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교훈 때문에 인생 조진 사람

김훤주 2008. 2. 2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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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校訓)이라 하면 학교가 내세우는 교육하는 목표나 이념쯤이 될 것입니다. 이 교훈 때문에 쫄딱 신세를 조진 사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다닌 고등학교의 교훈은 ‘언제나 어디서나 양심과 정의와 사랑에 살자.’였습니다. 이 고등학교는 이 교훈을 학교 4층 높이 건물 벽에다 ‘양심 정의 사랑’을 적어 놓았습니다. 교실마다에는, 이 교훈 전체 문장을 붓글씨로 쓴 액자를 잘 보이는 앞 쪽에 걸어놓았습니다.

이 사람이 다닌 대학교의 교훈은 ‘자유 정의 진리’였습니다. 이 ‘자유 정의 진리’는 학교에서 발행하는 온갖 물건들에 다 적혀 있었습니다. 이 ‘자유 정의 진리’는, 학교 잘 보이는 한가운데에 놓인 빗돌에도 새겨져 있어서 오가는 이들이 보지 않으려도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학교를 학교로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는 사람됨의 바탕을 닦는 이른바 전인 교육을 하는 데라 생각했고 대학교는 큰 학문(大學)을 하는 학교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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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그래서 교훈을 두고 전인교육과 큰 학문을 하는 목적 또는 취지라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냥 보기 좋으라고 걸쳐 놓은 장식품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한 셈입니다.

이 사람은, 고등학교가 대학교 가기 전에 다니는 학교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학에 가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학교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대학교를 나온 많은 이들이 대부분 직장에 들어가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학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터전일 뿐이리라고는 전혀 여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대학 졸업하고 망치는 인생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이 서는 자리는 언제나 비주류였습니다. 사회 전체 흐름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자기가 몸담고 있는 운동의 흐름에서조차 이 사람은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하는 일은 언제나 돈 안 되는 짓거리였습니다.

이 사람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런데 이보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 사람은 자기 인생이 이미 망쳐진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이 하는 얘기를 한 번씩 잘 들어보면, 이 사람 인생이 이렇게 망가진 원인이 교훈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교훈이 그냥 입에 발린 소리임을 이 사람이 일찌감치 알아채지 못한 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아직도, 사실은 속으로 조금은 ‘이게 아닌지도 몰라’ 회의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양심과 정의와 사랑과 자유와 진리를 우리 사회에 실현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 인생이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은, 전혀, 없는 셈입니다.

아름답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 구질구질한 이야기였습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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