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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홍보지가 혁명열사 김주열 폄훼 말썽

기록하는 사람 2010. 4. 5.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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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시보>라는 신문이 있습니다. 경남 마산시에서 발행하는 시정홍보신문입니다. 이 신문은 무려 10만 부가 넘게 발행되어 각 가정에 배달됩니다. 경남에서 발행되는 모든 지역일간지보다 발행부수가 더 많습니다. 그 신문이 이번에 제대로 사고를 쳤습니다. 그 신문이 이번에 제대로 사고를 쳤습니다.

마산 3·15의거와 4·19혁명 50주년을 맞아 특집기사를 쓴 것까지는 좋았는데, 결정적으로 4월혁명의 대표적 열사인 김주열의 죽음을 폄훼하고 왜곡시켜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마산시보>가 저지른 이번 사고는 1년 전인 지난해 3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희망세상>이 한 페이지에 걸쳐 정정보도문을 실었던 실수를 딱 그대로 반복한 셈이어서 많은 사람이 어처구니없어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는 4월 11일 '김주열 열사 50주기 범국민장'을 준비하고 있는 '김주열 열사 추모사업회'(마산대표 백남해, 남원대표 김영철)와 장례위원회(상임공동위원장 김영만)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분개하고 있습니다.

마산시보에 실린 김주열 열사 폄훼 기사.


문제가 된 <마산시보>의 보도는 "김(주열) 군은 3월 15일 밤 이모할머니 집인 자산동 향원다방 맞은편 샛별미장원에서 저녁을 먹다말고 구경나간 것이 27일 후에야 최루탄을 맞은 시체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는 부분입니다. 이 표현대로라면 김주열 열사는 '불의와 독재에 항거한 열사'가 아니라 '재수없는 희생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 보도는 명백히 사실을 왜곡한 것입니다. 작년 3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희망세상>도 "무학초등학교 옆 이모할머니댁에서 시위를 구경하러 나왔다가 변을 당햇던 것이다"라고 잘못 표현했다가 곤욕을 치른 바 있습니다.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최루탄이 눈을 관통한 끔찍한 모습으로 떠오른 김주열 열사.


이 표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제 블로그에서도 제기한 바 있는데(☞
누가 김주열과 그 어머니를 모욕하는가), 이후 <희망세상>은 사실확인 과정을 거쳐 7월호에 한 페이지를 몽땅 정정보도문으로 할애한 바 있습니다. <희망세상>은 잘못된 부분을 이렇게 정정했습니다. "김주열은 형 광열(19세, 당해 고교졸업)과 함께 시위대에서 경찰과 대치하여 투석전을 벌이는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피격되어 현장에서 산화했다."

<희망세상>이 이렇게 정정할 수밖에 없었던 근거는 국가의 공식 재판기록에서도 확인됩니다. (☞김주열 죽음 왜곡, 3개월만에 정정보도)

● <법적으로 사망 위치가 인정된 자료>
피고인 박종표는 서기 1960년 3월 15일 오후 7시경 …전기 군중에 소휴한 최루탄 12발을 순차 발사함으로써 그 중 한발인 232호 최루탄이 前記지원 앞 노상에서 시위 중이던 군중의 일원인 김주열(17세)의…동인을 살해한 후 동인의 사체를 …(1961 9월 30일 혁명재판소 심판부 1부 재판장 심판관 高영보, 마산발포사건 재판기록)


김주열 열사의 죽음을 왜곡한 기사에 대해 정정보도문을 게재한 '희망세상' 2009년 7월호.


위의 기록에서처럼 김주열은 시위의 선두에 해당하는 지점에서 정면으로 최루탄을 맞아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숨졌으며, 그날 밤 악질 친일 헌병보 출신의 박종표 경비주임에 의해 돌에 매달린 채 바다에 시신이 유기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모할머니댁에서 구경하러 나왔다' 운운하는 것은 근거도 희박할뿐더러, 설사 그런 말이 있었다 하더라도 당시 공포분위기 속에서 모든 희생자와 부상자들이 적극적인 시위 가담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꾸 이처럼 김주열 열사의 의로운 죽음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일들이 이어지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추모사업회나 장례위원회는 3·15의거와 4·19혁명을 독점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모종의 세력이 있다고 보는 분위기입니다.

최근 또다시 김주열 열사의 죽음을 폄훼해 말썽을 빚고 있는 '마산시보'.


그런 세력이 마산시 등 행정기관과 밀착하여 순수 민간단체인 '김주열 열사추모사업회'를 고립시키려 한다는 의심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최초로 시민의 단결된 힘으로 정권을 무너뜨린 1960년 3·4월 혁명, 그 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김주열 열사를 두고 이런 폄훼와 왜곡, 그리고 이를 둘러싼 의심과 갈등이 계속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산시가 이번 <마산시보>의 잘못된 보도 사고를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자못 궁금해지는 것도 그런 배경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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