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1960년 4·19혁명을 부른 부정선거의 실상

기록하는 사람 2010. 4. 1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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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상 대통령선거에 소송이 제기된 적이 있어? 법은 나중이니 우선 당선부터 시켜 놔야 돼. 콩밥을 먹어도 내가 먹고 징역을 살아도 내가 산다. 국가 대업을 위해 지시하는 것이니 군수와 서장들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

뒷골목 깡패 보스의 말이 아니다. 일국의 내무부장관이라는 최인규가 3·15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전국 각 시·도 경찰국장과 사찰과장·경찰서장(165명), 군수(139명), 시장(25명), 구청장(14명) 등을 불러 모아놓고 한 말이다.

3·15의거와 4·19혁명 직후인 7월 8일 대법원에서 열린 최인규의 재판 진술내용을 보자.

재판장(정영조)=부정선거 방법을 지시하면서, 투표함을 바꿔쳐라. 그것이 안되면 불을 질러라. 그것도 안되면 기관총으로 드드륵 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면 된다고 말했는가?

자료 : 3.15의거 기념사업회


최인규=제가 기억하기로는 경남 충무시장과 경찰서장에게 지시할 때, 5·15 선거 당시 공산당 출신인 조봉암이가 한평생을 조국광복에 바친 이승만 박사보다 득표율이 높았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여하한 방법으로라도 이 박사를 당선시키라는 뜻에서 강조했던 것입니다.

재판장=자연기권표·유령표·금전매수표 등을 사전에 무더기로 투입하면 되는데, 3인조 9인조를 조직하여 조장으로 하여금 임지고 자유당 입후보자에게 투표하도록 하라고 했는가.

최인규=네.

재판장=자유당 완장부대를 동원하여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민주당 참관인을 매수하고, 그것이 안되면 변기를 가지고 들어왔다는 것을 트집잡아 축출하라고 했다는데?

최인규=축출하라는 말은 않고 매수하라고 했습니다.

(중략)

재판장=내무부장관이 되고 나서, 자유당이 이기기 위해 불법으로 세운 계획들을 모두 써먹었는가?

최인규=네.

재판장=어떻게 생각하나?

최인규=너무 심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재판장=3·15 저녁에 마산사태 때문에 국무회의를 연 일이 있는가?

최인규=그렇습니다.

재판장=그날밤 한희석으로부터 전화받은 일이 있나?

최인규=국무회의 부속실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대구에서 이기붕 표가 너무 많이 나와 야당도시에서 이렇게 나왔다면 오해받을 수 있으니 이기붕 표를 줄이는 게 어떠냐는 얘기를 하길래 감표지시를 내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재판장=국무회의에서도 그 문제를 상의했던가?

최인규=곧 국무회의를 폐회하고 치안국장실 옆 기밀실에 들어가 경북도지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때 전화로 개표상황이 그렇다면 삭감해서 발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재판장=그 다음에는?

최인규=전국적으로 표가 그렇게 많이 나오면 곤란하기 때문에 치안국장에게 전국적으로 감표를 명령하라고 했습니다.(<4월 혁명 자료집-혁명재판>, 학민사, 1983)

40%는 사전투표

이상 재판기록에서 알 수 있듯 자유당 정부는 전국에 다음과 같은 부정선거 지령을 내렸다.

1. 자연 기권표와 선거인 명부에 허위기재한 유령 유권자표·금전으로 매수하여 기권하ㅔ 한 표 등 합계 유권자 4할에 해당하는 표를 사전에 자유당 입후보자에게 기표해 두었다가 투표개시(오전 7시) 전에 무더기로 투표함에 투입할 것(4할 사전투표).

2. 자유당 입후보자에게 투표하도록 미리 공작한 유권자로써 3인조 또는 9인조를 편성하여 그 조장이 조원의 기표상황을 확인한 후 다시 각 조원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자유당 선거위원에게 제시하고 투표함에 투입하도록 할 것(공개투표)

3. 자유당계 유권자로 하여금 자유당 완장을 착용하고 투표케 함으로써 투표소 부근 일대의 분위기를 자유당 일색화하여 야당측 유권자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할 것.

4, 민주당측 참관인을 매수하여 참관 못하게 하거나, 그것이 불여의할 경우 변기를 투표소 내에 가지고 왔다는 등 구실로 시비를 걸어서 투표소 밖으로 축출할 것.

자료 : 3.15의거 기념사업회


이런 기본 부정투표 전략 외에 전국의 공무원과 사찰계 형사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유권자 포섭공작을 시행토록 했다.

1. 관공서와 관련된 사업가·인허가 대상업자·행정법규 단속 대상자를 이권과 관련시켜 포섭할 것.

2. 구 진보당과 족청계 인사·언론인·요시찰자 및 월북자 가족·무당·점술가·계주·투개표구 선거위원 등을 위협·회유할 것.

3, 명예심이 강한 자에겐 차기 지방행정 기관장이나 지방의회 의원 또는 교육위원에 추천한다는 암시를 줄 것.

4. 정계 진출의 야심이 있는 자는 자유당이나 기간(基幹) 단체의 중요 부서에 임시 임명하거나 임명을 암시해줄 것.

5. 지역사회의 영향력이 있는 자 가운데 생활이 어려운 사람은 돈이나 이권으로 매수할 것.

6. 야당 극렬분자에게는 공공연히 접근하여 술을 사주거나 자유당과 내통한 양 흑색선전을 해서 야당진영을 교란시킬 것
.(심재택, 4월 혁명의 전개과정, <4·19혁명론Ⅰ>, 일월서각, 1983)

반공청년단의 활약

실로 가공할 음모였다. 뿐만 아니었다. 엄청난 선거자금을 불법으로 조성해 전국 공무원 조직에 살포하고 반공청년단에도 거액의 자금을 지원, 민주당원들에 대한 테러와 폭력을 사주한다. 그리고 이런 음모는 전국에서 착실히 실행된다.

3월 8일 경북 상주에서 민주당 군당 선거인 김현수씨가 괴한으로부터 칼을 맞아 중태에 빠지고, 같은 날 청주에서도 벽보를 붙이던 민주당 선전원이 지서 주임의 매질에 졸도하고, 11일 여수 민주당 사무소에서 마이크를 가설중이던 김용호씨가 괴한들의 곤봉과 맥주병에 맞아 절명했다. 같은 날 전남 광산군에서는 마을 반공청년단장이 칼로 민주당원을 찔러 살해했는가 하면 양평 원주·예산·삼척·진주 등 각지에서 민주당원의 집을 습격하고 폭행을 하는 전율할 만한 사건이 꼬리를 물었다.

이런 공포분위기 속에서 마침내 3·15의 아침은 밝았다. 과연 예상했던대로 투표가 시작되기도 전에 각 투표소마다 야당 참관인이 입장을 거부당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마산의 경우 시내 47개 투표소 가운데 3군데만 참관인이 입장할 수 있었다.

이날 아침 투표소로 가는 길목마다엔 자유당 완장을 찬 당원과 녹색 제복을 입은 반공청년단원이 할당된 구역에 진을 치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이 때 마산시 장군동 제1투표소에서 카랑카랑한 여성의 고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야당 참관인이 투표함 검사도 못하게 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떳떳하다면 어디 투표함 좀 열어보라구요!”

이 투표구 참관인이었던 민주당 정남규 도의원의 부인 안맹선씨(일명 순이)는 선거위원들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자유당 참관인들은 험악한 표정으로 “벌써 확인이 끝난 일을 어디서 행패야”하며 윽박지르고 있었다. 순간 안씨는 옆에 있던 투표함 하나를 밀어 넘어뜨렸다. 과연 함 안에서 사전 투표용지가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바로 이 사건이 3·15마산의거를 촉발시키는 도화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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