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30대 주부와 나눈 정치 이야기

기록하는 사람 2008. 4. 1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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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는 게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직업인 것 같지만 알고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출입처의 한정된 사람들이나 동료기자 외에는 특별히 만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속내를 털어놓고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물론 제각각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유유상종이기 십상이다. 기자라고 해서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 특히 행정기관을 출입하는 기자들에게 가끔 이런 충고를 한다. 자신이 쓴 기사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을 반드시 체크해보라는 것이다. 그나마 형이나 누나, 동생, 어머니, 아버지가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와 가장 근접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걸 통해 출입처 공무원이 좋아하는 기사가 일반 독자에게는 얼마나 따분하고 재미없는 건지만 깨달아도 내 충고는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은혜 유정현도 있는 한나라당이 부자 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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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몇 일 전 나 역시 우리끼리 파놓은 우물에 빠져 있었다는 걸 깨닫는 계기가 있었다.

총선 직후인 지난 11일 30대 주부 한 분을 만나 선거 이야기를 하게 됐다.

한나라당의 과반의석 확보 얘기를 하면서 "앞으론 병에 걸려도 환자가 아무 병원에나 갈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했더니 놀라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와 민영의보 활성화 정책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당장 "그런 걸 왜 신문에는 내지 않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그는 집에서 <경남도민일보>와 <동아일보>를 구독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에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총선 최대쟁점 부상'이라는 제목으로 크게 보도한 적이 있다고 응수했으나, "그렇게 보도하면 누가 알겠느냐"고 따졌다. '아파도 병원 아무데나 못간다'는 제목으로 내야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것이다. 또 그런 중요한 문제는 열 번이고 백 번이고 계속 신문에 내야 한다고 흥분했다. 그는 <동아일보>에서도 그런 기사는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왜 그런 나쁜 제도를 만드려 하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부자들 편'이라고 했더니 그럴 리가 없단다. 근거는 MBC 출신의 김은혜와 SBS 출신의 유정현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대통령실과 한나라당에 갔는데, 어떻게 부자들 편이냐는 거였다. 한나라당이 그런 유명인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거고, 그들은 출세를 위해 간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우리끼리' 파놓은 우물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결국 이 부분에서 그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그동안 나는 이런 설득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만 만나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하고 쉽고 명쾌하게 '한나라당은 부자들 편'이라는 걸 입증할 논리를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그는 '아파도 아무 병원이나 갈 수 없다'는 것과 그걸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신문에 대해선 상당한 문제의식을 갖는 것 같았다. <경남도민일보>는 내가 권유해서 보는 거지만, <동아일보>는 어떻게 구독하게 됐느냐고 물었다. 상품권 3만원과 6개월 무료구독 조건이 맘에 들었단다. 기회다 싶어 이 때부터 조·중·동의 해악에 대해 침을 튀기며 설명했고, 마침내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로 바꿔보겠다는 말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나도 그동안 우리끼리의 우물에 빠져 있었지만, 진보운동가들 역시 진보끼리의 우물에 갖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자유주의가 왜, 어떻게 나쁜지 설득할 준비를 갖추지 못한 채 반대구호만 외쳐왔고, 이명박식 '선진화'의 실체가 무엇이며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 단순 명쾌하게 설명하는 논리도 아직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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