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자식이 탈세 공범 되기를 바라는 세상

김훤주 2011. 2. 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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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0년 12월 25일치 15면 책 소개하는 머리기사를 보면 "무임승차의 고수들 '탈세가 가장 쉬웠어요'"라고, <프리라이더-대한민국 세금의 비밀>이라는 책 내용을 일러주는 기사가 나옵니다.

허미경 기자가 쓴 글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참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이 지은 책을 조곤조곤 일러주는데, 기자 본인도 읽고는 꽤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습니다.

첫머리에서 허미경 기자가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보다 경제 발전이 늦은 나라들을 여행이라도 할라치면, 우리는 그 사회의 만연한 부패와 뇌물 고리에 관한 소문들을 주워섬기느라 침이 마르기 십상이다.

마치, 우리는 이제 그 문제에서 자유로운 양 우쭐하면서 말이다. 한국 사회는 공정한가. 대개의 한국인들은 '그렇진 않다'고 답할 것이다. 다시 '한국은 부패한 사회인가'라고 묻는다면 이번에도 '그렇진 않다'고 답하기가 쉬울 것이다.

우리를 나로 좁히면, '공정한 사회는 아니어도 시스템은 움직이는 사회, 따라서 심하게 부패하진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고 은연중에 믿고 싶었다. 과연 그런가."


그런데 읽어보니까 '시스템은 움직이지 않고', '심하게 부패하지 않진 않은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적어도 세금 시스템에 관한 한, 한국 사회는 불공정함을 넘어서 부패, 곧 타락의 상태에 놓여 있음을 재삼 상기하게 된다"는 문장이 바로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현행 과세제도가 왜 잘못인지 짚어내고 또 탈세가 쉬운 까닭을 일러줍니다. 직장인 근로소득에는 한 치 어긋남 없이 제대로 매기면서도 우리 사회 지배집단의 불로소득에는 흐물흐물 허물어지는 구조와 현실을 함께 보여줍니다.

우리 "세금제도는 '1970년대 개발연대'에 만들어졌"는데, 당시 한국 경제는 '자산경제'보다는 '생산경제'가 중심이었답니다. "곧 기업이 공장을 가동하고 그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월급을 받아 소비지출을 하는 경제가 주축을 이뤘다."

그래서 세금제도도 생산에서 유통을 지나 소비에 이르기까지 과정에 세금이 주로 매겨져, "부가가치세·법인세·근로소득세가 국세 수입의 3대 축을 형성했"고, 세상이 달라졌는데도 "조세체계 근본틀이 바뀌지 않고 있"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어집니다. "2000년대 내내 부동산 값이 폭등하고 주식 거래가 활발해지며 주식·부동산으로 대표되는 자산경제 규모가 비대해졌다. '7500조원의 자산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으로 대표되는 생산경제의 7배를 넘어섰다."

"그런데 자산경제의 각종 자본 이득, 이자·배당 소득에 대해 걷는 세금은 전체의 17.8%에 불과하다. 자산경제 규모는 생산경제의 7배인데 그 세금은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지은이는 따라서 대부분 자산소득이 '불로소득'인 셈이라고 말한다.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규모는 자산경제가 생산경제보다 7배 큰 반면 세금은 자산이 생산에 비춰 20%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자산으로 말미암은 소득에 대한 세금이 생산으로 말미암은 소득에 대한 세금과 같은 덩치가 되려면, 7 곱하기 5 해서 35배가 많아져야 합니다.

"집값이 올라 수억 차익이 생겨도 1가구1주택일 경우 시가가 9억원을 넘지 않는 한, 세금이 필요 없다. 주식으로 큰돈을 벌어도 역시 세금이 필요 없다. 국내 부동산 보유세 부담액은 부동산 자산가치의 0.09%에 불과한데도 부유층은 '세금폭탄'이라 호도한다. 실질 보유세율이 1%를 넘는 미국 같은 나라는 세금 핵폭탄이 떨어지는 나라인가."

그러므로, 우리 사회 부동산 보유세를 미국 수준으로 맞추려면 지금보다 적어도 11배 끌어올려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나라 극우 보수들은, 미국 따라 하는 데는 이골이 났으면서도 이런 대목에서는 절대 나서지 않습니다.

지배집단에는 아주 적은 비율로 세금을 물리지만, 이런 세금조차 물지 않는 분야가 많고, 그것이 일부에 국한되지 않은 현실이 더 문제라고 기사는 이어 말하고 있습니다.

"탈세의 온상 지하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의 10~30%에 이른다". "1993년 금융실명제가 도입됐지만 이를 비웃는 차명거래는 재벌 기업들 사이에 만연해" …… "태광그룹, 신한은행, 씨앤(C&)우방, 한화그룹 등의 검찰수사에서 차명계좌를 통한 거액 비자금들이 쏟아졌다."

"특히 부패와 비자금의 큰 젖줄로 건설업계"가 지목돼 "다단계 하도급을 따라 갖은 비자금이 만들어지고 상향식 뇌물과 향응접대가 끊이지 않"고, "건설업계에서 매년 10조원 이상의 비자금이 만들어지고 2조원 넘는 탈세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탈세는 "일부 악덕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데 허미경 기자는 "(삼성의)홍라희씨가 미술품 구입에 열을 올린 이유"를 <프리라이더> 내용에서 꼽습니다. "재벌들의 비자금 조성과 이를 위한 회계분식, 탈세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본보기가 "바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일가의 차명거래를 통한 비자금 조성과 탈세, 탈법적 상속"이라는데, 실상은 이렇습니다. "삼성 특검 결과 '이 회장은 4조5천억원의 차명 재산을 자기 재산으로 인정받았"으나 "과세시효 15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한 푼 세금도 내지 않았다."

허미경 기자는 글쓴이의 말을 빌려 "특검 주장대로 4조5천억 비자금이 모두 상속 재산이라면 상속세법상 여러 공제를 감안해도 이 회장은 2조원가량의 상속세를 냈어야 한다"고 일러줍니다.

2010년 12월 25일치 15면에는 이 기사 말고 다른 기사도 실렸는데, 이 또한 참 재미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보면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신문 아래 오른쪽에 놓인 두 기사 때문입니다.


하나는 <머리가 좋아지는 아이 밥상의 모든 것>입니다. 한의사가 쓴 아이의 머리와 몸을 보살피는 건강 비결서랍니다.

"뇌를 좋게 하려면 뇌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또 그게 장에서 잘 흡수되게 해야 한다. 흡수되더라도 피를 타고 뇌로 잘 전달돼야 하는데 목과 어깨가 굳어 있으면 잘 올라가지 않는다. 뼈대가 비틀어져 있으면 머리도 아프고 키도 안 큰다."


다른 하나는 <오늘 첫 출근합니다>입니다. "지금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사원이 된 박종휘씨.

취업 서류 전형 한 번 통과하지 못한 채 대학을 졸업했고 취업 삼수를 하면서 1년 반 동안 원서를 189번 제출하고 면접을 37번이나 봤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한 취업 준비 끝에 깨달은 건 '취업은 요령이자 테크닉'이란 것. 서류 전형부터 최종 면접까지 취업 전선에서 체험한 모든 것."


같은 날 같은 지면 머리기사 <프리라이더>와 꼬리기사 둘을 나란히 놓으면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의 목표와 지향이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의 목표와 지향은, 좀 거칠게 말한다면, 바로 부패와 타락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겠지만, '머리가 좋아지는 아이 밥상의 모든 것'이 궁금한 대부분은 자기 아이가 머리가 좋아져서 학교에서 높은 성적을 받고 이른바 명문대학에 들어가 삼성이나 현대 LG 같은 대기업에 취직하기 바랍니다.

아니면 변호사나 세무사나 회계사 같은 전문 직업인이 되거나 글쓴이 같은 (한)의사 또는 행정고시 외무고시 따위를 거쳐 고위직 공무원이 되기를 바랄지도 모릅니다.

이날치 한겨레 15면 머리기사가 사실이라면, 대부분 '대기업들과 그 우두머리들'은 부패 타락 수준에서 탈세를 저지릅니다. 그러므로 여기 취업은 그이들이 탈세를 할 수 있는 바탕을 자기 노동으로 마련해 주는 꼴이 됩니다.

변호사 같은 전문 직업인이나 행정고시를 합격한 고위직 공무원들도, 다는 아니지만,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보자면, '대기업들과 그 우두머리들'의 부패와 타락 수준에서 저지르는 탈세를 거들거나 부추기는 역할을 합니다.

대가는, 다른 데보다 많은 급여가 되겠지요. <오늘 첫 출근합니다>도, 그래서 잘 팔릴 것입니다. '탈세의 말단이 되기 위해' 189번 원서를 내고 37번 면접을 본 박종휘씨, 그런 끝에 대기업 사원이 된 박종휘씨를 잔뜩 부러워하는, 우리 사회의 주된 흐름을 대변하니까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적어도 '대기업들과 그 우두머리들'이 부패와 타락 수준으로 탈세를 벌이고 그 결과 사회 구성원이 공평하게 누려야 할 복지나 생활 보장 수준이 낮아진다고 여기는 이라면, 자기 자식한테 이런 인생을 강요하거나 권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기업들과 그 우두머리들'이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대기업들과 그 우두머리들'의 졸개가 되기를 자기 자식한테 강요하고 권해도 무방하겠지만 말입니다.

자기 자식의 하나뿐인 일생을 우리 사회 지배집단의 탈세와 부패와 타락의 바탕을 마련해 주는 데 써라고 하는 것은 자기 모순일 뿐 아니라 자식한테도 인간적으로 할 짓이 아니라고 저는 여겨져서 하는 생각입니다.

좀 못 먹고 못 입고 살기가 불편해도 자기 인생을 자기 뜻대로 마음껏 자유롭게 누리는 길도 있다고, '대기업들과 그 우두머리들'의 뒤치다꺼리나 앞길 닦아주기보다 더 보람찬 일들이 사회 곳곳에 널려 있다고 일러주는 것입니다.

물론 자식들이 '대기업들과 그 우두머리들'의 종 노릇을 자임하겠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말을 한 번은 해 줘야 어버이 된 노릇을 다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김훤주

프리라이더 - 10점
선대인 지음/더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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