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별 의미없는 것

쇠락한 농촌에 유일하게 남은 동네점빵 풍경

기록하는 사람 2010. 2. 1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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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는 끝났지만, 저는 아직 시골 고향에 있습니다. 설 직전 병원에서 퇴원한 아버지를 혼자 두고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곧 정리할 회사에는 일단 휴가를 냈습니다.

설 쇠러 왔던 자녀들이 모두 떠난 시골마을은 한적하기 그지없습니다. 여기서 저는 사흘째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고 치우고, 식후 약을 챙겨드리고 무료하게 텔레비전을 보다가, 다시 밥을 짓고 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물을 끓일 보리차가 떨어져서 사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차가 없습니다. 물론 운전도 못합니다. 여기서 읍내까지 가려면 10리 길입니다. 택시를 대절내면 왕복 1만 4000원입니다. 보리차 하나를 사기 위해 택시비 1만 4000원을 쓰긴 아깝습니다.

큰 길가에 올라가면 당연히 가게가 있을 걸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함께 붙어 있는 4개 마을을 다 뒤져도 구멍가게 하나나도 찾을 수 없더군요.

설 연휴동안 객지에서 찾아온 자녀들의 승용차로 가득했던 마을안길은 고즈넉하기만 합니다.


과거 제가 여기서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닐 땐 적어도 너 댓 개의 문방구를 겸한 가게가 있었습니다. 이발소도 두 개나 있었고, 커다란 목재소도 있었습니다. 풀빵을 구워 파는 가게도 있었고, 마을회관엔 구판장도 있었습니다. 정미소(방앗간)도 세 개나 있었습니다.

여기는 목재소가 있던 곳입니다. 저렇게 공터로 비어 있었습니다.


아, 한참을 찾아보니 딱 한 군데 가게가 남아 있더군요. 그러나 이 가게는 그야말로 쇠락한 시골 '점빵'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물론 제가 사려던 보리차는 없었습니다. 진열대에 놓여 있는 과자류는 유통기한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딱 한군데 남은 동네 점빵의 바깥에서 본 모습.


이 점빵은 점빵이라기 보다 노인들이 가끔 들러 막걸리를 마시는 장소 정도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노인들만 사는 쇠락한 농촌의 점빵을 카메라에 담아봤습니다. 

이렇게 가게 안에는 판자로 만든 길쭉한 식탁이 놓여 있습니다. 길쭉한 의자도 있고요.


식탁 옆에는 술도가에서 가져온 탁주 상자가 있습니다.


막걸리 잔이 한켠 가득히 쌓여 있습니다.


변면에는 주류판매점에서 나온 맥주회사 달력이 걸려 있습니다. 이 최신 달력이 퇴락한 가게 풍경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네요.

가게 진열대의 모습입니다. 미원으로 대표되는 조미료와 식용유, 조리퐁, 신라면도 보이는군요.


진열대를 좀 더 가까이서 봤습니다.


원래 저 빨간지붕의 집도 가게였습니다. 담배도 여기서 팔았지요. 그러나 이 가게는 문을 닫은지 오랩니다. 그 옆에 이발소도 있었는데, 역시 영업은 하지 않습니다.


저기 파란지붕의 집은 탈곡기와 원동기 등 농사에 필요한 기계들을 수리하는 정비공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폐가로 남아 있습니다.


마을을 소개하는 빗돌에는 조선 중기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기시작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조선 중기 이후 가장 인구가 적은 시기가 지금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미소가 모두 사라지다 보니, 이렇게 집집마다 정미기를 따로 두고 쌀을 찧어 먹습니다. 연로하신 아버지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손자인 제 아들녀석과 정미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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