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내가 신문 1면에 반성문을 쓴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10. 8. 3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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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문을 진보와 보수로 편을 가르는데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저 올바르고 정의로운 신문이냐, 사이비 기회주의 신문이냐로 나눌 수 있을 뿐이다.(☞경향·한겨레가 과연 '진보 언론'인가?)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신문을 그렇게 나누어 보려고 한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경남도민일보에 대해서도 시민주 공모로 창간된 신문이고, 다른 지역신문에 비해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수위가 좀 높다는 이유로 '진보' 쪽으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경남은 오랫동안 한나라당의 아성이었고, 보수적인 정서가 강한 곳이어서 그런지 경남에서 도지사나 시장·군수, 그리고 국회의원들에 대한 비판을 하면 그걸 '진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경남도민일보는 다른 신문에 비해 진보정당이나 노동계,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도 상대적으로 비중있게 다루다 보니 그렇게 보는 점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진보든 보수든 정치·사회적인 성향을 막론하고 문제가 있으면 과감히 드러내고 비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진보'를 내세우는 사람이나 단체가 진보답지 않은 짓을 했을 땐 더 많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기로 '보수'를 앞세우는 사람들이 보수의 가치를 저버린 채 자기의 이득만을 챙기는 모습 역시 비판받을 일이다.

언론의 가치는 시시비비를 확실히 가리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잣대는 공정해야 한다. 우리 경남도민일보 역시 같은 지역의 다른 언론에 비해서는 공정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행정권력과 정치권력, 자본권력에 대해서도 우리지역의 어떤 언론보다 과감하게 감시하고 비판해왔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난 6·2 지방선거 때는 잠시 경남도민일보를 떠나 바깥에서 지역언론의 선거보도를 지켜본 바 있다. 그 땐 정말 '경남도민일보라도 없으면 우리지역이 큰 일 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남도민일보가 지방권력에 대한 감시견으로 제 역할을 충실히 해왔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다'고 할 순 없다. 바로 그게 이번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던 것이다.

나는 또한 언론이 최소한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남도민일보 또한 '상대적으로'는 잘 해왔다는 식으로 면피하고 자위해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번에 '반성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청문회 과정에서 김태호의 각종 문제와 의혹이 드러날 때마다 "도지사 재임 시절, 경남도민일보는 뭐 했나"하는 소리를 수없이 들었다. 당장 내 아내도 그런 말을 했다.

독자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신문은 시치미를 뗀 채 그냥 눙치고 넘어간다는 건 너무 뻔뻔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데스크회의에서 의견을 묻고 사장에게 보고한 후, 1면에 반성문을 실었을 뿐이다. 아래 상자가 그 반성문 전문이다.

[반성문]권력 감시역할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낙마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가 두 번이나 경남도지사로 재임하던 동안 <경남도민일보>를 비롯한 지역언론은 그의 권력남용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습니다.
 
경남도청 직원을 가사도우미로 불러 쓰고, 관용차와 운전기사를 자신의 아내에게 제공한 사실도 그의 재임 중에 짚어내지 못했습니다. 도지사 시절 그의 재산이 갑자기 늘어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연봉과 생활비, 채무관계 등을 제대로 따져보지 못했습니다. '은행법 위반'으로 밝혀진 선거자금 대출에 대해서는 규명해볼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박연차 전 회장으로부터 수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의 무혐의 처분과 김 전 지사의 해명만 전달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번 총리 후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새로운 의혹이 드러날 때마다 '저런 문제도 있었나?'하고 놀라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역신문 종사자로서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 분들의 말은 '그동안 지역언론은 뭘했나'라는 힐난과 추궁이었습니다.

특히 '일면식도 없었다'던 박연차 전 회장과 2006년 2월 나란히 찍은 사진이 한 지역신문에 실려 있다는 사실이 서울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의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한편으로는 경남이 낳고 키운 인물이 연일 난타당하는 모습을 보며 이른바 '중앙 무대'의 '촌놈 신고식'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증폭만 시킨 채 허망하게 무너지는 '경남의 아들'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역언론의 감시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했었더라면 사전에 예방하거나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보수적인 지역 정서'와 '기득권층의 저항'을 핑계삼아 변죽만 울리는 비판으로 면피하고 자위해왔습니다. 그 결과 의혹투성이 상태로 내보낸 '경남의 아들'이 끝내 국민 여론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사전에 지역언론이 제역할을 했다면 적어도 경남도민까지 덤터기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일은 방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뼈저리게 반성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지방권력에 대한 용맹스런 감시견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촉망받는 인물, 권력이 큰 자리일수록 더 엄격한 잣대로 검증하겠습니다.

편집국장 김주완

그런데, 이게 참, 재밌는 건 이런 반성문이 '뉴스'가 된다는 사실이다. 신문에 반성문을 실은 후, PD저널과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 그리고 오늘 보니 헤럴드경제 인터넷판에서도 뉴스가 됐다. 몇 몇 블로그에서도 관련 포스트를 올렸다. 댓글도 꽤 달렸다. 미디어다음에 전송된 오마이뉴스의 기사에는 90건이 넘는 격려와 질책, 충고가 있었다. 사람들이 우리 신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아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나에게 직접 전달되어온 피드백도 많았다. 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도 수많은 격려 멘션이 왔고, 문자메시지도 적잖게 받았다. 그동안 우리나라 신문들이 얼마나 인정과 반성에 인색했으면 이런 게 '뉴스'가 되겠는가 싶다.

이 정도 피드백이 있는 반성문이라면 앞으로도 종종 써야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물론 반성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게 먼저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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