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누나의 3월'에 나온 용공조작, 사실은 이랬다

기록하는 사람 2010. 4. 1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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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8일) 밤 10시 40분 MBC를 통해 4·19혁명 50주년 특집극 '누나의 3월'이 전국에 방송되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방송 직후 다음과 네이버 등 포털에서 실시간 인기검색어로 '누나의 3월'이 올라오는 등 시청자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준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기로 하고, 우선 드라마에 나온 내용 중 시위학생과 시민을 용공으로 몰았던 당시 이승만 정권과 경찰의 행태를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다시 한 번 정리해볼까 한다.

드라마에서는 '학생들의 호주머니에서 인민공화국 만세라고 쓴 비라가 나왔다'는 말이 잠깐 지나가듯이 나오는데, 자칫하면 실제 그런 비라가 나왔던 걸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 전말을 알려드릴 필요도 있겠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가상인물인 누나 양미와 동생 양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양철이 경찰에 붙들려가 북마산파출소 방화범으로 누명을 덮어쓰는 상황으로 설정돼 있다. 그런데, 실제로 당시 북마산파출소 방화범 누명을 쓴 사람이 있었다. 단지 드라마에서처럼 김주열의 형 광철의 친구인 양철은 아니었다.

3.15의거 당시 발포경관들에 대한 재판 모습. 맨 오른쪽이 김주열의 시신을 유기한 박종표. '누나의 3월'에서 배우 손현주가 분한 인물이다.


당시에도 그런 용공조작이나 색깔 공세에는 정권과 경찰, 검찰만 앞장서는 게 아니라 언론도 반드시 끼어 있다. 마치 요즘의 조중동 같은 역할을 당시엔 서울신문이 했었던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역사는 진보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제대로 청산하지 않으면 반드시 되풀이된다는 말도 틀린 게 아닌 것 같다.

독재정권의 상투적인 수법 '용공조작'

독재정권이 민중항쟁을 탄압하기 위해 상투적으로 써먹는 수법이 있다. 바로 용공조작이다. 1960년 3·15마산시민항쟁에서도 그랬다. 3월 16일 이승만 정권과 경찰, 그리고 정부 기관지 서울신문은 전날의 시위를 ‘민주당의 사주에 의한 폭동’ 및 ‘공산분자 개입’ 등으로 조작해 발표했던 것이다.

이날 서울신문은 ‘마산서 민주당원이 폭동!’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두사람의 사망자와 15명의 중경상자를 낸 이 난동은 자정쯤에 진압되었고, 주모자 2명(구속) 외 35명은 연행되었으나 시내는 마치 전쟁터와 같이 공포속에 떨고 있다. 민주당 간부들이 순진한 학생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것이 분명한 이 사건은 5개 경찰서 중 하나를 아주 불살라 버리고 두 개를 전파시켰으며 심지어는 자유당과 본사 지국까지 반파하는 등 천인공노할 사태를 빚어냈다”고 보도했다.

이날 최인규 내무부장관도 진상발표를 통해 “데모군중의 사인은 압사인지 총사인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민주당 시당위원장 강선규 등 10여명이 시민을 선동하여…(중략)…마산 등지는 밀수 등을 통해 간첩들이 드나드는 곳으로 애국동포가 공산당의 사주를 받아서 법을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또 같은 날 자유당 마산시선거대책위원회도 성명서를 통해 “폭동은 결코 우연히 발생된 것이 아니라 인민공화국만세를 부르고 선동하였다는 사실, 이것은 민주당의 계획적인 음모에 의한 것이다”며 진상을 왜곡했다.

17일 서울신문은 사설을 통해 “수사당국은 본 사건을 순전히 내란을 목적으로 하는 폭동으로 규정하고 철저한 조사를 수행해야 할 것이며 배후에서 선동한 원흉들을 일일이 색출하여 극형으로 처벌해야 한다…(중략)…언론자유라는 허울좋은 간판뒤에 숨어 폭동에 환호를 보내는 일이 있다면 이 자들 또한 폭동자들과 같이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으름장으로 놓았다.

치안국장 이강학도 17일 “마산소요사건은 공산당 수법에 의해 이루어진 증거가 있어 배후에 공산당 게재여부를 수사중”이라고 발표했다. 또 18일 이기붕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총은 쏘라고 준 것이지 가지고 노라고 준 것이 아니다”는 망발까지 했다.

숨진 학생 호주머니에 '인민공화국 만세' 비라 넣어

급기야 경찰은 마산시민항쟁을 공산분자의 배후조종으로 몰기 위해 치밀한 각본을 꾸미게 된다. 경찰은 3월 12일 학생들이 뿌린 ‘백만학도여 궐기하라’는 내용의 유인물에다 ‘인민공화국 만세’라는 글귀를 써넣은 다음 도립병원 시체실에 옮겨진 김용실(18)·김효덕(19)·김영호(19)의 시신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민주당 도의원 정남규를 남로당 비밀당원이라 주장하며 “정남규의 지령에 따라 그의 아들 정현팔과 박세현·정상숙 등이 북마산파출소에 불을 질렀고, 다른 지방과 연락을 위해 무학산에 봉화를 올리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경찰은 15일 오후 6시30분 자유당 시당 앞에서 2~3명의 청년·학생이 인민공화국 만세를 불렀으며, 북마산파출소 방화범 박세현은 6·25당시 인민군 부역자였다고 발표했다.

경찰과 정권은 이처럼 자신들의 각본이 계획대로 진행될 것을 전제로 시내 모처에서 시민 대량학살 계획을 모의했다는 설이 나오기도 했다.

이로 인해 마산시민들은 16일 이후 혹시 공산주의자로 몰릴까 두려워 부상사실을 숨긴 채 병원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집에 숨어지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경남도경 수사과장 김경술은 경찰의 조작사실이 어느정도 드러난 26일 국회 진상조사과정에서도 공산당 개입설을 끈질기게 주장했다.

“군중이 모이는 가운데는 공산당이 붙기가 쉬운 것이고 공산분자가 이 가운데 없다고 또한 단정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 마산시에서는 과거 요시찰인으로 시찰을 받아온 사람이 200여명이고 또 부역한 사람이 근 30명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산시내에 이런 사람이 섞여 있는 가운데에 언제 그런 사람들과 서로 접선해서 공산간첩이 들어와 있는 지 모르는 것입니다.…(중략)…또 시청 앞에서 외치던 군중 중에는 ‘여기는 인민공화국이다’라고 말한 것을 들은 사람이 있습니다.”(국회 속기록)

‘인민공화국 만세’를 들었다고 끝가지 우긴 사람은 서울신문 마산지국장 이필재였다. 그러나 그의 말은 곧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서울신문 이필재를 제외한 다른 모든 기자들이 그 말을 들은 바 없다고 연명으로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학생들의 시신에서 나온 ‘인민공화국 만세’ 유인물도 마산경찰서 사찰계 주임 노장현 경위가 도립병원 박정석 원장을 권총으로 위협해 시신의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2살 소년을 인민군 부역자라고 우긴 경찰

북마산파출소의 방화사건도 조작된 것임이 드러났다. 특히 경찰이 6·25때 인민군 부역자라고 주장한 박세현은 22살로 6·25당시 12살밖에 안된 소년이었음이 밝혀졌다. 경찰은 12살 소년이 부역자였다는 자신들의 논리가 궁색해지자 나중엔 박세현의 나이를 32살로 조작하기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3.15의거 기념사업회.


박세현은 우연히 길을 가다 경찰에 붙잡힌 청년이었다. 경찰은 박군의 소지품 중에서 운전면허증이 발견되자 갑자기 ‘자동차=휘발유’라는 등식을 적용, 방화범으로 몰아버린 것이었다. 경찰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난데없이 바께스와 유리병·검은 헝겊 등을 가지고 와서 “이 바께스에 휘발유가 든 병을 넣어가지고 와서 북마산파출소에 던진 다음 솜에 불을 붙여 방화했다고 불어라”며 무자비한 고문을 자행했다.

이렇게 방화범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도의원 정남규와 그의 아들 정현팔, 그리고 운전수 정상숙 등을 공범이자 지령을 내린 자로 엮어 넣었다. 이들에 대해서도 엄청난 고문이 자행됐음은 물론이다.

결국 이같은 사실은 당시 서울신문을 제외한 언론의 용기있는 보도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옹호위원회의 신속한 현지조사, 국회조사단의 활동, 부산지검 한옥신 부장검사의 공정한 수사 등에 의해 경찰이 날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마산은 다시한번 ‘빨갱이의 도시’로 몰려 어마어마한 학살극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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