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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동 아케이드에서 70년대의 흔적을 담다

기록하는 사람 2010. 10. 3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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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마산 회원천을 복개해 그 위에 건축한 오동동 아케이드(자유시장)가 40년만에 헐린다는 이야기는 앞서 몇 차례 포스팅한 바 있다.

마지막 남은 70년대 술집촌을 찾아서
2010년에 마지막으로 보는 70년대 풍경
마산 오동동 아케이드를 아시나요?
37년만에 사라지는 '오동동 아케이드'(이승환 기자)
정동재 마산자유시장번영회장이 전하는 40년사(이동욱 기자)

오동동 아케이드는 마산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 노동자들이 5만여 명에 이르자, 이들 소비층을 흡수하기 위해 만든, 당시로선 꽤 현대적인 시장이었고, 그 주변은 각종 술집으로 넘쳐났다. 40년이 지나 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도 간판에는 '새시장'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붙어 있다.


지난 6월 12일 철거되기 전 마지막 모습을 남겨두기 위해 오동동 아케이드를 찾았다. 앞의 포스팅에 이어 네번째 기록을 남긴다.


아케이드 2층에 있는 공중화장실 입구다. 90년대에 한창 유행했던 국회의원들의 선물용 시계가 붙터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지금은 목사가 된 김호일 전 국회의원의 이름이 박혀 있다. 금뱃지 모양으로 금칠을 한 이런 시계는 김호일 의원뿐 아니라, 90년대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선물용으로 제작해 개업집 등에 제공했던 것이다. (☞목사 된 김호일 "고 1때 이미 결심")


화장실 사용수칙이 벽면에 붙어 있다. 전화번호 국번이 두 자리 숫자인걸로 보아 이 역시 아주 오래 전에 붙여놓은 것으로 보인다. "화장실 사용후 다음 분을 위해 실내에 있지말고 돌아갑시다"라는 수칙이 눈길을 끈다. 볼일을 다 본 후에도 화장실에 계속 죽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았나 보다. 뭘 했길래...


금연구역 표시를 사인펜으로 흡연구역으로 바꿔놨다. ㅎㅎㅎ 애연가로선 반가운 장난이다.


지금은 용도 폐기된 공중전화 부스가 철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아케이드 옥상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사진이다.


아케이드 옥상에 있는 텔레비전 안테나이다. 요즘은 이런 안테나를 보기도 쉽지 않다.


70년대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붓글씨체의 간판이다. 이제 이런 간판은 영화 촬영 세트장에서나 볼 수 있다.


이런 간판은 붓글씨체의 나무 간판에 비해 아주 진일보한 것이다. 이른바 아크릴 간판으로 불리웠던 것 같다. 여기도 두 자리수 전화번호가 그대로 적혀 있다.


아직 장사를 하고 있는 그릇가게다. 이 가게 주인은 총각 때 전 재산을 털어 점포를 분양받아 지금까지 장사를 해오고 있다. 인터뷰를 했는데, 나중에 따로 올릴까 한다.


상가아파트 1층의 모습이다. 언제 한 번 화재가 났었는지 천장이 시꺼멓게 그을려 있다.


아마도 이처럼 폐허가 된지 오래이다 보니 가끔 부랑자나 청소년들이 와서 놀기도 하는 모양이다.


요즘은 흔치 않은 전당포도 있었다. 그러나 취급하는 물건은 예전과 많이 다른 것 같다.


주로 차량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모양이다. 그리고 명품시계나 귀금속, 카메라 등도 맡아주는 모양이다. 맡기고 돈을 빌려간 후 되찾아 가지 않은 물건들도 있는 것 같다. 아마 그런 걸 싸게 판다는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디카나 노트북, 캠코드도 있다고 하니 필요할 때 한 번 찾아가볼까?


전당포는 귀금속이나 돈을 취급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세콤에도 가입되 있었다.


여인숙도 있다. 이곳도 꽤 오래되었을 성 한데, 옥상에 슬레이트 지붕의 가건물이 이채롭다.


아까 그 방치된 공중전화 부스를 내려와서 찍어봤다.


옷 수선 집이다. '춤복'은 뭔지 잘 모르겠다. 춤출 때 입는 옷이라는 걸까?


표구사도 아직 있었다.


손뜨게 방이다. 아줌마들이 많았다.


역시 옷 수선집이다. 유난히 이곳엔 이런 옷 수선 집이 많다.


여기도 옷 수선 집이다. 재야사학자 박영주 씨가 카메라에 담고 있다.


다시 입구의 그릇집까지 돌아나왔다.


이 모습도 이제 한 달쯤 후엔 영원히 볼 수 없게 된다. 오동동 아케이드가 있던 자리는 하천으로 복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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