전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비가 조금씩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였습니다. 이 서글픈 인생을 거제에서는 그래도 '전하'라고 쳐 주는 모양이었습니다. 의종이 건넜던 바다를 '전하도목'이라 한다는 안내판을 얼핏 본 것 같습니다.

의종의 한살이는, 앞에 핀 엉겅퀴 꽃 같은 존재이겠지요. 틀림없이 뒤에 서 있는 소나무 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이들 소나무조차도 언젠가는 스러지고 말겠지만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른쪽 아래에 있는 바위는 어떨까요? 이 또한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갈라지고 쪼개져서 언젠가는 가뭇없이 사라지겠지요.

사라진들, 사라지지 않은들, 모두 자기 깜냥 바깥입니다. 그저 눈앞에 있는 이것들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누리면서 살다 가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그이의 한살이는 덧없고 부질없었습니다. 그 부질없었던 자리에 이렇게 안개가 자욱하게 끼여 있었습니다. 뭐 특별하게 쓸쓸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습니다만, 찍고 보니 사진이 그럴 듯한 것 같아서, 한 번 올려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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