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전기톱에 잘린 연리목 그루터기를 보고

김훤주 2009. 12. 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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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된, 그러나 하나가 될 수 없는

그루터기가 하나 있습니다. 아니, 둘이군요. 연리목(理木)이라 해도 되겠군요. 두 나이테를 들여다 보니, 둘 다가 아무래도 쉰 해는 지난 것 같아 저보다는 오래 살았지 싶습니다.

고개를 숙여서 잘린 단면을 살펴봤습니다. 세월의 더께가 많이는 묻어 있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올해 여름 즈음에 성능 좋은 전기톱에 발목이 잘렸겠지요.

저것들, 살아서는 한 나무로 여겨졌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리 잘리고 보니 두 그루임이 드러났겠지요. 이것들 붙어 있었지만 그 붙어 있음 때문에 사랑도 했겠지만 끔찍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땅 밑을 물끄러미 내려다 봤더니, 저것들 사람한테 보이지 않는 데라 그랬는지 아마 뿌리가 서로 징그럽도록 엉겨 붙어 있겠다는 짐작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저 두 그루 나무는 비슷한 때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한 날 한 시에 똑같이 쓰러졌습니다. 쓰러지는 방향은 서로 달랐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비슷한 때에 싹을 틔웠다고 행복해 했을까요? 아니면 동시에 생명을 잃었다고 즐거웠을까요? 아니면 이 모든 것이 그냥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들 마음 작용일 따름일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런 것은 있겠지 싶습니다. 어느 하나만 먼저 쓰러지면 남은 하나는 허전했을 것입니다. 뿌리뿐 아니라, 둥치뿐 아니라, 더 위로 이어지는 줄기까지도 서로 밀고 당기고 부대꼈을 테니까요.

하나가 된 두 나무의 그루터기. 하나가 되지 못한 두 나무의 그루터기. 겉으로 보기에 하나 같았고,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두고 화목한 무엇쯤으로 일컬을 수 있었을 저것들.

그러나, 안으로는 길항(拮抗)을 거듭하며 사랑과 미움을 나이테 사이사이 쌓았을 이 나무들. 그래도 같이 넘어졌기에 쓸쓸함과 허전함은 몰랐을 저것들.

창녕 화왕산 관룡사 들머리에 조용히 놓여 있습니다. 사람들 눈길 주지 않으면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지난 세월 담았을 사랑과 미움은 이제, 아무 길항도 없이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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