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저는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지 않습니다

김훤주 2010. 6. 1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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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지 않습니다. 마침 집에 텔레비전도 없습니다. 물론 볼 수 있는데도 억지로 보지 않는 것은 아니고요,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보지는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축구 경기를 보지 않는 까닭은 아주 간단합니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야구와 농구는 조금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렇다 해도 국가 대항 경기이고 월드컵 같은 큰 경기라면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 싶기는 합니다. 

어쨌든 저는 보지 않는데, 그것은 아마도 개인이 집단에 푹 빠져 묻혀 버리는 그런 일이 겁나기 때문입니다.

6월 12일 마산종합운동장 응원 모습.

2006년 이야기를 조금 해 보겠습니다. 제가 일하는 <경남도민일보>에서 2002년 월드컵 4강 진입을 돌아보는 기사를 그 해 2월 16일치에 실은 적이 있습니다.

기사 가운데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가슴을 졸이던 4700만 국민은 한꺼번에 '와~~!'하는 탄성으로 월드컵 4강을 자축했다"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이를 보는 저한테 무언가가 툭 걸렸습니다.

'국민'이라는 낱말입니다. '축구 팬'이라든지 '월드컵 축구 중계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라고 하면 맞을 텐데, 뜬금없이 국민을 끌어들였습니다.

이를 뒤집으면 축구 팬이 아니거나 월드컵 축구 중계 방송을 보지 않는 사람은 '국민'의 범주 바깥으로 밀려나가게 됩니다. 저는 이런 배제와 포괄을 통한 엉터리 규정 짓기가 싫습니다.

왜냐 하면, 2002년 당시에 저는 분명 탄성을 내지르지도 않았고 4강 자축도 안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대한민국에 저 같은 '국민'이 하나밖에 없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만 아니라 우리 집 식구들은 아무도 탄성을 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당시 열두 살이던 제 아들은 사람들이 월드컵 축구를 왜 저토록 좋아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국민'이기에 앞서 엄연히 '자연인', '개인'으로 실존하는데도, 바로 이 개인이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다음은 그 해 6월 13일 한국과 토고의 경기가 있던 날 이야기입니다. <대구일보>는 이 날 1면을 대구 출신 축구 국가 대표 선수 박주영의 모습을, 지역 주민 개인 사진으로 짜맞춰 통째로 가득 채웠습니다.

놀랍고 새롭고 과감한 발상의 산물이고, 일찌감치 이런 기획을 할 수 있었던 <대구일보>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 눈길도 확 사로잡았습니다.

기사입니다. "향토 출신 박주영 선수의 골 세리머니를 배경으로 대구 경북 600만 명을 상징해 각계각층 시·도민들이 일터에서 태극전사들의 승리를 기원하며 응원하는 모습을 김동우·권성준 기자가 1개월간 촬영했습니다."

제가 이런 측면을 무시하거나, 이런 편집이 당시 크게 의미있는 시도였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대구일보> 6월 13일치 1면에서 '전체에 파묻힌 개인'을 보고 몸이 조금 떨렸을 따름입니다.

사진 배경을 태극 무늬 하나로 가득 채운 것도 섬찟했습니다. 국가주의, 나아가 전체주의라는 꼬집음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대목임이 틀림없습니다.

개개인의 됨됨이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집단만 남았습니다. 여기에 들였을 엄청난 노력과는 상관없이 그 노력이 내는 효과는 이렇게 된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지금 월드컵에 쏟는 사람들의 관심에는, 이런 '집단의식의 무의식적 작용'이 들어 있지 않다고 잘라 말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월드컵이라는 잔치가 끝나면, 지금 광장이나 술집에 모여 있는 숱한 저 사람들도, 저마다 제 자리로 돌아갈 뿐임을 알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쉽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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