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중국 한나라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은 뭘까?

김훤주 2010. 4. 1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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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그리는 미학자 김태권은 천재이거나 천재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태권이라는 젊은이와 같은 시대에 산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고도 저는 생각합니다.

그동안 김태권이 인터넷이나 단행본을 통해 그려내 보이고 풀어내 보였던 가톨릭·이슬람과 서양 근대 미술, 한나라 등등을 보면서 저는 그렇게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답니다.

1. <장정일 삼국지>와 김태권

실은 김태권이 2002년 <장정일 삼국지>에 그림을 그렸을 적부터 그이의 대단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알려진대로 <장정일 삼국지>가 출판되면서 그에 앞서 여태 '우리 사회'에 있어왔던 모든 <삼국지>들을 초라하고 남루하고 비굴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장삿속을 빼면 남는 게 없는 그런 치들이라는 것입지요.

<장정일 삼국지>는 독창적입니다. 지금도 한 번씩 뒤적거리지만, 다른 <삼국지>는 생각도 못한 게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장정일은 자기 <삼국지>를 두고 어설픈 번역 따위가 아닌 '창작'이라고 못을 박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대목입니다. 한족의 중화(中華)-자기네만 빼어나고 사방 다른 족속은 모조리 오랑캐로 여기는 남만·북적·동이·서융으로 치는 덜떨어진 사상 따위를 물리치고 맹획의 '칠종칠금'을 새롭게 풀어낸 부분이라든지 동아시아 고구려를 찌그러뜨린 대목을 반듯하게 잡아낸 부분.

여포와 동탁의 다툼에서 분쟁의 씨앗으로 그려지는 여자 초선을 과감하게 빼내어 버리고 역사에 맞춰 현실성 있게 재구성한 대목, 가장 빼어나게는 첫머리에서부터 황건적을 반란의 무리로 보지 않고 의로운 대열로 규정한 '황건기의(起義)'.

바로 <장정일 삼국지>의 이런 대목 때문에, 박종화(월탄), 김구용, 이문열, 황석영, 고우영, 정비석 따위들의, 여태 있어온 <삼국지>를 그대로 따르거나, 아니면 관점만 살짝 비틀어 마치 독창인 것처럼 비치도록 착시를 유도하는, 그런 모든 <삼국지>들이 참담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장정일 삼국지>의 이 같은 특징과 장점은, 아마 김태권 그림을 만나지 못했으면 절반도 발현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알려지고 사람이 알아보는 데에 장애가 있었을 것입니다. <장정일 삼국지>에서도 김태권의 그림은 이처럼 마음을 울렸습니다.

2. 김태권과 <한나라 이야기>

이런 김태권이, 이번에는 <한나라 이야기>를 몸소 들고 나타났습니다. 열 권 짜리 만화책인데요 지금은 그이 손에 두 권밖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1권 '진시황과 이사-고독한 권력'와 2권 '항우와 유방-제국의 붕괴'.

앞으로 여덟 권이 남았습니다.
<한나라 이야기>에는 <초한지>에서 시작해 <삼국지 연의>에 이르는 역사가 담긴답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진시황의 중국 통일과 항우와 유방의 다툼, 조조와 유비와 손권의 삼국 정립과 다툼은 다들 알지만, 이 둘이 이어지는 흐름과 과정은 대부분이 모릅니다.

김태권은 그래서 "한나라는 의외로 생소한 소재였고, 주변 사람들은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한나라인가?" 김태권은 이렇게 물은 다음 스스로 답했습니다.

"동아시아를 이해하는 열쇠가 한나라에 있다고 말씀드리겠다. 서양에서 로마 제국에 해당하는 것이 동아시아에서는 한나라다. 로마가 서양 역사에 하나의 전범(典範)이듯, 한나라 역시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그러했다.

이성계와 정도전은 역성혁명을 준비하며 <한서> '곽광전'을 돌려 읽었다. 김종직은 단종을 죽인 수양과 의제를 죽인 항우를 빗대 '조의제문'을 썼고, 연산군 때의 무오사화는 이 글 때문에 일어났다.

오늘도 우리는 (한이 초와 다투는) 장기를 두고, 뉴스에서 '토사구팽'이란 말을 만난다. 동아시아 문화에 속한 우리의 마음 속에서 항우와 한신, 관우는 2000년 내내 무수히 다시 살고 다시 죽었다.

책을 불태웠던 진시황제는 죽었지만 분서(焚書)의 공포는 후세 사람의 상상력을 사로잡았고, 유방의 제국은 사라졌지만 평민 출신도 천자가 된다는 그 판타지는 살아남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이해의 열쇠가 한나라라는 말은 맞습니다. 왜냐고요? 김태권이 했으니까요. 김태권이 "이 책을 통해 근거를 제시해 보이고 싶다. 지켜봐 달라고 독자 여러분께 나는 감히 부탁한다"고도 했으니까요. 하하.

저는 김태권의 이런 언술을 두고, 한나라와 그 앞뒤 역사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화와 사고 방식을 결정지었다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3. 김태권의 오랜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김태권은 또 '권력 앞에서 고독한 개인'에 관심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김태권은 <사기>와 <한서>, <후한서>를 중심 텍스트로 삼았습니다.

"남다른 의지를 가진 사람이 바로 그 의지 덕에 출세를 하고 또 바로 그 의지 탓에 파멸하는 비극"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있다는 것입니다.

김태권의 이번 만화책은 비아북 출판사가 밝힌 바대로 영웅 중심 사관을 걷어냈습니다. 민담과 설화에 남아 있는 판타지도 걷어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절대 권력의 고독과 비극, 폭정에 짓눌리거나 맞서는 백성들의 실천 따위를 맨살로 나타냈습니다.

항우는 더이상 용과 싸우지 않습니다. 유방 또한 하늘에서 떨어진 스타가 아니라 여러 저항과 각성의 흐름 가운데 하나를 대표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4. '대립'은 지금 여기서도 계속된다

그러고 나면 핵심으로는 대립이 남습니다. 크게 나눠보면 황제와 백성의 대립입니다.

이를테면, 진시황은 지부와 동관과 갈석산에 세운 비문을 통해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가져와' '백성의 삶을 편하게 했다'고 보면서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습니다.

"백성을 불쌍히 여겨 군사를 일으켜 토벌하고" "여섯 나라 군주를 잡아 주멸하고 천하를 통일해 전쟁을 영원히 그치게 했으며" "법령으로 죄없는 이들을 보호해 편안한 생활을 누리지 않는 이가 없게 됐다"고 적혀 있습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겠지요. 다만 진시황이 하지 않은 얘기, 진시황이 적지 않은 역사도 없지 않고 있을 따름입니다.

김태권은 말합니다. "대규모 토목사업과 사상 통제에 대해서 정작 비문은 침묵하지요. 과연 백성들은 이 프로파간다(선동)의 주장대로 마냥 행복했을까요? 그렇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이후의 역사가 보여줍니다."

백성과 황제는 생각이 서로 달랐습니다. 지금도 지배하는 집단과 지배 받는 집단은 생각이 다릅니다. 각자 자기 처지에 따라 생각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만이 아니라 행동도 당연히 다릅니다.

진나라 백성은 고통스러웠습니다. 진시황은 그런 사정은 알려 하지 않고 오히려 백성들이 자기를 믿지 않고 받들지 않는다고 미심쩍어합니다.

여기에 한나라와 그 앞뒤 역사가 아픈 까닭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픔이 한나라와 그 어귀에만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역사는 그래서, '언제나' 아픕니다.

4대강 살리기 사업 따위로 난리법석인 대한민국은 어떤가요? 국민은 고통스럽습니다. 대통령은 이런 사정은 보지도 살피지도 않은 채 국민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고 쳐 주지 않는다고 삐져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옆에서 저처럼 떠드는 소리를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백 배 낫습니다. 한 권에 1만2000원입니다. 

김훤주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 10점
김태권 글.그림/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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