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음식의 맛을 글로 표현한 미각의 제국

김훤주 2010. 6. 8.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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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은 눈으로 봐 맑아야 하며 냄새가 없어야 한다. 마셨을 때 혀에서 가벼워야 하며 목구멍으로 넘길 때 부드러워야 한다.

흔히 약수를 좋은 물이라 여긴다. 그러나 약수는 과다한 미네랄 때문에 무겁고 쇳내가 나며 목구멍에 걸린다. 이 약수로 밥이며 닭백숙을 해서 맛있다 하는데, 약수가 몸에 좋다 하니 그리 먹는 것이지 그런 약수로는 결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없다."

계삼탕 - "흔히 삼계탕이라 하지만, 계삼탕이 맞는 말이다. 닭이 주재료이고 인삼은 부재료인 까닭이다.

인삼은 달고 씁쓰레한 맛을 낸다. 향이 강한 재료이므로 닭과 섞으면 인삼이 이긴다. 몸에 좋으라고 인삼을 잔뜩 넣는 것은 좋지 않다. 닭 누린내 잡을 정도면 된다.

내 생각에는 인삼보다는 황기가 닭과 더 잘 어울린다. 100일 정도 키운 토종닭에 황기 서너 뿌리 넣고 푹 고면 닭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칼국수 - "칼국수는 크게 닭국물, 사골국물, 해물국물을 쓴다. 일반적으로 이 국물에 따라 면의 굵기가 달라지는데, 사골칼국수의 면이 가장 가늘고 닭칼국수는 중간이며 해물칼국수는 굵은 편이다.

이런 차이는 국물 맛의 강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가는 면의 사골칼국수는 씹지 않고 후루룩 넘기면서 목 넘김의 쾌감을 즐기고, 굵은 면의 해물칼국수는 오물오물 씹으면서 쫀득한 면의 식감을 즐기는 게 요령이다."

두부 - "콩물을 과하게 끓이면 고소한 향은 강해질지 모르나 이 고소함으로 인해 두부의 품격이 떨어진다. 맛있는 두부는, 입 안에 넣었을 때 약간의 콩 비린내가 받으면서 입천장 가득 고소함이 확 번져야 한다. 끝에 남는 것은 콩의 향이어야 한다.

부드러움의 정도는, 두부 조각을 혀 위에 올리고 입천장 쪽으로 밀어 올렸을 때 별 저항감 없이 풀어져야 한다. 다 삼키고 난 다음에는 혀와 입천장에 이물감이 없어야 한다."

김주완 선배가 찍은 사진.


삼겹살구이
- "삼겹살구이 맛의 일차적인 포인트는 삼겹살에 붙어 있는 지방질에 있다. 삼겹살이 불판에 구워지면 고기는 단단해지고 지방질은 부드러워진다.

이 부드러운 지방질이 단단해진 고기와 섞이면서 삼겹살 전체가 기분 좋은 일치감을 제공하게 된다. 

녹아내린 지방질은 고소한 향을 풍기는데, 구워진 삼겹살을 입 안에 넣기도 전에 후각을 강하게 자극한다. 불판에 녹아내리는 지방질의 향내는 워낙 강하여 된장의 독특한 발효 향, 생마늘의 톡 쏘는 냄새와 충돌하여도 버텨 낸다.

삼겹살구이에서 우리가 즐기는 맛의 또다른 포인트는 된장과 쌈에 있다. 신선한 채소 안에서 터져나오는 고소한 돼지고기와 짭짤한 된장 맛의 조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삼겹살구이는 이 '된장 쌈'의 한 재료에 불과할 수도 있다."

김치 - "옛날 우리 배추김치들은 가벼운 양념에 물이 축축하게 있고 개운한 산미가 잘 살아 있었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하니 양념을 충분히 넣지 못한 덕이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후반을 넘기면서 양념 범벅의 배추김치로 변해 갔다.

살림이 나아지면서 김치에 양념을 잔뜩 넣어야 잘사는 집 모양이 난다고 여긴 순진한 아낙들의 마음이 투영된 결과로도 보이고, 궁중요리입네 반가요리입네 하고 텔레비전에 나와 갓 해서 먹어야 하는 보쌈김치 수준으로 온갖 양념을 범벅해 담그는 것을 자주 보여 준 탓으로도 읽힌다."

사과 - "사과는 단맛에 신맛이 어우러져야 한다. 당도가 너무 높은 사과에서는 향을 느낄 수 없다. 그 사과에 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단맛이 너무 강해서 다른 맛을 느낄 여유가 없는 것이다.

요즘 사과는 싱겁다. 대부분 봉지를 씌워 재배하는 까닭이다. 봉지를 씌우면 옅은 붉은색이 고루 번져 맛깔스럽게 보인다. 봉지 사과는 신맛이 덜하고 당도가 높으며 조직감이 부드럽다.

봉지를 씌우지 않으면 조직은 단단해지고 향도 깊어진다. 그러나 붉은색이 너무 짙어 소비자들은 맛없다 여긴다. 봉지 씌우지 않은 사과 맛을 보고 나면 봉지 사과는 싱겁다 할 것이다. 보기 좋은 것, 단맛 강한 것 좇다가 진정한 사과 맛을 잊고 사는 것이다."

막걸리 - "막걸리 맛의 중심은 쌀이 지니고 있는 구수한 향과 약간의 단맛, 누룩 발효에 의한 시큼함 그리고 톡 쏘는 탄산가스의 조화로움에 있다.

좋은 막걸리는 냄새에서 들척함과 시큼함이 잘 조화를 이룬다. 최상의 막걸리에서는 사과 향이 난다. 첫입에는 시큼함이 받고 이어 은근한 단맛이 입 안 가득 번지지만 마지막에는 시큼함이 침샘을 자극하면 귀밑을 저리게 한다.

여기에 탄산가스의 화사함이 없으면 단맛과 신맛은 부적절한 조합을 이룰 뿐이다. 와인과 달리 떫은 맛이 거의 없다. 그래서 도토리묵이 막걸리와 조화를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선회 - "대중 횟집들이 회를 내는 방식은 일본식과 한국식이 섞여 있다. 생선을 두툼하게 포를 떠서 가지런히 놓고 한 옆에 와사비를 턱하니 붙여 내놓고는 초고추장이나 된장, 쌈 채소 등을 함께 낸다.

마찬가지 김주완 선배가 찍은 사진.


모양새는 일본식을 따라 고급화하려고 하고 맛은 우리식을 버리지 못해 이런 어정쩡한 스타일을 만든 것이다.

일본식은 회를 두툼하고 큼직하게 썰므로 한 점이 한입에 꽉 찬다. 이런 식은 생선 그 자체의 맛을 즐겨야 한다. 그러니까 되도록 옅은 양념장에 찍어 생선의 육즙이 온 입 안을 감싸게 하는 것이 좋다.

얇게 썬 생선을 여러 토막 올려 쌈 싸 먹으면 씹는 맛이 있다.


씹는 맛으로 치자면 막회가 최고다. 뼈째 총총 썰어서 채소와 함께 비벼 우걱우걱 씹는 맛. 이런 막회는 와사비 간장으로 먹으면 맛이 안 난다. 그러니까 일본식이 낫다 우리식이 낫다가 아니라 회를 치는 방법에 따라 먹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음식을 다룬 책입니다만 먹음직한 음식 사진도 하나 없고 이름난 맛집을 알리는 글도 하나 없고 이런저런 요리 방법을 맛깔나게 정리한 교본도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읽다 보면 음식과 맛의 개념이 구체적으로 잡힙니다. 음식과 맛의 중심과 주변이 무엇인지 밝히고 전후좌우 질서를 잡아주는 책입니다.

지은이 황교익은 자신의 책 <미각의 제국>을 일러 '보통 사람들을 위한 미각 입문서'라 했습니다. 저는 이런 규정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황교익의 글투입니다. 조금은 멋을 부렸고, 보는 사람들을 백지 상태라고 전제한 듯 일방통행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것이 대부분 용서가 됩니다.

물론 여기에 나오는 지식이라든지 입맛 또는 맛을 느끼는 지점과 과정을 모두 알아야 한다거나 알면 좋다거나 하다고 이리 말씀드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먹을거리와 맛에 대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음식이 아닌 것만 먹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음식이 아니도록 장난치는 그런 것만 피하면 되지 않을까 여길 따름입니다.


김훤주

미각의 제국 - 10점
황교익 지음/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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