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산업재해인가 아니면 인간 학대인가

김훤주 2011. 4. 1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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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은 '세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라고 합니다. 1993년 이날 심슨 인형을 만들던 태국 케이더 공장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노동자 188명이 목숨을 잃었답니다.

당시 사용자는 노동자들이 인형을 훔쳐갈 수 있다는 이유로 공장 문을 닫아걸었고, 그래서 노동자들이 탈출을 하지 못하고 떼죽음을 해야 했습니다.


민주노총과 산업안전 관련 단체들이 이런저런 행사를 한다는 포스터가 저희 공장 들머리에 붙어 있습니다. '세 시간에 한 명씩 산재로 죽고 있다' 등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우리나라 산업재해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올해 들어 <경남도민일보>에서 취재한 산업 재해 사망 사고입니다. 모두 열다섯인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저는 이것들이 과연 산업 재해이기만 할까 하는 의심이 있습니다.

4월 9일 창원 봉암동 한 공장에서 30대 ㄱ 씨가 2t가량 기계 덮개에 깔리는 바람에 크게 다쳐 10일 숨졌습니다.

4월 1일 낙동강 살리기 사업 18공구 공사가 벌어지는 함안 밀포마을에서 덤프화물차를 모는 50대 ㄴ씨가 차 안에 엎드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3월 31일 김해 한 공장에서 PVC수지 원료 혼합기를 수리하던 20대 ㄷ씨가 기계와 롤러 바닥에 끼여 숨졌습니다.

3월 30일 김해의 다른 공장에서 40대 중국동포 ㄹ씨가 플라스틱 분쇄기에 몸이 빨려들어가 현장에서 숨졌습니다.

밑줄 친 부분을 좀 더 눈여겨 봐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3월 28일 창원 진해구 한 공장에서 철제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50대 ㅁ씨가 4월 3일 숨을 거뒀습니다.

같은 날 창원 봉암동 한 자동차 정비소 탈의실에서 40대 ㅂ씨가 옷을 갈아입다가 엎어져 숨진 채로 발견됐습니다.

3월 5일 창원 진해구 STX조선해양에서 프로펠러를 청소하려고 물에 들어갔던 20대 ㅅ씨가 숨졌습니다.

같은 날 통영시 SLS조선에서도 협력업체 30대 노동자 ㅇ씨가 15m 아래로 떨어지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2월 25일 창원 덕동 바닷가에서 수산물 가공업체 직원인 50대 ㅈ씨가 지게차에 깔려 숨졌습니다.

2월 9일 함안 칠서지방산업단지 한 공장에서 하도급업체 50대 노동자 ㅊ씨가 크레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1월 31일에는 거제 서문 삼거리에서 블록 운반을 위해 신호 작업을 하던 50대 ㅋ씨가 지게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1월 12일 창원 신촌동 한 압출 공장에서 30대 중국 출신 노동자 ㅌ씨가 지게차와 용기 사이에 끼여 숨졌습니다.

1월 9일 같은 창원 신촌동 한 주물공장에서 50대 ㅍ씨가 지게차에 치여 숨을 거뒀습니다.

같은 날 창원 북면 하천리 낙동강 살리기 17공구 현장 모래 채취선에서는 60대 ㅎ씨가 강에 빠졌다가 이튿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1월 4일 김해 한 업체 기숙사에서 심하게 감기 몸살을 앓던 30대 인도네시아인 ㄱ씨가 숨졌습니다.

어린이 학대에는 때리거나 밥을 안 주거나 성폭행하거나 괴롭히는 것 말고 그냥 방치하는 경우도 포함이 된다고 합니다. 어린이를 혼자 집에 내버려 두고 돌보지 않는다면 바로 그것이 학대라는 것입니다.

동물 학대 또한 심하게 때리거나 잔인하게 상처를 입히거나 죽이는 일 말고, 나쁜 상황으로 몰아넣는 행위도 해당이 됩니다. 밀폐 공간에서 몸통을 돌릴 수도 없는 상태로 짐승을 사육하면 바로 동물 학대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산업재해는 어떠신지요? 모든 작업 현장은 위험하고 불안합니다만, 안전 장치를 조금만 해도 이런 참담한 사고는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해서 위험하고 불안한 요소를 최대한 없애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런 목적으로 시간과 돈을 쓰는 데 지나치게 인색합니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 안전 장치를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때가 많습니다. 앞에 나온 분쇄기나 롤러 같은 경우는 사람이 안에 있으면 절대 작동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또 충분히 할 수 있는 기술이 된다고 압니다. 그런데도 하지 않습니다.

또 지게차를 움직일 때는 사람을 하나 붙여서 신호를 하도록 규정에는 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은 데에 있는 다른 노동자를 지게차가 깔아뭉개 버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특히 사용자 처지에 가까운 이들은 이런 것을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기고 맙니다. 상황이 이런 만큼 법률이라도 추상 같으면 좋으련만, 안전 장치를 완벽하게 강제하지 않으며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처벌도 세게 하지 않습니다.

물론 일하는 사람의 실수가 원인인 경우도 없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실수가 곧바로 사망이나 중상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산업 재해는 그래서 산업 재해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몇 푼 안 되는 임금으로 작업 현장에서 탈출하지 못하도록 묶어둔 채로, 또 그 작업 현장 곳곳에 위험하고 불안한 요소를 흩어 놓은 채 자행하는 인간 학대라 해야 정확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4월 12일치에 실었던 글을 많이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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