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지율 스님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김훤주 2009. 12. 2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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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2) : 더욱 부드럽고 작아졌다

지율 스님이 달라졌습니다.

예전 천성산 터널 관통 반대 운동을 할 때는 어딘지 모르게 결기 있고 의지가 굳은 냄새가 풀풀 났는데, 이번에 만나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치 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그렇지만 물론 아직도 삭이지 못한 것들이 있어서,  어떤 때는 물 위에 떠 있는 얼음처럼 딱딱하고 차갑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만. 스님은 예전보다 더 작아져 있었고 더 말랑말랑 부드러워져 있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12월 14일 마산 수정 트라피스트 수녀원에 만났습니다. 요세파 원장이 말합니다.

강연을 들으면서 든 느낌이에요.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 스님 자신이 깃발을 들고 반대하면 우리 사회가 두 쪽이 난다는. 시대가 내지르는 신음을 마음으로 듣고 계신다는. '강과 함께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어쩌면 쉽게 할 수 있는 얘기지만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것 같아요.

요세파 원장과 지율 스님.


이런 말씀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지율 스님한테)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는지 짐작이 됐어요. 이처럼 시대를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수녀들도, (지율 스님과 마찬가지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지만 사태가 풀리지 않고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아 헛헛해서 모셨는지도 모릅니다. 속에 있는 얘기를 그대로 많이 하셨어요.

(해설 : 트라피스트 수녀원은 수정 마을 사람들과 함께 STX의 수정만 매립지 진입을 막아왔습니다. 그러나 법률 절차가 거의 다 끝났고 행정 절차도 여기저기서 착착 진행되는 데 더해, 수녀원과 마을 곳곳에서 도로가 나거나 산업단지가 들어서거나 석산 개발을 하거나 하는 STX 진입을 전제로 한 갖가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수녀원과 마을에서 할 일이 이제는 없는 셈입니다. 소송이다, 시위다, 기자회견이다, 농성이다, 서울행(行)이다를 닥치는대로 할만큼 했지만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는 세상의 장벽 앞에서 느끼는 그런 헛헛함을, 요세파 수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율 스님이 원장 수녀의 말을 받아 잇습니다.

부모가 자식이 병상에 있을 때 심정이랄까, 부모는 자식을 땅에 묻어도 묻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오죽하면 가슴에 묻는다는 표현이 나왔을까요.

(수녀원 강연에서) 나무 얘기를 한 것 같아요. 천성산은 터널 안으로 들어가니까 제대로 못 봤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낙동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공사 현장마다에서 나무들이 베어지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베어지고 있어요.
 
나와 나무가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나고 자라 왔는데, 같이 왔다갔다 했는데, 나무들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같이한 나무가 무너지고 있는 거예요.

코스타리카와 독일 통일을 생각하는 때가 많습니다. 동독과 서독을 가르는 장벽이 무너진 것은 오보 때문이라 그래요. 그런데 오보를 현실로 만든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오보를 듣고 사람들이 손에 망치를 들고 나오지 않았으면 장벽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마음마다 맺혀 있었던 현실이, 절실함이, 많은 이들에게 담겨 있던 한결같은 마음이, 오보를 현실로 만든 것입니다.

(해설 : 1989년 11월 9일 저녁 7시 동독 공산당(SED) 선전 담당 비서인 귄터 샤보브스키 정치국원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지금 이 순간부터 동독 국민들은 모든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주민들은 장벽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샤보브스키의 표현 '지금 이 순간부터'는 '실수'였다고 합니다. 공산당 정치국은 국경 개방에 관한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였답니다. 그러나 강물은 이미 흘러가버렸습니다.)

코스타리카는 이렇습니다. 국토의 70%가, 커피 농장으로 말미암아 파괴가 됐을 때 국민적 결의를 끌어내어 더 이상 파괴하지 말자 이랬습니다. 그 뒤로 코스타리카는 30년 동안 자연 보호에 힘썼습니다. 그 결과 세계에서 생물 다양성이 1위인 나라가 됐고 세계 조류의 4%가 사는 그런 나라가 됐습니다.

사람들 마음의 힘입니다. 청와대나 대법원을 향해 높은 곳으로 소리지르는 대신, 낙동강 강가로 가고 거기 농사짓는 사람들 사이에 가는 까닭입니다.

다시 요세파 원장이 말을 받습니다.

코스타리카 얘기를 하시는데 이런 얘기도 하셨어요. 코스타리카에서는 유권자들이 선거를 할 때 후보자들한테 '불편하게 살겠다'고 공약을 하게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드는 생각이 이랬습니다. 우리는 언제 그런 세상이 될까 싶어서, '그리움'이 다 들더라고요.

봉쇄 수녀원인 수정 트라피스트 수녀원이 공개한 강연 사진.

지율 스님이 다시 말을 이어갑니다.

저는 두 힘이 같이 간다고 봐요. 4대 강 살리기를 하고자 하는 힘이 있으면 그것을 막으려고 하는 힘도 있습니다. 선과 악이 함께 붙어 있습니다. 이렇게 같이 가는 데, 그렇게 공격적으로 하고 싶지 않아요.

천성산 운동을 할 때, 처음 슬픔을 느끼고 다음에 분노를 했고 그 다음에 다시 내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소임이 무엇인지 느꼈습니다. 아픔의 땅에서, 함께 아플 수 있어서 고마움을 느꼈어요. 진짜로. 그러면서, 힘들지만 아픔을 치유하는 힘 에너지가 생겨남을 느꼈습니다.

절대 안 된다는 그런 것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절대 안 되는 것은 세상에 없었어요.


정부가 들어서 저로 하여금 끊임없이 공부를 시키는 거예요. 강으로 오게 하고, 강에서 소리를 듣게 하고, 강에서 들은 소리를 전하게 하려고 더욱 귀를 기울이게 하고 그래요.

생명들하고 내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공유한 시간을 사람들과 마주보고 이야기를 해 나갈 수 있는 거지요. 우리의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라 해도 그것으로 끝장나는 그런 선택은 아니거든요. 잘못된 선택조차 끌어안고 가는 것입니다. 강물처럼.

강물에 장애가 얼마나 많으냐, 강물에 구비가 얼마나 많으냐, 강물에 여울 또한 얼마나 많으냐……. 그런데도 강물은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는겁니다. 요즘은 다름을 인정하라는 말이 크게 들립니다. 공존해야 하는 거지요, 공존하지 않을 수 없어요. 풀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용어가 너무 좋아요.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으면서. 녹색 개발 친환경, 그런데 우리는 삽질을 멈춰라 하는 식이지요. 저 쪽은 부드럽고 우리는 거칠고……. 언어를, '삽질'처럼, 사실인 언어도 있지만 순화할 필요도 있지 않느냐 싶어요.

그래서 카페 이름을 '어찌 이 곳을 흐트리려 하십니까'로 정했는데 그 아래 1박2일 낙동강 순례길 이쪽을 클릭해 놓기를 '숨결 느끼기'라 했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가 숨결이 가빠지듯이 그런 숨결을……. 회룡포, 내성천, 해평 습지, 안동구담…….

수녀나 비구니나 모성(母性)으로 느끼는 부분이 셉니다. 우리가 모성적인 힘을 좀더 밝혀야 하지 않느냐 생각했습니다. 아래로 가자는 얘기입니다. 예전에는 청와대 앞에 무릎꿇고 대통령을 뵙자고 했으니까…….

그런데 위로 보고 하니까 힘들었는데 지금 아래로 하니까 힘들지 않거든요. 나아가 이웃과 함께 하니까 좋습니다. 이제는 상대방에게 요구조차를 하지 않는 겁니다.

(해설 : 상대방에게 요구조차를 하지 않는다……. 이는 상대방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랑 통합니다. 옛날 천성산 때에는 청와대에 기대하는 바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노무현에게는 기대를 하고 이명박에게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그런 천박한 인식이 아닙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알게 됐는데, 그것이 저 위에 있지 않고 요 아래에 있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청와대에 요구하는 운동이 아니라 농민들이랑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운동을 해야 마땅하다는 얘기입지요.

바로 그러므로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운동도, 당장 못하게 하는 것<그럴 힘이 없기도 하지만>이 목표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돌릴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서, 사람들 생각과 의지를 모아나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도록 하는 게 목표가 됩니다. 제게는, 참 멋졌습니다.)

김훤주

초록의 공명 - 10점
지율 스님 지음/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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