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내가 소개할 책을 고르는 몇 가지 기준

김훤주 2009. 11. 2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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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나름대로 책을 소개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첫째는, 잘 팔릴 책은 소개하지 않는다, 입니다. 잘 팔릴 책은 소개하는 보람이 없습니다. 여기서 일부러 소개하지 않아도 잘 팔릴 테니까요.

행여 제 소개로 말미암아 한 권이라도 더 팔린다 쳐도, 그것은 그야말로 저 동해 바다에 오줌 한 방울 더하는 셈일 따름이니까요. 그래서 생각의 좌우를 떠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이들의 책은 잘 다루지 않습니다.

둘째는, 돈벌이를 잘 되게 해준다는 책은 소개하지 않는다,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벌이라면 사족을 못 씁니다. 돈이 된다고만 하면 사람도 잡아먹는 세상입니다. 아무리 고상하게 포장한다고 해도 결국은 욕망의 시대적 표현일 뿐인 돈벌이는, 피를 부르고 나서도 절대 멈출 줄을 모릅니다.

돈벌이는 세상을 거칠게 만들고 사람을 잔인하게 만들고 자연까지 돈으로 상품으로 찌그러지게 만듭니다. 그러니 이런 책을 일부러 소개할 필요가 제게는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여기서 소개하지 않아도 어지간하면 이런 책은 다들 잘 팔립니다.

우리 이시우 기자가 고른 사진인데, 느낌이 아주 가난하네요.


셋째는, 몸이 가난해지고 마음이 욕망을 지우게 만드는 책은 적극 소개한다, 입니다. 몸이 가난하다는 말이 무엇인지는 저도 잘 압니다. 몸에 집에 머리에 무엇을 담아두지 않는다는 것입지요. 마음이 욕망을 지운다는 말은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마음이 가난하다고 한답니다.

다른 사람을 자연을 사회를 어떻게 하겠다는 욕심에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은 상태. 다른 사람이 자연이 사회가 있는 그대로 들어와 턱 걸치고 앉거나 누울 수 있도록……. 그냥 사회나 자연이나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 마음가짐.

넷째는, 우리 지역 사람이 펴낸 책은 적극 소개한다, 입니다. 지역에도 사람이 없지 않습니다. 지역에 사람이 모자라지도 않습니다. 지역에 모자라거나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네트워크입니다. 서울이 무서운 까닭은, 지역에 있는 사람까지도 자기네 네트워크로 포섭·장악해 버린다는 데에 있습니다.

여기 이 책 소개가 지금은 별 보람도 없고 크게 표시도 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름 뜻이 있다면 언젠가 지역에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때 크든 작든 보탬이 되고 밑거름이 되고 씨앗이 될 개연성을 품고 있다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기준으로 삼아 온 이 네 가지를 한꺼번에 충족해 주는 책은 정말 찾기 어렵습니다. 마음을 비우(게 만드)는 책이라는 세 번째 기준에 어울리는 책은 더욱 드뭅니다.

그런데 이번에 나타났습니다. 밀양에 사는 30대 청년 선생님이 쓴 책입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자기것으로 삼을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우정'이며, 교육은 그저 땀이자 숨결이고 사랑일 뿐, 그 정신의 가난함 외에 어떤 완숙한 물적 조건도 부차적이며, 오히려 해악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의 가난함을 해치는 '것'들을 이렇게 직지(直指)해 놓았습니다. "자기 만족과 안락에 대한 충동, 그리고 풍요에 게걸든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욕망들을 하치시켜 놓은 곳이 바로 교육의 영역이라고 나는 느낀다.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의 목록들은 이렇게 하치된 욕망들의 다른 이름이다."

아주 당연하게도,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에는 글쓴이 이계삼의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그 마음가짐은. 조금 선풍(禪風)을 부리는 흉내를 내자면, 아무 가짐이 없는 가짐입니다. 읽다 보면, 이런 표현이, 마음에 울림을 억지로 주려고 일부러 꾸민 말글이 아님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뇌병변 1급 장애인) 박상호씨 부부와 그의 친구들이 장애인 정책 8대 요구안을 내걸고 밀양시청 청사 앞에서 농성 채비를 차렸을 때, ……그는 다시 시청으로 들어가기 위해 휠체어로 바리케이드를 수도 없이 들이받았다. 그는 결국 휠체어를 팽개치고, 막아선 공무원들을 뿌리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절규를 하면서, 바리케이드를 넘었다. 100m는 족히 됨직한 시청 청사 앞마당을 그는 오직 그의 두 팔로 기어서 청사 앞으로 왔다. 기어오면서 그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그의 일그러진 얼굴 위로 줄줄 흘러내렸다."

아마도 이계삼은 이렇게 쓰면서 울었을 것 같습니다. 쓰던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서 담배 하나 피웠을지도 모릅니다. 저 같은 무심한 인간조차 이 대목에서 눈물을 떨어뜨렸을 정도니까요.

이어집니다. "그날 나는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박상호씨 부부의 삶과 투쟁을 이야기해 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며칠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박상호씨가 그날 시청 앞마당을 기어오던 모습이 떠올라 감정이 허물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감정이 허물어질 것 같아 이야기해 주리라 다짐하고도 이야기해 주지 못하는', 마음가짐. 박상호보다 더 박상호를 깊이 느껴버려 말문을 열 수 없을 정도가 되도록 만드는 마음가짐. 마음이 충분히 가난해져 있지 않으면 세상 어느 누구도 자기것으로 삼을 수 없는 마음가짐이 아니겠습니까?

'교육'만을 두고 쓴 책이 아닙니다. '교육'만을 생각하게 하는 책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책을 이명박 대통령은 절대 읽지 못할 것 같습니다. 글자를 몰라서가 아니고요. 마음의 가난함이 무엇인지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리스도 경전에 나오는 "마음이 가난한 이는 복되다, 하늘나라가 그들 것이다."도 무슨 말인지 모를 것입니다.

몸이든 마음이든 가난하면 죽는 줄 아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이들에게는 권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하.

김훤주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 10점
이계삼 지음/녹색평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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