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관광지 기념식수 푯말에 적힌 흐뭇한 사연

기록하는 사람 2010. 4. 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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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세계박람회 개최도시인 여수시가 지역홍보를 위해 유치한 블로거 팸투어 첫 날 동백꽃으로 유명한 오동도를 찾았습니다. 오동도는 한창 동백꽃이 절정이더군요.

모두들 동백에 취해 있을 때 오동도 정상 등대 부근에서 특이한 푯말과 석물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기념식수를 알리는 석물과 푯말이었습니다.

알다시피 대개 기념식수란 한 자리 하는 권력자들, 즉 자치단체장이나 각종 기관장 또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등이 스스로 다녀갔음을 알리기 위해 나무 한 그루 심어놓고 그 앞에 자기 이름을 새긴 돌을 박아놓는 겁니다. 작년에 경주의 각종 신라유적지에도 유독 기념식수가 많았는데, 거기도 기관장과 선량들 외에 신라귀족들의 후손인듯한 각종 종친회 회장들의 기념식수가 많은 게 특징이더군요.

바다에서 본 여수 오동도.


그런데 여수 오동도에서도 기념식수 표지석을 발견하고 으례 그렇고 그런 권력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겠거니라고 생각했죠. 어떤 작자인지 궁금해 가까이 다가가보았습니다.

어? 그런데 그런 사람의 표지석이 아니었습니다.


뭐라고 새겨져 있는지 한 번 읽어보시죠.

"기념식수 / 모친 팔순 및 외손자 출생 기념 / 200. 5. 11  김○○ 김○○"


이거 뭔가 신선하지 않습니까? 이런 평범한 시민들이 어머니의 팔순과 외손자 출생을 기념해 나무를 심고 거기에 이런 표지석을 남기다니. 저는 이런 것 처음 봤습니다.

그래서 이런 게 또 있나 주변을 둘러봤더니 또 있더군요.


이건 "아버님 칠순 기념' 식수입니다. 남산동의 백(白) 씨 형제가 세웠군요. 흐뭇해서 절로 미소가 피어났습니다.


이런 나무 푯말도 있었습니다. 나무의 수종과 기념식수 일시, 그리고 사연과 심은 사람의 이름을 인쇄한 푯말이었습니다. '결혼 32주년을 맞아 부부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심었다고 하네요. 나무는 후피향나무입니다.

사실 돌로 표지석을 박는 것보다 이런 나무푯말이 훨씬 수수하면서도 좋았습니다. 이런 푯말과 함께 나무를 심은 부부라면 그야말로 백년해로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요?


앞의 것들과 약간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신세계 이마트가 여수점 개점 기념으로 심은 나무의 표지석도 있었습니다.

여수시 관계자에게 물어봤습니다. 시에서 이런 기념식수 행사를 개최한 적이 있냐고 말입니다. 시에서는 따로 그런 행사를 한 적이 없지만 오동도 관리사무소에 양해만 얻으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오동도 정상 등대 앞에는 마치 몽마르뜨 언덕처럼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이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근처에서 기념식수 푯말을 발견했습니다.


이건 정말 권장할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지석이나 푯말의 일정한 규격을 정하고, 시민들 누구나 자신의 소망을 적어 기념식수를 하게 한다면 이게 관광지의 재미있는 볼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가요? 전국의 다른 지자체에서도 한 번 도입해볼만 하지 않을까요?


오동도 동백꽃처럼 순결한 사랑이 느껴지는 기념식수 푯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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