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탐험가 콜럼버스와 스텐리가 악당인 까닭

김훤주 2010. 2. 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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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은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나누는지요?

이를테면 산업 발전을 위해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이 있고 노벨이 그렇게 선의로 발명한 다이나마이트를 전쟁을 위한 무기 생산에 써먹은 이들이 있습니다.

노벨은 선하고 무기 생산에 써먹는 이들은 악하다고 할 것입니다. 의도가 선하거나 의도가 악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생각해 봅니다. 의도가 선하면 그만인가?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는지?

현실에 적용해 보면 이런 따위 선과 악의 구분이 어떤 소용에 닿는지 모르겠다는 듯도 싶습니다. 선의든 악의든,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를 개발하지 않았으면 그것으로 전쟁 무기를 만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물론, 노벨이 안했으면 다른 어떤 사람이 다이나마이트 비슷한 물건을 발명했겠지만, 그것은 적어도 노벨의 발명보다 앞서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면 적어도 다이나마이트를 악용한 전쟁 무기 만들기는 조금이나마 늦춰질 수 있었습니다.

현실에서는 이처럼 선과 악이 뒤섞여 있습니다. 선이 악을 만나 참담한 결과를 만듦으로써 선에 대해 회의하게 만듭니다.

악이 선을 만나는 바람에 오히려 상황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악이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도 합니다.

<세기의 악당>은 술술 잘 읽히는 책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교열상태는 좋지 않지만,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들만 악당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보다 더한 악당들이 세상을 움켜쥔 채 흔들었으며 지금도 움켜쥐고 흔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2008년까지 미국을 다스렸던 그 나라 대통령 조지 부시가 그렇습니다.

2008년부터 대한민국을 통치하고 있는 이명박 선수가 그렇습니다. 부시나 이명박에게서,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눈길을 느끼기는 아주 힘든 노릇입니다. 악당으로 공인된 악당보다, 이런 비공인 악당이 더 나쁜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세기의 악당>은 악당의 범주를 넷으로 나눴습니다. '권력'에서는 네로 로마 황제, 중국 무측천, 교황 인노첸시오 3세, 러시아 뇌제(雷帝) 이반 3세를 다뤘습니다.

'야망'에서는 항해왕 엔히크를 비롯해, 탐험가로 알려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프란시스코 피사로, 헨리 스텐리를 담았습니다.

'집착'에서는 에르제베트 바트리 여백작(일명 '여자 들라큘라'), 제정 러시아의 성직자 라스푸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생체실험을 주도한 범인 이시이 시로가 나오고, '사상'에는 소련 이오시프 스탈린, 독일 아돌프 히틀러, 중국 마오쩌둥, 캄보디아 폴 포트가 불려 나와 있습니다.

글쓴이 이종호는 머리말 '악당은 왜 악에 매료되는가'에서 "들어갈 사람을 선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악당으로 이미 알려진 사람도 있지만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주제의 선택에 따라 보는 시선과 각도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객관적인 테두리 안에 모든 사람들을 포함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다"고 했습니다.

<세기의 악당>은 악행의 구체 모습과 악행을 저지른 동기·목적, 악행이 당대와 역사에 끼친 영향 따위를 일러준답니다. 그러나 평가는 독자들이 스스로 내리도록 했습니다. 글쓴이는 "가능한 객관적으로 설명"할 따름입니다. 이런 식이지요.

선한 리빙스턴

악한 스텐리.


영국 출신으로 미국인 언론인·탐험가·사업가였던 헨리 스텐리는 1871년 아프리카 오지에서 죽음을 눈 앞에 둔 리빙스턴 박사를 발견했습니다.

아프리카 탐험 역사에서는 '가장 가슴벅찬 순간'이기도 하지만, '아프리카로서는 가장 불행한 순간'이며 '가장 사악한 사건이 태동하는 순간'이기도 했답니다.

선교사인 리빙스턴의 아프리카 탐험은 목적이 아프리카의 현대화와 노예사냥 금지였습니다. 현실과 맞지는 않았지만,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의 산물을 유럽과 교역하고 그렇게 해서 이익을 백인들이 누리게 함으로써 흑인 노예 사냥을 멈출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이다.

리빙스턴은 그래 아프리카를 횡단하면서 얻게 된 갖가지 산물과 사람과 지리에 대한 정보를 그려넣은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리빙스턴이 스텐리의 도착으로 원기를 회복하자 두 사람은 함께 5개월 동안 아프리카 내륙을 탐험했다. 의기가 어느 정도 통했는지 리빙스턴은 중앙 아프리카의 타보라 근처에서 헤어지면서 자신이 탐험한 지역을 그린 지도 한 장과 일기장, 메모 등을 건넸다."

스텐리는 리빙스턴의 지도를 고상한 목적에 절대 쓰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아프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는 데 악용했습니다. 스텐리는 벨기에 임금 레오폴드 2세와 손잡고 '콩고 회사'를 차리고 아프리카 진출에 들어갔습니다.

그러고는 콩고 전역을 돌면서 "원주민 추장에게 구슬이나 옷감 등을 선물하고 갖고 간 종이 위에 그 종족의 표시를 그리거나 X표를 찍게 했습다. 아프리카인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호의의 표시로 찍어준 종이는 뒷날 아프리카를 침략하는 통한의 전면 위임장으로 변하였다."

선한 리빙스턴과 악한 스텐리가 만나지 않았으면, 적어도 콩고에서 이런 장면의 발생은 좀 늦춰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학살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유럽 다른 나라들이 아프리카 내륙으로 들어와 식민지 경쟁을 하도록 부추겼습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 국경이 직선인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글쓴이는 스텐리를 가장 사악한 인물로 꼽습니다.

"리빙스턴이 호의로 준 지도를 이용하여 아프리카를 제국주의의 희생물로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지금도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스텐리에 의해 촉발된 식민지화는 아프리카를 필요한 것을 수탈하는 장소로 만들었을 뿐 아프리카인들에게 어떠한 혜택이나 자산도 돌려주지 않았다."

"스텐리는 세계의 역사가 한 개인의 영달과 물욕에 의해 얼마나 변질될 수 있으며 또 큰 파장을 갖고 올 수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한 장본인이다."

읽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시는지요.

김훤주
세기의 악당 - 10점
이종호 지음/북카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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