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다니러 온 며느리 일 안시키는 서글픈 사연

김훤주 2010. 4. 13. 17:25
반응형

서정홍 선배는 합천 가회 나무실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이런저런 시와 글을 쓰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이는 한 해 농사 수입이 600만원밖에 안 된다는데도 늘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선배를 울적하고 슬프게 만드는 일이 있습니다. 원래는 서른 집이 넘었으나 이제는 열 집 남짓밖에 없는 나무실마을에서, 어르신을 만나 이런 얘기를 들을 때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얘기입니다. "청산가리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 청산가리는 맹독성 극약입니다. 이런 극약을 어르신이 갖고 다닌답니다.

오히려 어디 꿩이나 멧돼지·고라니·노루 같은 산짐승을 잡는 데 쓴다면 좋겠는데, 그게 아닌 것이었습니다.

"내가 먹고 죽을라고……. 내 몸 움직여 돌아다니지 못하고 내 먹을 끼니 끓이지 못할 정도가 되면 탁 털어넣을라고." "그래야 이웃이나 자식들한테 성가시게 만들지 않지."

얼마나 쓸쓸할까요? 사람 마지막 가는 길이 이렇다면 우리 사회는 찌그러져도 보통 찌그러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엄사는 못해도, 안락사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물론 이보다 더한 일도 적지 않은 줄은 압니다만.)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시골 마을 젊은이나 어린이는 다 빠져 나가고 나이 많은 노인들만 남았습니다. 이제 이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면 누가 농사를 지을까요?

서정홍 선배는 이랬습니다. "지금 농사지으러 농촌으로 오는 이는 몸만 있어도 돼요. 세상에 빈 집도 많고 묵정논·밭도 많아요. 세(稅) 안 주고 공짜로 집이랑 농토를 빌려 쓸 수 있지요." 이미 농촌이 텅텅 비었다는 얘기입니다.

서정홍 선배 집 감나무 아래 평상에서 강운구 선생의 사진작품집을 보고 있습니다. 오른편이 선배고 왼편이 후배입니다. 저는 가운데 있습니다. 블로거 파비가 찍었습니다.

두 번째 얘기입니다. "며느리가 아들하고 다니러 오면 손주 데리고 산에 가 산딸기나 따고 놀라고 그래." 참 아름답지 않나요? 며느리를 지그시 배려하는 시어머니시니까요. 그러나 알고 보면 섬뜩합니다.

"며느리는 농사일도 하지 말라 말리고 집안일도 하지 말라 말리지. 손도 까닥 못하도록 하고 내가 다 해." 이것도 겉으로 보면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섬뜩합니다.

시어머니의 정서에는 먼저 외로움이 깔려 있고 그 위에 두려움이 덮어씌워져 있습니다. 아무도 같이 살지 않는, 자식들도 거의 찾지 않는 외로움입니다. 외롭다고 말할 상대조차도 없는 그런 외로움입니다.

두려움은, 자식마저 발길을 하지 않을까 하는 노심초사입니다. 며느리한테 일이라도 시켜 밉보이면, 자식도 못 보고 손주도 못 보게 될 것 같아 며느리를 마냥 놀게 한답니다. 오로지 즐겁게 지내도록만 만든답니다.

그러지 않으면 열 번 올 것이 다섯 번으로 줄고 다섯 번 올 것이 두 번 세 번으로 쪼그라들고, 두 번 세 번 올 것이 한 번으로 잦았다가, 한 번 오는 것조차 언젠가는 발길이 뚝! 끊어지고 만다는 얘기였습니다.

이제는 곁가지올습니다. 선배 아내(형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동행한 후배인 권범철 기자가 물었습니다.(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모님(=형수)이 언제 여기로 오셨는지, 선생님(=선배)보다 훨씬 오래 농촌에서 산 것 같습니다."

"아내가 여기 온 지는 한 해밖에 안 됐어요. 지난해 3월 왔습니다. 창원에서 공장을 다녔지요. 그런데도 나보다 더 시골에서 오래 산 것 같지요?"

"여자들은 사랑을 알고 자라서 자연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어려서, 어머니가 할머니가 누구를 위해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고 시중을 들고 베풀고 하는 것을 보면서 자랐고 원인이야 어쨌든 그것을 따라 하며 사랑을 익힌 게 아닌가 싶어요."

여성주의 관점에서 보면 혹독하게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얘기지만, 그래도 저는 그럴 듯하게 여겨졌습니다.

이를테면, 경상도 정권이 오래 이어지면서 전라도가 개발·발전에서 소외됐다는 얘기를 많이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면 오히려 파괴가 덜 돼서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처럼요.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섬김과 봉사와 희생을 강요당한 측면은 있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사랑을 알고 자랄 수 있었다면 그만큼 다행이라는 것입니다. 앞 부분 현실은 뼈아프고, 뒷부분 현실은 고맙다는 말씀입지요.

그런데 이를 아는 분에게 말했더니, 세상 일반에 적용하기는 크게 무리가 있는 견해라고 하셨습니다. 시골에서 농사 짓기 싫어하는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그렇지 않으면 농촌에 왜 여자 씨가 말랐겠느냐, 이러셨습니다.

생각을 해 보니 맞는 얘기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세상 모든 여자에게 해당되는 얘기라고 선배가 하지는 않았고, 다만 귀농으로 농촌에 살러 들어온 남녀들 가운데 남자가 적응이 더디게 되고 여자가 빠르게 적응이 되는 현상을 일러준 것이라 여기는 것이지요. 하하.

어쨌거나, 서정홍 선배 블로그 서정홍 그리고 나무실 마을 http://junghong.tistory.com 에 한 번 들어가 보십사 부탁드립니다. 아직은 썰렁하지만 곧바로 좋은 글이 많이 있을 것이거든요. '즐겨 찾기' 미리 하셔도 좋겠고요.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