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돈독' 오른 한국사람들이 바뀌려면…

기록하는 사람 2009. 10. 2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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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국민도 식겁 먹어봐야 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을 본 독자들 중 '국민을 모욕하는 글'이라느니 '위험한 발상'이라는 지적을 해준 분들도 있었다. 위험한 생각일진 모르겠지만, 지금도 나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동안 나름대로 '혜택'을 보아온 당시의 '친여 시민단체'나 '친여 성향의 신문'들이 현 정부 들어 가장 탄압받는 상징처럼 엄살을 떨거나 반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정작 김대중·노무현 정권 아래서도 혜택은커녕 현 정부와 다름없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단체나 매체는 묵묵히 해오던 일을 그냥 계속해오고 있는데, 유독 그런 '옛 친여 단체' 사람들이 더 설치는 것 같아 얄미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아직 더 고생해봐야 해'라는 생각을 한다.

강유원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압승을 기원한다"

얼마 전(10월 19일) 철학자이자 서평가인 강유원 박사가 마창여성노동자회 초청 강의를 위해 창원에 왔다.

강유원 박사의 강의. 수강생 중 남성은 나 혼자 뿐이었다.


이날 강의에서 강 박사는 "앞선 정권에서 정부 지원이나 기업 후원도 많이 받고 잘나가던 단체들이 지금 가장 어렵다고 한다"면서 "그런데 여러분이나 나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른 게 없잖아요. 어렵다는 점에서…"라며 사람들을 웃겼다.


그는 또 '사람들이 더 쓰라림을 겪어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차원에서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여당(한나라당)이 압승하길 기원하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인간은 실존적 위기에 처하지 않으면 여간해서는 정치적 의식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철학자 강유원이 이렇게까지 말한 이유는 이랬다. 지금 한국사람들은 박정희 시대 고도성장의 경험과 부동산을 통해 큰 돈을 벌어본 경험으로 인해 '돈독'이 올라 있으며, 이로 인한 탐욕과 공포(한순간에 모든 걸 잃을 지도 모른다는)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중산층의 고민 10가지 중 8가지는 '아파트'

특히 수도권의 '돈독'은 아파트로 표현되는데, 서울 중산층이 갖고 있는 10가지 고민 중 8가지는 아파트 때문이며, 아파트 값만 유지·상승시킬 수 있다면 누구라도 찍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파트를 갖고 있는 중산층 이상의 서울시민 중 상당수가 원금 갚을 능력은 없고 이자만 갚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의 경제위기가 적어도 5년은 간다고 본다. 그는 "2008년 세계 경제의 특징은 미합중국 금융시스템의 붕괴이며, 이는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에 주요한 한계를 보여주는 징후"라고 말한다.

불황의 결과, 과거처럼 1,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을 겪지는 않을 것 같지만 지금 우리 속에 가득찬 '돈독'을 빼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이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래서 그는 "이 시기가 자본주의의 조정기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새로운 체제를 구축해볼 수 있는 때"라고 여긴다. 다시 말해 "지금 심각한 경제불황에 처해있지만, 이처럼 성장율 0%의 시대야말로 탐욕으로 가득 찬 우리를 정화하고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를 구축하는 설계를 시작할 때"라는 것이다.

그의 강의 중 일부를 직접 들어보자.



저는 사실 내년 지방선거에도 이명박 정권, 여당이 압승으로 끝나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왜냐, 박정희 시대부터 가져왔던 성장의 기쁨, 그게 너무 강해요. 그래서 쓰라림을 겪지 않으면 그걸 무너뜨리기 어려워요.

여긴(경남 창원) 좀 덜해요. 그런데 대구에만 가도 달라요. 대구에서 환경운동하시는 분 말씀 들어보니, 공식적인 입장은 4대강 살리기를 반대하는 거랍니다. 그런데 캠페인은 안 한답니다. 캠페인 하러 나가면 맞아죽는대요. 대구에서…. 맞아죽는 분위기래요.

하다 하다 안 되니 그런 이야길 해요. 낙동강에 보가 생기면 바로 대구사과는 끝난대요. 보가 생기면 물안개가 많아지고 일조량이 줄어 사과는 끝나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있어요. 그 얘길 해줘도 악담을 한다고 그래요. 그래서 그 선생님이 그래요. 똥물 먹고 겪어봐야 알지 않겠나 싶다. 그래서 내가 그랬죠.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시면 안 되죠. 저도 사실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만은…(웃음).

그런데 이게 우리의 과거 성장의 경험이 너무 강해. 즐거웠던 나날이 너무 강해. 그래서 전두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전사모라고 있잖아요. 그 사람들 왜그런 줄 아세요. 그 사람들도 나쁜 사람들 아녜요. 전두환 때 잘 살았지 않느냐. 그 때가 제일 경제가 좋았거든요. 3저 호황이었으니…. 그러니까 전두환, 그 사람들이 전두환처럼 살인마가 아니예요. 그 사람이 그랬다 해도 그 때 잘살았지 않느냐 이렇게,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기억들을 얼른얼른 걷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공포와 탐욕, 이 두 가지로 만들어지는 돈독을 벗어야 합니다. 그걸 벗어나는 게 세계사적 흐름이예요. 그렇지 않으면 파멸이죠. 공포와 탐욕의 끝은 파멸이죠.

강유원 박사.


강 박사는 한국사람들이 '돈독'에 빠져 있다는 근거로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가 2009년 9월 1일 '통계의 날'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한국 사회통합의 미래' 보고서를 보여준다.

'성장'에 목매다는 한국 사람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사람들 중에서 '개인과 국가 모두 성장이 중요하다'는 개발연대형 비중은 56.84%로 미합중국(45.93%), 스웨덴(39.17%), 일본(37.47%), 멕시코(35.18%) 등 비교 대상 4개국보다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반면 탈 물질주의적 가치를 우선하는 '유토피아형'의 비중은 6.55%로 미국(15.28%), 스웨덴(20.94%), 멕시코(22.10%), 일본(23.3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햏다.

강 박사는 이 보고서의 내용을 가리켜 "한마디로 정리하면 '한국인은 돈독이 심하게 올라 있다'쯤 될 것"이라며 "우리의 미래는 이 돈독을 어떻게 빼느냐에 달려 있다"고 결론지었다.

강의가 끝난 후 주최측에 물었더니 따로 뒤풀이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내 안내로 강유원 박사와 함께 인근 식당에서 돼지수육과 함께 소주를 한 잔 했다. 거기서 '국민도 식겁 먹어봐야 한다'는 이야기와 일부 시민단체나 옛 친여매체를 놓고 "이명박 정권이 운동권에게도 피아식별의 기회를 주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서로 킥킥거렸다.

그가 했던 멋진 말 중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 한 마디.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것을 많이 남겨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강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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