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별 의미없는 것

편집국장을 맡은 후 양복을 입는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10. 8. 1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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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편집국장을 맡은 후부터 평일에는 계속 양복 차림으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평소 저와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좀 낯설게 보였나 봅니다.

얼마 전 어떤 분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왜 계속 양복을 입고 다니세요?"

어투에서 그냥 단순히 궁금증을 질문한 게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뭐랄까, 편집국장이 된 후 뭔지 모를 거리감이랄까 권위의식이 느껴진다는 의사표시로 여겨졌습니다.

"손님이 계속 찾아와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만, 질문을 한 이는 흔쾌히 수긍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맞습니다. 사실 그게 국장을 맡고 나서 양복을 입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지역의 각종 기관·단체장들이 부임 또는 취임 인사차 신문사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관이나 기업의 홍보책임자들도 찾아옵니다. 자신의 취임 인사차 오는 사람도 있지만, 편집국장이 새로 뽑혔다고 하니까 인사차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민원이나 제보를 위해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와이셔츠 세탁비는 1200원입니다. 쌉니다.


그런 분들에 대한 예의상 나름 격식을 갖춘 차림이 양복입니다. 저는 기자의 옷차림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경찰서나 사건 현장을 쫓아다니는 기자는 형사처럼 입고 다니는 게 맞습니다. 행정기관이 출입하는 기자는 그 행정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옷차림과 맞춰주는 게 옳다고 봅니다. 그래야 이질감을 해소하고 접근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국장이 되고 나니 기관 단체장이나 기업주들과 점심 약속도 잦아집니다. 저쪽에서 요청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쪽의 필요에 의한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회사의 영업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편집권 독립을 지켜야 할 편집국장이 영업 목적으로 기관장이나 기업주와 만나 밥을 먹는 게 과연 바람직하냐는 논란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떠나 편집국장이 지역의 주요 기관이나 업계의 동향이나 흐름, 지휘관의 마인드 등을 알고 있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만남을 피하거나 거부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어쨌거나 그런 자리에는 양복이 가장 무난합니다. 물론 상대에 따라 굳이 그런 격식을 따지지 않을 사람도 있겠지만, 만날 사람의 성향이 어떤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제가 계속 양복을 입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게 가장 편하다는 겁니다. 잘 이해하지 못할 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차피 '어쩌다 한 번씩이라도' 양복을 입어야 한다면, 아예 날마다 입는 게 더 편하다는 겁니다. 즉, 양복이 아닌 다른 케주얼 차림을 해야 한다면, 아침마다 뭘 입어야 할지, 그리고 아래 위는 어떻게 맞춰 입어야 할지 신경을 써야 합니다.

하지만, 양복을 입는다면 그런 신경 쓸 일이 없습니다. 그냥 와이셔츠와 넥타이만 갈아입으면 그만이니까요. 겉옷은 어제 벗어서 걸어놨던 걸 그대로 걸치기만 하면 끝입니다. 학생으로 치면 교복이나 같습니다. 그래서 뭘 입을지에 대한 망설임이 전혀 필요없게 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와이셔츠도 이틀 또는 사흘 정도 입으니까 일주일에 두 벌만 있으면 됩니다. 현재 저는 네 벌을 갖고 돌려입고 있습니다. 물론 휴일인 금·토요일과, (우리는 일하는 날이지만 다른 직장은 다 쉬는) 일요일의 경우 그냥 청바지 차림입니다. 그 사흘 동안엔 면도도 하지 않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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