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아이 책 고를 때 도움이 되는 책

김훤주 2009. 11. 25.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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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평론이라는 장르는 진짜 대중적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비(非)대중이 아니라 반(反)대중이라 해야 맞을는지도 모를 정도로요.

80년대 이전 문학 평론이 지금보다 많은 이들에게 읽힌 적이 없지는 않지만, 평론은 대체로 '그들만의 사랑방'이었습니다. 그 사랑방에는 작가와 평론가들만 모이다시피 합니다.(어쩌다 신문·방송의 기자 나부랭이가 끼이기도 하고요.)


특히 어린이 또는 청소년 문학에 대한 평론은, 그야말로 참된 독자인 어린이나 청소년은 쏙 빠진 채로, 어른 작가와 어른 평론가만 모여 자기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자리일 때가 참 많았지 싶습니다.

물론 이런 서술은, 그이들 평론에 진정성이 없다고 여기거나 그 진정성을 값어치가 덜하다고 깎아내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독자는 빠져 있다 하더라도, 그런 평론가의 평론과 그런 평론에 대한 작가의 반응이 피드백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문학 작품의 창작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평론의 수혜는 결국 독자 몫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태까지는 문학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에게 평론집을 권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독자들도 충분히 읽어볼만한 보람과 값어치가 있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책이 하나 손에 집혔습니다.


물론 까닭이 있습니다. <동화의 숲을 거닐다>에서 글쓴이 황선열 평론가가 일러주고 있습니다. 첫째 까닭은 이렇습니다. "아동문학 비평을 시작하면서 가장 고민한 것이 비평의 눈높이였다. 아동문학 비평은 '아이들을 위한 비평'이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논리로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아이들의 논리로써는 이해할 수 있는 비평. 아이들의 눈높이로, 아이들의 심리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게 해야 할 것이다."

둘째 까닭이 이어집니다. "아동문학 비평은 아이들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기도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책을 선택하게 하는 어른들에게도 유익해야 한다. 아동문학 비평이 일반 문학 비평과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까닭은 아이들과 어른들의 눈높이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중간자의 시선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이런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화란이'를 읽는 내내 실제로 이런 비행 청소년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들은 원조교제, 술과 담배뿐만 아니라 본드도 하고 절도도 하는, 극단에 있는 아이들이다. 보통 청소년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특별한 청소년들의 이야기이다.

이런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보통의 청소년들이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오히려 그들과 다른 공간에 있는 아이들의 세계 때문에 역효과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화란이'는 특별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문제작이지만, 청소년들에게 해독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김남중의 <자존심>에 실린 일곱 편의 동화에는 여러 가지 가치를 발견할 수 있지만, 이 글에서 분석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폭력성, 생명의 자유에 대한 것이다. 동물도 감정이 있겠지만, 사람의 감정이 우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기르는 가축은 사람의 감정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간의 폭력성이고, 동물의 자유를 빼앗는 행위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이러한 구속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 동화는 그런 장치를 쓰고 있는 것이다."


"<용과 함께>는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살아가는(혹은 견디어내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뤘다. 현대 가족관계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측면도 있지만, 반대로 아이들에게 너무 일그러진 가족관계를 보여준다는 비판도 받을 수 있다.

밝은 세계만 보여줘야 한다는 관점을 벗어난 시도라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래도 마치 불우한 가족관계가 아니면 소재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여겨져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이 동화는 불우한 가족관계 속에서 새로운 가족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수직적 가족관계에서 수평적 가족관계를 회복하는 진정한 가족관계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제가 보기에는 동화에 대해 어른의 눈과 어린이의 눈으로 고루 들여다 보고 있음을 일러주는 표현들입니다. 보여주는 어른과 받아들이는 어린이의 눈길이 알맞게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나치면서도 동시에 무의식적인 어른 관점의 개입에 대해서는 훨씬 매서운 소리를 냅니다. <대통령의 눈물>. 황선열은 "대통령의 순수한 눈물을 통해서 밝고 건강한 아이들의 미래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고 칭찬하면서도 문제점으로 "순박한 아이(주인공 다님이)를 '꼬마 아줌마'로 만들어"버렸다고 짚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인형으로 장식하고 궁전처럼 만들어 살면서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 죽은 엄마를 생각하면서도 잃어버린 엄마를 가슴에 묻으면서 슬픔을 삭일 줄 아는 아이. 공원에 잠을 자는 할머니가 부를 때, 처음 만나는데도, 다가가서 친근하게 할머니의 요구를 들어주는 용감한 아이, 슈퍼에 가서 생수를 사 가지고 와서 건네주고 할머니의 어려움을 귀담아 들어주는 천사표 아이, 시장도 혼자서 보고 밥과 된장찌개도 혼자서 척척 해낼 수 있는 '꼬마 아줌마 다님이', 그 아이는 우리 시대 아이의 표상이 아니라 어른들이 만들어낸 강요된 아이일 뿐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골라 주려고 할 때 아주 쓸모가 많은 갈래와 기준을 내보여 주는 그런 책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읽기도 쉽습니다. 산지니에서 펴냈습니다. 335쪽. 1만5000원.

김훤주
동화의 숲을 거닐다 - 10점
황선열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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