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섬진강까지 진입한, 저 붉은 깃발!

김훤주 2010. 6. 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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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섬진강을 찾았습니다. 하동 화개장터에서 낙동강 사진 전시를 하려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상큼했으며 날씨는 따뜻했습니다.

섬진강은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로 말씀하자면, 저물 녘에 소설 <토지>로 이름난 평사리 뒤쪽 고소산성에 올라, 이리 구불 저리 비틀 느릿느릿 흘러가며 햇살을 뒤척이는 섬진강 속살을 그윽하게 내려다보는 즐거움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다가 전혀 예상 못한 장면을 보고 말았습니다. '4대강 살리기'를 빙자한 정부의 대규모 토목공사가 낙동강·한강·금강·영산강만 해코지를 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섬진강 살리기'도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낙동강 무너지는 현장을 이미 눈이 시리도록 보고 난 뒤끝이라선지, 공사를 알리는 입간판만 봐도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는지가 훤하게 짐작이 됐습니다.

섬진강 살리기 사업 2공구는 나무로 만든 산책로가 깔려 있었습니다. 비행장으로 쓰이는 군용 시설이지만 평소에는 이렇게 사람들 오가는 공원으로 쓰이는 모양입니다. 겉보기에는 토끼풀과 촉새와 강아지풀 들이 평화로웠습니다.

입간판 뒤로 돌아가니 섬진강에 사는 갖가지 민물고기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었습니다. 바다가 민물인 때였는지, 강물이 왼쪽 아래로 흐르는 대신 오른쪽 위로 빡빡하게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조금 위로 산책로 따라 걸어가니 이번에는 반두 같은 고기잡이 도구(아니면 재첩 잡으러 강바닥을 훑는 도구)가 조금씩 쌓여 있었고, 조그마한 배도 몇 척 둥둥 떠 있었습니다.

모두들, 사람이 살고 생명이 살아가는 자취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 '저 붉은 깃발'이 있었습니다. 바람에 후드득후드득 뜯겨나갈 것처럼 거칠게 퍼덕이고 있었습니다.

깃발 오른쪽 위로 섬진강변이 보입니다.


저 붉은 깃발은, 섬진강 살리기 사업 제2공구에 몸을 숨기고 있는 저 붉은 깃발은,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의 향도(嚮導) 노릇을 할 것입니다. 저 깃발의 향도를 따라 여기 곳곳에 있는 삶과 생명의 자취들이 뽑히고 뜯겨 나가겠지요.

이미 낙동강을 난폭하게 유린하고 진입한 토건족 점령군이, 주둔 기지가 있는 낙동강에서 이곳 섬진강에다, 정복에 앞서 정찰 목적으로 파견한 선발대의, 숨기지도 아니한 공공연한 표지 같이 느껴집니다.

저녁 무렵이라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낮에는 조금씩 땀을 내기까지 했던 제 몸이, 여기 섬진강 저 붉은 깃발을 보고 나서는 오슬오슬 소름이 돋을 정도로 으스스해지고 말았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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