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환경 수도' 창원시, 어림 없는 소리
2008년 10월 람사르총회 유치를 기점으로 삼아 창원시는 스스로를 일러 '환경 수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녹색 문화 도시, 프라이부르크 읽기>라는 책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박완수 창원시장의 자전거 도시 추진이 마땅찮아서가 아닙니다. 창원시 공무원의 창원천과 남천, 또는 주남저수지 관리가 엉망이라서 하는 말도 아닙니다. 바로 시민의 힘과 노력이 턱없이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프라이부르크.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끝에 있는, 2009년 말 현재 150㎢ 넓이에 23만 명 인구가 사는 크지 않은 도시랍니다.
멀리 유럽에 있는 도시이지만 참 낯익습니다. 세상이 그리 만들었습니다. 생태·환경 도시로 이름이 났기 때문이지요.
프라이부르크 옛 도심. 도서출판 나무도시 제공.
서울시장은 2007년 프라이부르크를 찾아갔고 이태 뒤 환경 분야 교류 협약을 했습니다. 같은 해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도 프라이부르크와 '녹색도시 만들기 기술 협력 지원 및 그린인포센터 유치'를 협약했습니다.
전남 순천시와 경기 평택시도 독일의 이 도시를 찾아 기술 교류 관련 양해 각서를 주고받았는데, 이밖에도 인터넷에서 이 도시로 검색하면 여러 도시와 많은 인물이 '환경·교류·협약·탐방·견학' 같은 낱말과 함께" 떠오른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창원시의 경우 녹지 공간이 조금 많다는 것만으로 '환경 수도'를 입에 담고는 '그 이름도 유명한' 프라이부르크를 '뛰어넘겠다' 하면서 '누비자' 자전거를 들고 다닌답니다.
2. 생태 이전에 문화가 넘쳐 흘렀다
이를테면 "프라이부르크라는 도시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부터인가 하나의 패션처럼 사람들 사이를 떠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속내는 제대로 모르면서' '제대로 따라가지도 못하면서', '생색 내기만 하면서' 하는 낯 간지러움이 머뭅니다.
<녹색 문화 도시, 프라이부르크 읽기>는 홍윤순 한경대 조경학 교수가 2009년 한 해 동안 프라이부르크에 머물며 쓴 글을 모은 책입니다. 전문가와 생활인의 관점과 이해가 한 데 어우러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서출판 나무도시 제공.
홍윤순이 살고 보고 한 프라이부르크에는 환경·생태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자유, 자유교역, 자치', '태양, 바람, 물', '여가, 휴양, 관광', '대학, 문화, 축제', '환경, 에너지, 교통'.
홍윤순은 비슷한 단어를 세 개씩 조합하여 5개 국면의 15개 어휘가 되도록 꼽고 이를 '프라이부르크를 특징 짓는 키워드'로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하나로 통합돼 있었다고 합니다.
문화. 충분하지는 않지만, 보기를 들면 이렇습니다. "프라이부르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 재건 과정에서 독특한 재개발의 이념 구현을 위해 노력해 왔다." "전쟁 이전의 전통적인 도시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주력한 것이다."
"재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도시 중앙에 있는 문화회관을 복구했다. 당시는 먹고 살 집 마련이 당연 과제였으나 시민은 물론 행정가들도 문화도시로서 프라이부르크의 정체성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꼽은 것이다."
피아니스트였던 당시 시장은 스스로 음악회를 열어 자금을 모았답니다.
3. 생태환경을 위해 습관까지 바꾼 지역 주민
도서출판 나무도시 제공.
그래도 프라이부르크는 생태·환경으로 이름이 더 나 있습니다. 들여다보니까 그이들에게는 표면이 아니라 근본에서 변화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프라이부르크 근교에 서독 스무 번째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획이 발표된 1974년 일입니다.
"건설 예정지의 포도밭 농민들은 방사능 오염 가능성과 와인 생산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철회 농성을 벌였고 대학생 그룹과 지식인들이 반대운동에 합류했으며 시와 시의회도 동조했다.
농민 생존권 차원에서 시작된 원전 반대 운동이 무저항 시민운동으로 전개됐는데 이런 과정에서 시민 스스로 주체가 되는 '대량 소비 생활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이 나타나게 됐다.
자가용 자동차의 분별없는 이용이나 전력 사용을 자제하자는 일상 속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 실천 운동이 불붙으면서 '환경과 생태'에 대한 논의가 본격 진행됐다.
원전 반대 시민운동이 생활환경과 습관을 바꾸자는 녹색 대안 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참 산뜻합니다. 저를 비롯한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는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 편리함을 누리겠다면서 행정·정치에게만 예전보다 나아지라고 요구합니다만 여기 이 사람들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습관 바꾸기인데, 지역 주민 운동이 곧바로 습관 바꾸기로 죽 진전해 버린 것입니다. 굉장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제게는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의 이런 움직임이, 사회를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 동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새삼 확인해 주는 '사건'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4. 문화+생태환경 = 새로운 녹색 에너지+더 큰 문화
이런 근본 둥력이 갖춰져 있으니까 이런 일도 가능한가봅니다. 문화+생태환경입니다. 눈 앞에 보이는 개발과 효율은 사실 개발도 효율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회도 곧 그리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하기는 합니다만. ^.^
"1973년 일부 주민과 상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구도심의 대부분을 '보행자 전용 구역'으로 지정한 것은 매우 전향적인 시도였다. 구도심에서 시행된 '차량 통행 금지 조치'에 거세게 반발하던 상인들은 보행 전용의 환경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매상이 오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제한 구역의 확대를 요구하기도 했다."
전철 확충, 자동차 억제, 보행자>자전거 우대 그리고 태양열 발전 등 우리에게는 지금도 낯설기만한 한 그런 것들이 프라이부르크에서는 길게는 40년가량 이전부터 실행하고 있는 교통·에너지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도서출판 나무도시 제공.
프라이부르크는 이런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요점 정리를 하자면 기본에 충실할 뿐이라는 것입지요. 이런저런 아이디어나 이벤트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프라이부르크 환경 정책들은 지구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의를 다해야 할 기본 의무이다.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환경 관련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입지를 이룬 것이다."
5. 행정가 정치인보다 소박한 시민과 더 잘 어울리는 책
돌격대식 속도전은 여기에 없습니다. 도서출판 나무도시 제공.
<녹색 문화 도시, 프라이부르크 읽기>를 처음 손에 잡았을 때는 공무원이나 행정가 또는 정치인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느낌말고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민주 시민으로서 자유를 누리고 권리와 의무를 다하려는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물론 책에는 여기 소개 내용보다 읽을거리가 훨씬 풍부하게 많습니다.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도서출판 나무도시 제공.
'파노라믹 프라이부르크(전체 소개)', '도시를 움직이는 시스템과 소프트웨어', '(구도심과 근교·외곽의) 주목되는 장소와 오픈스페이스', '(병참기지를 재개발한) 프라이부르크의 생태주거단지' '(수경水景과 바닥 등) 환경 요소들'.
김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