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직책'이 '완장'으로 느껴지는 세상에서

김훤주 2008. 4. 1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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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전에 다른 분들의 블로그나 카페 미니홈피 들에서 글을 읽을 때, 글 쓴 이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 한 적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얼마나 될까,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어떤 동네에 살고 있을까, 등등.

내용이 같은 글이라도 글 쓴 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르게 읽을 수 있는(때로는 다르게 읽어야 하는) 소지가 있다고 봤기도 했고, 그래야 소통이 잘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때에 따라서는 이런 일을 하니까 이렇게 느끼고 이렇게 표현을 했겠구나,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겠거니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이들도 저와 같으리라 보고, 이번 블로그에 앞서 다른 블로그를 만들었을 때 저의 이력을 되도록 자세하게 밝혔습니다. 몇 살이나 됐는지와 어디서 사는지와 지금 어떤 데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따위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도, 여태껏 간단한 이력을 넣거나 아니면 제 이름 뒤에 제가 맡고 있는 직책(職責, 책임지고 맡은 일)을 적어 넣었습니다. 제 글을 보시는 분들이 저에 대해 궁금해 하실 수도 있겠다 싶어 그리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짧았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직책이 무슨 권위나 특권을 나타내는 ‘완장’ 쯤으로 비치기도 한다는 점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댓글에서 ‘그렇게 높은 데 있는 분이……’ 하시는 경우도 있고 무슨 뻐기려고 그렇게 적었느냐는 글투도 봤습니다.

이 때문에 참기가 좀 어려운 일까지도 생기더군요.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이라는 이름 뒤 괄호 안 직책을 보시고서, 댓글에다 “아무리 지방지가 후지다고 해도……”라거나, “언론노조 수준을 알 만하네……”라 적으셨을 때입니다.

어느 분이 짚어주신 대로, 제가 글을 잘못 썼다 해도 그에 대해서만 비난이든 비판이든 주시면 될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제가 들어 있는 단체나 조직까지 싸그리 욕하시니 그 단체나 조직에 못할 짓을 제가 하는 것 같기도 해서 사실은 견디기가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직책을 이름 뒤에 괄호를 쳐서 밝히던 일을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제 글을 읽으시는 분 가운데 “이 글 쓴 녀석이 대체 무엇 하는 친구야?” 궁금해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로 말미암아 다른 엉뚱한 단체나 조직이 욕을 먹게 할 수는 없겠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어떤 인간인지 궁금하시면, 전자우편으로 물어주시기 바랍니다. 24시간 안에 답을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훤주

완장 상세보기
윤흥길 지음 | 현대문학 펴냄
한국전쟁 이후 정치권력의 폭력성과 보통 사람들의 암울한 삶을 해학적 필치로 그려낸, 소설가 윤흥길의 대표작으로, 권력의 피폐한 모습을 해학과 풍자의 거울로 들여다보았다. 해학성의 두루뭉실한 그릇에 담아 대상을 원천적으로 수용해버리는 웃음의 처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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