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김홍도 그림으로 조선의 사회상을 엿보다

김훤주 2010. 7. 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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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 미학을 걷어내면 무엇이 남을까

김홍도와 신윤복과 김준근과 정선 등의 그림에서 조선 풍속을 읽어낸 책들이 나왔습니다.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가 펴냈습니다. 


<조선 풍속사 ① 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 <조선 풍속사 ② 조선 사람들 풍속으로 남다>, <조선 풍속사 ③ -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강명관은 <조선 풍속사 ①> 들머리에서 "이 책을 시작으로 조선의 풍속을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길이 열렸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미학의 관점에서 아름다움을 논하는 대신, "풍속화에 그려진 내용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를 "문헌적 증거에 입각"해 할 뿐이라 했습니다.

"미술사학의 연구는 화가로서 단원의 탁월함과 빼어난 그림 기법을 해명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옛 그림을 회화사적으로만 접근하는 연구 방법은 그림의 저 풍성하고 다양한 성취를 도리어 좁히는 것이 아닐까?…… 풍속을 소상하게 알아내는 일이야말로 풍속화의 풍부한 이해에 도움이 될 터이다."

강명관은 이를테면 김홍도의 그림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자기 글이) 단원의 풍속화에 대한 글이지만, 사실은 단원을 꼬투리 삼아 생각이 번지는 대로 이런저런 가지를 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같은 강명관의 가지 치기는 다양합니다. 당대 사회 단순 사실 확인에서부터 인간 관계의 사회적 배경은 지배-피지배 고락의 상반됨 따위까지이지요. 게다가 미학적 성취 운운에 가려진 풍속 자체의 재확인도 더해진답니다.

김홍도 씨름.

김준근 엿 파는 아이.


단순 사실 확인은 <조선 풍속사 ②>에 나오는 '엿장수'랍니다.

"김준근의 '엿 파는 아이'를 보자. 두 소년은 엿목판을 메고 있는데, 왼쪽은 판엿을 팔고, 오른쪽은 가래엿을 판다. 나는 '엿 파는 아이'를 보고 오래된 의문을 풀었다. 엿장수의 가위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궁금했는데, 이 그림을 보고 적어도 19세기 말에는 있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김준근은 주로 19세기 말에 활동했기 때문이다."

지은이 강명관의 호기심이 어린아이를 닮은 듯합니다. 절로 웃음이 나지 않으시는지요. ^.^

놓인 자리에 따라 즐거움과 고달픔이 달라지는 대목은, 이를테면 <조선 풍속사 ①>에 들어 있습니다.


"단원의 '타작'으로 돌아가자. 중앙에는 알곡을 떨어내는 사람이 넷 있다. 왼쪽 구석에는 떨어진 알곡을 쓸어 모으는 사람이 있고 왼쪽 위에는 볏단을 지게에 진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오른쪽 고깔을 쓰고 볏단을 묶는 사람과 그 위쪽 맨상투 바람의 사내는 표정이 밝다. 위쪽 지게에 볏가리를 지고 오는 사내 역시 밝은 표정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왼쪽 볏단을 치켜든 납작코 사내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오른쪽 위에는) 한 사내가 볏가리 위에 돗자리를 깔고 장죽을 빨며 빈들거리는 자세로 자빠져 있다. 갓까지 젖혀 쓴 모습이 영 게으른 꼬락서니다. 시무룩한 납작코 사내와 아주 대조가 된다. 단원은 한 폭의 그림에 기쁨, 수심, 빈들거림 셋을 동시에 섞어놓은 것이다."

해설을 덧붙입니다. "타작하는 농민들의 미묘한 표정을 확연히 드러내어 수확의 기쁨과 수탈의 슬픔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이어서는 자기 생각을 덧붙입니다. "'타작'을 볼 때마다 누워 있는 사내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땅은 원래 경작하는 것이고, 경작하는 사람만이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양반은, 마름은 경작하지 않고 땅을 차지하고 있으니 정말 해괴한 일이 아닌가."

말미에 갈무리하기는 이렇습니다. "소농이야말로 인류를 이제까지 살려온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의 농민과 농촌은 어떻게 되었는가." 근대 조선과 현대 한국이 이로써 이어져 버렸습니다.

진경산수에서, 가려진 신분 관계를 읽어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엄청난 힘입니다.


"정선의 '백천교'(외금강 유점사 아래에 있는 다리)를 보자. 우거진 솔숲, 작은 폭포 계곡물이 있다. 말이 있고 말구종이 있다. 가운데는 갓 쓴 양반들이 서거나 앉아 있다. 모두 풍경에 취해 있는 것이다."

강명관의 눈길은 당연히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왼쪽을 보면, 흰 모자를 쓴 사람들이 남여(탈것)를 내려놓고 쉬고 있다. 모자를 벗은 사람은 머리털이 없다. 다름 아닌 금강산에 있는 절의 스님들인 것이다."

이어서 여러 양반들의 산에서 노닌 기록을 들춰내 보여준 다음에 또 달아 붙입니다.

"양반들은 제 몸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인간들이다. 산수가 좋은 곳으로 가고 싶지만, 점잖은 체면에 땀을 비처럼 쏟아가며 헐떡거리면서 산을 오르는 것은 체신머리 없는 짓이다."

"양반은 걷지 않는다. 걷는 양반은 부릴 위세가 없는 양반이다. 금강산을 찾으면 으레 산 속 중들을 닦달한다. 걸어서 올라가기도 힘든 산길을 양반을 메고 올라가니, 얼마나 고되었을까?"
 
"우리는 조선 회화를 보면서 진경산수라, 사실주의라, 국토산하의 아름다움이라 찬양해 마지 않는다. 하지만 그 찬사를 낳은 그림과 시와 산문의 그 이면에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정당하지 못한 지배 그리고 지배를 당한 천한 것들의 노동과 땀이 배어 있다. 만약 진경산수와 국토산하의 아름다움이란 이야기를 당시 가마꾼들이 듣는다면 무어라 할 것인가. 정말 우습다."

미학적 성취를 뒤로 물린 '사뭇 수준 낮은 의문'에 대한 답을 풀어놓는 것입니다. 신윤복을 다룬 <조선 풍속사 ③>이 대표격입니다.

"혜원의 풍속화에 대한 논고는, 언제나 모든 사람이 다 알기에 생략해도 무방하다는 듯한 어조로 에로티시즘·기방·기생·유흥 등을 그린 것이라고 아주 간단히 언급한 뒤, 구도와 배치, 생채가 이룩한 미적 성취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그러나 도대체 궁금한 것은 '풍속화라고 하는데, 저 그림에는 무슨 풍속이 담겨 있다는 말인가?' 또는 '그림 속 인물들이 벌이는 행각과 복색이 각각 다른데, 과연 이들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따위랍니다.

강명관은 이런 방식으로 '어떤 사회 배경 아래에서 그림이 그려졌는지, 어떤 사회적 변화가 그런 그림 속에 녹아들어 있는지'를,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합니다. 자세 내용이 궁금하시거들랑 ^^* 한 번 사서 보세요. 하하.

<조선 풍속사 ①>(2만1000원)과 <조선 풍속사 ②>(1만9000원)는 이번이 완전 초판이랍니다. 하지만 <조선 풍속사 ③>(1만8000원)은 2001년에 펴낸 것을 크게 뜯어고친 '개정' 초판이라 합니다.

김훤주

조선 풍속사 1 - 10점
강명관 지음/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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