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

기록하는 사람 2008. 5. 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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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께서 제 졸저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에 대한 글을 <선샤인뉴스>에 써주셨군요. 제가 보기엔 과찬이다 싶은 부분도 많고, 쑥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희 블로그가 '지역에서 본 세상'인 만큼, 공유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선샤인뉴스> 유철미 발행인의 허락을 얻어 전재합니다.

[강준만 칼럼]‘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

“연고주의를 배격하자면서도 『경남도민일보』를 비롯한 모든 언론에는 동창회나 향우회 소식이 매일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언론인들이 참석하는 각 대학의 ‘언론동문회’ 소식은 사진까지 빠지지 않는다. 새해에는 이것부터 확 없애버리면 어떨까.”(87쪽)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행정자치부장이 최근에 출간한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국신문들의 가장 위선적인 치부를 지적한 말씀이다. 김 부장은 또 다른 글에서도 “당장 우리지역부터 고칠 일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각 대학의 ‘언론 동문회’가 그것이다. 경남대·경상대·창원대에 각각 비슷한 성격의 동문조직이 있는 것으로 안다. 희한한 것은 유독 언론동문회에는 동문회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비싼 호텔에서 대학 총장과 함께 밥과 술을 먹고 선물까지 받아간다. 각 대학이 자기학교 출신 기자들을 끔찍이 챙기는 사례들은 이밖에도 많다. ‘삼성장학생’만큼은 아니겠지만, ‘ㅇㅇ대 장학생’이란 말도 나오지 말란 법이 있는가.”(90쪽)

직업이 직업인만큼 언론, 특히 지역언론에 관한 책은 다 구해서 읽고 있지만, 이 책만큼 속시원하게 지역언론과 지역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한 책은 보지 못했다. 게다가 고발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지역언론과 지역사회 잘 되게 해보자는 뜨거운 정열과 구체적 대안까지 담고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김 부장의 명언을 몇가지 더 소개하면서 맞장구를 치고자 한다.

“서울지역 신문들의 입장에서 지방분권은 그동안 서울 이외 지역에서 누려온 기득권을 내놓으라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 ‘서울지’, 특히 서울패권주의를 기반으로 지역 신문시장을 싹쓸이해온 거대 신문들은 한사코 지방분권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입장은 서울의 거대 방송사들도 다를 게 없다고 본다. 심지어 나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메이저 시민단체들의 속내도 그들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와 직접 상대해서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지방분권이 제대로 이뤄졌을 경우, 일일이 각 광역 시·도와 시·군·구청을 상대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서울에 본부를 두고 전국적인 단체로 행세하면서 백화점식 종합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는 영향력이 급속히 줄어들 것이다. 반면 지역에 따라 다양한 전문성을 갖춘 시민단체가 늘어날 것이다.”(156쪽)

이건 매우 의미심장한 지적이다. 심지어 좀 선진적인 지방의 자치단체마저도 무슨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서울의 시민운동단체와 손을 잡는 실정이다. 이건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부끄럽게 생각하는 동시에 성찰을 해야 할 일이지만, 시민운동마저도 ‘서울 패권주의’에 오염돼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의 성찰을 요구한다.

“지금 『경남도민일보』에서는 ‘중앙지’라는 말대신 ‘서울지’라는 표현이 정착돼 있다. 나는 전국의 모든 지역일간지에서 ‘중앙지’라는 말부터 없애버리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렇게 불러도 무리가 없을만한 이유가 있다. 서울지는 하루에 지면을 40페이지에서 무려 60페이지까지 제작한다. 그러나 그 중 지역소식을 전하는 지면은 고작 1 페이지에 불과하다. 그것도 부산·울산·경남을 묶어서 낸다. 어떤 신문은 대구·북까지 한데 묶어 ‘영남판’을 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서울지’들이 지역의 신문시장을 거의 장악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내고, 그들이 고착화시킨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중앙집권 문화 때문이다.”(181-182쪽)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중앙집권 문화의 핵은 아무래도 교육인 것 같다. 지방의 모든 학부모들이 자녀를 서울에 유학시키는 걸 제1의 목표로 삼고 있고, 상당수는 그걸 실현하기 때문에 지방민들이 몸만 지방에 있지 마음의 상당 부분은 서울에 가 있다. 서울지들이 지방시장까지 장악할 수 있는 주요 이유 중 하나다.

“우리 신문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으려면 ‘적을 만드는 일’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중략) 물론 시장·군수들을 모두 적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홍보해줄 때는 확실히 홍보해주자. …단체장이나 도의원, 시의원들의 입을 중요시하자. 그가 어떤 자리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를 중요하게 보도해야 한다. 지역현안이 발생하면 반드시 해당 단체장이나 관련 도의원, 시의원의 코멘트를 받아야 하고, 그의 말을 비중 있게 처리하자. 이를 통해 지역의 유명인을 키우자. 신문에 이름이 자주 나오고, 그의 말이 비중 있게 보도되고, 그로 인해 설화를 겪기도 하고,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유명해진다. 이를 위해 잘하는 사람은 확실하게 소신 있게 홍보해주자. 촌지 안 받았는데 뭐가 걱정인가? 영웅을 만들어도 좋다. 스타를 만들어내자. 그러면서 사람들의 경쟁심과 질투심을 이벤트로 활용하자. 정기적으로 ‘올해의 인물’‘올해의 기업’‘올해의 시민운동가’‘올해의 학자’‘올해의 시의원’‘올해의 도의원’‘올해의 단체장’ 등을 선정해 발표하자. 선정과정은 학자들과 함께 객관적인 평가기준과 선정방법을 마련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260-262쪽)

그렇다. 지방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지방민들이 연고 관계를 제외하곤 자기 지역 공인(公人)들을 잘 모른다는 데에 있다. 서울 매체에 중독된 나머지 지역 인물을 폄하하는 경향마저 없지 않다. 그런데 김 부장의 제안을 실천하려면 기자들이 부지런해져야 한다. 서울보다는 지방의 기자들에게 더 큰 정열이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도 하다.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이니 지금으로선 김 부장과 같은 언론인들이 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한번은 이런 민원을 받은 적도 있다. 작년에 돌아가신 자신의 장인이 생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아직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사실 이런 내용 정도라면 기자가 알아보는 건 간단하다. 해당 노동부 지청에 전화 한통화만 해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냥 단순히 알아봐주는 것이므로 기자윤리에 저촉될 일도 아니다(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당연히 거절해야 한다.) 또한 독자의 민원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의외의 기삿거리가 나올 수도 있다.…신문사가 어차피 이렇게 민원해결 기능을 해왔고 앞으로도 해야 한다면 아예 우리도 유럽의 신문들처럼 ‘민원실’ 간판을 달고 운영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접수 가능한 민원의 유형을 미리 정해 공지하고 방문 또는 전화나 인터넷으로 받으면 될 것이다. 인력도 많이 필요없다. 접수를 담당할 편집국 직원이나 기자 한 명과 담당 간부(부장 또는 부국장급) 한 명이면 된다. 민원을 접수한 담당자는 그 내용을 정리해 담당 간부에게 전달하고, 간부는 그 민원을 누가 잘 해결할 수 있는 지를 판단해 기자에게 지시하고 챙기기만 하면 된다. 민원 해결 과정에서 그게 기삿거리가 되면 기사도 한 건 건지게 되고 사례로 독자도 확보할 수 있다면 일거양득 아닌가.”(271-273쪽)

옳다. 특히 신문의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진 지역에선 이런 서비스 기능이 꼭 필요하다. 민원 서비스는 지역민의 생활과 동떨어진 콘텐츠로 지면을 도배질하는 신문들의 편집방향을 교정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조만간 전북 신문사들에도 민원실이 생겨나 주민들과 더불어 호흡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물론 지금은 신문에 대한 민원(民怨)이 훨씬 더 많겠지만 말이다. 김주완 부장, 화이팅!

※원문 링크 : 선샤인뉴스 http://sunshinenews.co.kr/archives/218

강준만 교수께 제 책을 보내드린 건 두 번이었습니다.

한 번은 『토호세력의 뿌리』(2005)였고, 이번『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도 보내드렸는데, 두 번 모두 강 교수님은 답례로 자신의 책을 한 권씩 골라 보내주시더군요. 책이라 하더라도 공짜로는 받지 않겠다는 뜻일까요? 이번에는 『선샤인 논술사전』을 받았습니다.

소심하게도 저는 "왜 하필 논술사전을 보내셨지? 내가 하도 글이 안 되니 논술공부부터 좀 하라는 뜻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책의 서문을 보며 강 교수께서 <선샤인뉴스>에 얼마나 애정을 쏟고 있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저에게도 <선샤인뉴스>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저도 신문기자다 보니 여기 저기서 공짜로 책을 받게 되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대개 그런 경우 문화면 새책소개에 소개해달라고 담당기자에게 부탁하는 정도로 도리를 다 한 걸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강 교수의 방식을 알고 나서부터는 저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강 교수의 이 글을 읽고 보니, 앞으론 좋은 책을 받으면 서평까진 못되더라도 독후감이나마 꼭 써서 올려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관련된 다른 글도 함께 첨부합니다.


[강준만 칼럼]연고와 인맥이라는 괴물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경남도민일보』 구성원들이 가장 곤흑스러워하는 건 바로 안면과 연고라는 괴물이다. 지역사회라는 게 워낙 촘촘한 인맥으로 구성돼 있는 데다 지역언론인들 또한 직장에서 벗어나면 이 같은 인맥의 그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역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 토박이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간부들의 경우 이 같은 곤혹스러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심지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도된 비판기사로 인해 친구나 친지들로부터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는다든지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행정자치부장이 최근에 출간한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라는 책에 실린 <연고와 인맥이라는 괴물>이라는 글의 일부다. 지역언론인들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것이다. 학자들은 지역신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엔 귀신같지만, 지역신문이 처해 있는 유별난 환경, 즉 지역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선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그런 자세는 불공정할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구나 말로는, 그것도 시큰둥한 자세로, “지역신문이 잘 되면 좋지요”라고 하지만, 실제로 지역신문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신문이란 게 무언가? 그 정체성의 제1 구성요소는 비판이다. 그런데 지역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은 비판의 활성화를 원치 않는다. 비판할 일이 있으면 자기들끼리 모여서 뒷담화로 쑥덕거리다가 역시 비공개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들지, 공론화되는 건 한사코 피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역신문의 낙후 책임을 ‘서울공화국’ 체제에만 돌리려고 할 뿐 그런 문제에 대해선 입을 꼭 다문다. 그러니 답이 나올 리 없다. 신문이 난립하는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말로 지역 유지들이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해결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의해 가장 도덕성이 높고 열심히 노력하는 신문을 하나 골라 밀어주면 된다.

 이런 식으로 두세개 신문이 우뚝 서면, 관(官)에서도 모든 신문에게 홍보예산을 동등하게 분배하는 관행을 중단하게 될 것이다. 또 나머지 신문들의 비리나 횡포도 두세개 신문이 신문 전체의 명예를 위해 적극 저지하고 나서게 되면 발 붙일 곳이 없게 된다. 아주 자연스러운 시장 기능에 의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지역유지도 가장 도덕성이 높고 열심히 노력하는 신문을 하나 골라 밀어주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말로는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지만, 실은 다른 신문들과의 관계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바로 여기서도 연고와 인맥이라는 괴물이 활개치고 있는 것이다.

 지역신문 낙후의 주된 책임은 ‘서울 공화국’ 체제와 더불어 지역 내부의 그런 풍토에 있다. 지역신문들이 난립해야 지역내의 권력자와 금력자들의 신문통제가 용이해진다. 속된 말로 뭘 좀 ‘뿌려주면’ 순한 양처럼 말을 잘 들으니,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그런데 지역 잘 되게 하자는 뜻으로 지역신문을 키워 놓아 젊은 기자들이  ‘언론의 사명’ 운운하면서 열심히 일하게 되면 골치 아파진다. 통제불능의 상태가 오고 만다.

 좀 과장되게 표현한 점도 있지만 막연한 상상력만으로 하는 주장은 아니다. 지역사회에 언론기능이 없을 때에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이게 지역언론에 관한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꼭 결사적 악의(惡意)에서 그러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 우리에게 남겨진 가능성인데, 이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 지금으로선 죽어라 하고 떠드는 수밖엔 없는 것 같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부디 알려주시라. 무릎꿇고 경건한 자세로 경청하고 실천하겠다.

※ 원문 링크 : 선샤인뉴스 
http://sunshinenews.co.kr/archives/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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