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한 컷

93년 연단에서 춤추는 고 문익환 목사

기록하는 사람 2008. 4. 26.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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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마산의 열린사회 희망연대 김영만 전 상임대표가 지난 2006년 자료를 정리하던 중 우연히 찾아낸 사진입니다. 91년인지, 93년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답니다. 하지만 사진을 본 독자들이 93년 경남대 한마관이 맞다고 확인해주더군요.

지금 경남도민일보 서울파견기자로 있는 정봉화 기자는 당시 1학년 새내기로 문익환 목사에게 꽃다발을 전해줬던 기억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93년 강연차 마산을 찾은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왼쪽)가 김영만 전 희망연대 상임대표와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다. ⓒ김영만 전 희망연대 상임대표 제공

당시 김 전대표가 상임의장으로 있던 ‘민주주의 민족통일 마창연합’이 늦봄 문익환 목사를 초청, 경남대 한마관에서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사진에선 문 목사(왼쪽)와 김영만 당시 의장이 활짝 웃으며 춤을 추고 있네요.

요즘엔 민간차원의 북한 방문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민간인이 북한을 방문하고 김일성 주석까지 만나는 일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죠. 그런 엄혹한 상황에서 문 목사가 89년 3월 평양을 전격 방문, 김일성 주석과 함께 ‘해방 50주년(95년)을 통일의 원년으로 만들자’고 합의한 것은 어마어마한 충격이었습니다.

문 목사는 그해 4월 13일 김포공항에 도착한 즉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죠. 당시 그의 나이는 71세. 문 목사의 법정 진술은 이랬습니다.

“그래 찬양·고무했다. 맨날 욕하고 그러면서 통일이 되겠어? 상대방의 좋은 점을 자꾸 찾아내 찬양·고무해야 하지 않겠어.”

이 일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은 문 목사는 90년 10월 건강 악화에 따른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 전국에 강연을 다니며 통일을 역설했습니다.

"그래 찬양 고무해야 통일 되지 않겠나"

이처럼 석방 후에도 문 목사의 통일열정이 사그라지지 않자 노태우 정권은 91년 6월 형 집행정지를 취소하고 다시 그를 감금합니다. 문 목사는 93년 3월 다시 출소하여 그 해 7월 제4차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본부장을 맡았는데, 사진의 이 장면은 그 때로 보입니다.

김영만 당시 의장은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내가 막 문 목사를 청중들에게 소개한 후, 문 목사가 연단에 오르는 순간 문 목사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가 흘러나왔고, 그 노래를 청중들이 목청 높여 따라 불렀지. 그래서 둘이 약속했던 것도 아닌데 즉흥적으로 문 목사가 춤을 추기 시작했고 나도 덩달아 몸을 흔들게 됐던 거야.”

당시 강연장은 복도와 무대 바로 밑까지 청중이 가득 앉을 정도로 꽉 찼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연회 직전 김영만 의장이 문 목사를 모시고 지금의 마산상공회의소 앞에 있는 어떤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었는데, 식당 주인이 문 목사를 알아보고 끝까지 밥값을 받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김 의장 기억으로 당시 강연을 마친 문 목사는 당시 마산YMCA 이사장이었던 허정도 현 경남도민일보 사장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94년 1월 18일 문 목사는 끝내 통일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아마도 이 사진이 마산시민과 함께 한 문 목사의 마지막 기록인 듯 합니다.

꽃다발을 전해줬던 정봉화 기자는 "하얀 두루마기의 까칠하면서도 시원하고 포근한 느낌도 기억에 남는다"며 "그래서인지 이듬해 문 목사님 돌아가셨을 때 더 가슴아파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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