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노는 듯이 일한다는 농부시인 서정홍

김훤주 2010. 4. 1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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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동물들이 모여 살던 산에 불이 났습니다. 불길은 맹렬한 바람을 불러 숲을 태웠고 모든 동물들은 무서운 불길을 피해 이리저리로 달아났습니다.

그런데 작은 새 한 마리가 10리 밖 먼 곳에 있는 저수지에서 물을 입에 물고 와 불을 끄고 있었습니다. 물론, 불길은 점점 더 커졌지요. 그러나 그 작은 새는 그래도 밤새 물을 입에 물어다 불타고 있는 산에 뿌렸습니다.

이 모습을 본 달아나던 다른 동물들이 작은 새에게 왜 혼자 끄지도 못할 불을 끄겠다고 고생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작은 새가 울면서 대답했습니다.

저 불길 속에 타고 있는 나무와 꽃과 작은 벌레들은 이제까지 나의 가장 친한 벗이었다고, 지금 친구들이 불에 타고 있다고."


지율 스님이 쓴 책 <초록의 공명>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양산 내원사에서 천성산 산지기를 소임으로 맡고 있던 지율 스님이, 고속철도 터널 천성산 관통 반대운동을 벌이던 2005년 펴냈습니다.

불교식으로 얘기하자면, 지율 스님은 함(有爲)이 너무 많았습니다. 지금 지율 스님은 정부의 4대강 살리기를 빙자한 낙동강 죽이기 운동을 반대는 하고 있지만 옛날 같은 함은 이제 없습니다.

당시 지율 스님은 스스로 끌어온 이야기에 나오는 새처럼, '불타고 있는 친구-나무와 꽃과 작은 벌레들'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안타까워서,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들다시피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지율 스님은, 낙동강을 죽이는 함안보 따위와 강바닥 긁어내기를 반대하면서도, 그리 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그런 태도를 보이십니다. 정부의 낙동강 죽이기에 매이거나 맺히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입니다.

그 사이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대상이 천성산에서 낙동강으로 바뀌었습니다. 정권이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5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농부이면서 시인인 서정홍 선배도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바뀐 것도 같지만 이러나저러나 변화는 있었습니다.

달그리메님 사진. 2010년 1월에 찍었습니다.


물론 선배를 만나면 좋은 말로 등줄기나 머릿속을 시원하고 서늘하게 해 주시는 것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58년 개띠'인 이 선배에게는 은연 중에 언제나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당위가 느껴졌습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는 '저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당시는 그런 것이 옳은 줄 알았고 저 또한 당위의 세계에 둥지를 틀어놓고 있었으니 전혀 부담은 없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아무래도 조금은 갑갑한 틀 같은 것이 조금조금은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합니다.

달그리메님 사진. 마찬가지 올 1월 찍었는데, 왼쪽 서정홍, 손을 든 사람이 저, 마주 보이는 형수, 맨 오른쪽이 블로거 파비.


그런데 이번에 합천군 가회면 중촌리 나무실마을에 살고 있는 서정홍 선배 부부를 찾아가 만나고는 그런 느낌이 툴툴 털려나가 버렸습니다.

선배 집 뜰에 심겨 있는 장미.


앞에 나온 <초록의 공명>에 나오는 새를 빌려 얘기하자면, 힘껏 물을 길어 불을 끄려고 애를 쓰면서도, "왜 그리 발버둥이쳐지지 않는 발버둥이를 그토록 치느냐"고 다른 동물들이 물었을 때, '울면서'가 아니라 그냥 담담한 표정으로 "안 돼도 어쩔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힘껏 하는 거지." 이렇게 얘기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지요.

옛날에는 문명 비판 같은 얘기를 많이 자주 했는데, 그런 얘기가 거의 없어졌습니다(제가 느끼기에). 남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런저런 비판보다는 이런저런 칭찬이 많았습니다.(옛날에도 그랬지만) 자기 자신을 어떻게 추스르며 사느냐는 얘기가 참 많아졌습니다.(이 또한, 옛날에도 그랬지만)

일을 일로 여기고 일한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노는 듯이 일한다고 했습니다. 놀이가 먼저고 노동은 다음이었습니다. 노동이 놀이가 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는 얘기였습니다.

같이 감나무 껍질을 한 나절 벗겼는데, 일손이 없는 가운데 장정 셋(저랑, 블로거 파비랑, 후배 권범철)이 생겼으니 나름 일 시킬 욕심을 부릴 법한데도, 그리고 일감이 남았는데도, 마치기로 한 시각이 되니까 선배는 바로 일을 마쳐 버렸습니다.

선배 사는 나무실 마을의 들판.


그러면서 내일 모레 다른 작업을 할 텐데 이렇게 다 벗기지 않아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서정홍 선배는 툭, "올해 못하면 내년에 하고, 내년에도 못하면 그 다음 해에 하지요." 말했습니다. 아울러 웃으면서, "마음 내키면 아무리 일이 쌓여 있어도 그냥 놀지요." 이랬습니다.

나무실마을 건너편 언덕과 거기 핀 진달래.


농부 시인 서정홍, 블로거가 됐다

생태 농업을 하는 서정홍 선배와 밤 깊은 시각 술도 한 잔 했습니다. 누군가가 일하기 지겹지 않으냐, 사람이 없어서 외롭지 않으냐 이렇게 물은 것 같습니다.(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서정홍 선배는 두 물음을 단박에 해치웠습니다.

"산에 들에 일하러 나가면 즐거워요. 친구들이 있거든요. 벌레도 친구고, 나비나 벌도 친구고, 풀도 나무도 친구고, 벼나 보리도 친구고……." "날마다 자라고 달라지는 게 즐거워요. 보살피고 얘기하는 재미도 대단하고요."

선배 경지를 제가 제대로 똑바로 알지는 못하지만, 선배 말에 거짓이 그다지 섞여 있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힐끗 봤더니 선배 얼굴 표정이 아주 부드러웠습니다. 옛날에는 조금 강단이 있는 그런 냄새가 났었지요.

이런 선배를 위해, 우리는 블로그를 만들어 드리고 왔답니다.

무슨 이익이 아니고, 이런 선배의 생각과 마음이, 그리고 삶과 행동이, 세상 좀더 많은 사람들이랑 소통하면서 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그림 그리는 후배 권범철이 벌써 이렇게 자기 만난 느낌을 형상화했네요.

서정홍 그리고 나무실 마을 http://junghong.tistory.com, '시작이 소박하였으니 나중도 소박하리라.'

선배가 뭐라거나 말거나, 저는 선배에게서 그 자유자재한 고졸(古拙)이 갈수록 더욱 많이 뿜어져 나오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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