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이번엔 잠자리로 전문가 뺨친 변영호

김훤주 2009. 11. 2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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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글을 쓰는 으뜸 까닭은 당연히 거제 계룡초등학교 변영호 선생의 노력을 돋보이게 하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뒷면에는 게으름을 피우며 돈 되는 프로젝트에만 매달려 맡은 연구와 조사를 소홀히 하는 이른바 전문가라고 일컬어지는 대학이나 연구기관 연구자들의 행태를 꼬집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서서는 민물에 사는 물고기와 긴꼬리투구새우를 갖고 전문 연구자들 뺨을 쳤는데, 이번에는 잠자리로도 변영호가 이들의 뺨을 사정 없이 후려쳤다는 비유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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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호는 앞에 말씀드린 대로 1999년부터 거제도 전역을 샅샅이 온몸으로 누비면서 2005년에는 긴꼬리투구새우(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에 대해, 올해는 동료 교사들과 동아리를 이뤄 거제 지역 민물에 사는 물고기에 대해 새로운 조사·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 변영호가 2007년에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놓은 적이 있는데요, 그것이 바로
2007년 7월 발표해 제53회 전국과학전람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거제도산 잠자리목 분포상 연구'랍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 동안 조사·연구한 성과를 총괄한 것으로 하청면 칠천도, 거제면 명진저수지 오수리, 동부면 삼거림저수지, 둔덕면 술역 아랫저수지, 동부면 산양천 일대, 연초면 수월리 둠벙, 사등면 요량 저수지 등을 뒤진 결과였습니다.

변영호의 잠자리에 대한 조사·연구는 긴꼬리투구새우에 대한 조사·연구와 마찬가지로 거제도에서 처음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당시까지 곤충 전반에 대한 조사 기록은 두 가지-환경부의 1995~97년 곤충상 조사와 2002년 <거제시지>에 실린 곤충 분포상-가 있었지만 잠자리만 집어 다룬 것은 없었습니다. 

변영호의 동맹 세력.


이 같은 사정은 거제뿐 아니라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여서 잠자리 서식 분포 현황 연구는 충남 지역과 공주 지역, 제주 지역 세 곳밖에 돼 있지 않았답니다. 대학이나 전문 연구 기관에 종사하는 연구원이나 교수 같은 이른바 '전문가'의 업적이 이런 정도뿐이었던 것입지요.(증말 게으르지요? 하하)

변영호는 이런 상황에서 거제도의 지리 특성에 주목해 2004년 잠자리 조사·연구에 나섰습니다. 변영호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인 거제도는 곤충 살기에 좋은 환경인데다 한반도 내륙 생태계의 최남단이라서 여기 어떤 잠자리가 사는지가 확인되면 한반도 전체의 잠자리 서식 실태를 잘 파악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당시까지 거제도에 있는 것으로 문헌에 나와 있는 잠자리는 환경부 24가지 거제시 25가지였고요 중복되는 부분을 감안하면 모두 34가지였답니다.

배에 점이 두 개 있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나 봅니다. 두점배좀잠자리. 변영호 덕분에 국산 이름을 얻은 녀석입니다.


변영호의 이번 작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우리나라 미기록종-학명 Sympetrum fonscolombei(Selys, 1840)을 처음으로 찾아내어 새로운 잠자리 종으로 이름을 올린 데 있습니다. 두점배좀잠자리.
 
변영호는 논문 '거제도산 잠자리목 분포상 연구'에서 "2004년 칠천도에서 두 마리를 발견해 한 마리를 채집 표본해 한국 최초로 관찰했다"며 "한국잠자리연구회 정광수 회장이 '두점배좀잠자리'라 이름을 붙여 국명(國名)으로 삼았다. 일본에서도 (정착종이 아닌) 비래종(飛來種)으로 분류해 오다가 최근 서식이 확인됐다"고 했습니다.

이번 조사·연구에서 변영호는 48가지 잠자리를 관찰했습니다. 옛적 문헌에 남아 있는 잠자리 가운데 묵은실잠자리와 산깃동잠자리를 비롯한 일곱 가지는 몸소 확인하지 못했답니다. 여기서 변영호는 산깃동잠자리와 붉은좀잠자리가 거제에 살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런 판단 근거는 산깃동잠자리는 1000m 이상 고산지대에 살고, 붉은좀잠자리는 북방 계열이라는 데 있었습니다.

이렇게 변영호는 자기가 직접 본 48가지와 보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있으리라 짐작되는 다섯 가지를 더해 거제도에는 53가지 잠자리가 서식한다고 결론지었습지요. 중요한 사실은 이 가운데 변영호를 통해 거제 서식이 처음 확인된 것이 미기록종(두점배좀잠자리) 하나를 포함해 무려 22가지나 된다는 점이랍니다.

등검은실잠자리·등줄실잠자리·왕실잠자리·작은등줄실잠자리·푸른아시아실잠자리(실잠자릿과 5),
방울실잠자리(방울실잠자릿과 1),
먹줄왕잠자리·남방왕잠자리·황줄왕잠자리·긴무늬왕잠자리·개미허리왕잠자리·도깨비왕잠자리(왕잠자릿과 6),
어리부채장수잠자리(측범잠자릿과 1),
백두산북방잠자리·잔산잠자리(청동잠자릿과 2)
넉점박이잠자리·홀쭉밀잠자리·밀잠자리붙이·두점배좀잠자리·애기좀잠자리·들깃동잠자리·하나잠자리(잠자릿과 7) 등.

개미허리처럼 잘록한 부분이 있네요. 개미허리왕잠자리.


새롭게 서식이 확인된 잠자리 가운데 백두산북방잠자리와 개미허리왕잠자리, 남방왕잠자리는 좀 더 눈길을 둘만한 것들이라 합니다. 논문에서 변영호는 개미허리왕잠자리가 거제에서 확인된 사실을 두고 "일본 곤충학자 도이가 1936년 서울에서 처음 채집한 이래 줄곧 중부 이북에서 발견됐는데 이번에 거제에서 발견됨으로써 분포가 한반도 전역에서 가능하다"고 밝혔겠지요.

아울러 남방왕잠자리를 두고는 "정착종은 아니고 날아다니는 능력이 좋아 (베트남 등에서) 바다를 건너온 것으로 보이며 5월부터 우리나라에 비래(飛來)한다"고 했으며 백두산북방잠자리를 두고는 "보기 드문 잠자리로 우리나라서는 주로 북쪽 지역에 산다. 이번 거제도 발견은 한반도 내륙 생태계 최남단 서식 기록이다"고 했습니다.

이 가운데 개미허리왕잠자리와 남방왕잠자리는 변영호의 발견 이후 한국 전역에서 서식이 확인됐답니다. 변영호의 발견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관찰하게 된 결과라 하겠습니다. 이로써 변영호가 '한반도 전역이 서식지'라고 한 판단이 사실로 입증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변영호가 이처럼 온몸으로 지역을 훑으며 조사·연구한 덕분에 거제도는 민물에 사는 물고기와 긴꼬리투구새우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뿐만 아니라 잠자리의 서식 실태 현황에 대한 자료까지 갖출 수 있게 됐습니다. 거제도는 복받았습니다. 전문가들은 도대체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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