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초등학교 교사들의 엄청난 연구 성과

김훤주 2009. 10. 13.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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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으로 지역 생태를 풀어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전문가랍시고 거들먹거리는 대학 교수들은 아마 이렇게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입니다. 예산 지원이 없으면 아예 움직이지도 않을 존재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거제 계룡초등학교 변영호·박훈구·최규태·원진안 교사로 이뤄진 남방동사리팀은 예산 지원이 없어도 움직입니다. 8월 국립중앙과학원에서 열린 제55회 전국과학전람회에서 '거제도의 담수어류상과 분포상의 특징 탐구'라는 주제로 교원 분야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이번 거제도의 민물에 사는 물고기 조사·연구에서 이룩한 이들의 성과는 전문 학자들조차도 내기 어려운 수준이라 합니다. 사라진 물고기와 새로 발견된 물고기를 확인했습니다. 이런 작업을 그 절반만큼이라도 해낸 이가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1. 거제도 미기록종 13가지 발견

이번에 발견한 거제도 미기록종 긴몰개.


1980년부터 1999년까지 선행 조사·연구에는 41종이었습니다. 남방동사리팀은 44종이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13종이 더해지고 10종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선행 조사에도 있고 이번 조사에서도 확인된 것은 31종이랍니다.

이를 두고 남방동사리팀은 먼저 "외부 요인의 간섭으로 들어온 종이 늘어나 거제도의 독특성이 사라질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내륙 수계에 사는 치리·빙어·긴몰개·메기는 물론 외래 어종인 베스(2002년 발견), 이스라엘잉어·나일틸라피아(2009년 발견)가 붕어·잉어를 방류하는 과정에서 섞여들어오거나 했다는 얘기입니다.

이번에 발견된 거제도 미기록종 모치망둑.


두 번째로 "거제도 기수 지역이 망둑어과와 회유성 물고기들에게 중요한 서식지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민물과 짠물이 섞이는 기수역에서 모치망둑·흰발망둑·돌팍망둑·얼룩망둑·별망둑·큰가시고기가 새롭게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남방동사리팀은 이렇게 많은 물고기가 새로 발견된 원인에 대해 "기수역 생태 환경이 개선됐다기 보다는 여태 조사와 관심이 모자랐기 때문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예전부터 그랬는데, 이에 대한 조사 연구를 전문가들이 하지 않았다는 꼬집음입니다. 이밖에 복섬도 새로 발견됐습니다.

반면 확인되지 않은 무태장어·쉬리·참마자·황어·왜몰개·눈동자개·꺽저기·갈문망둑·두줄망둑·가물치 등 10가지 가운데 무태장어·참마자·황어·두줄망둑은 1980년 이후 발견되지 않았고 꺽저기·쉬리 또한 1997년 이후 눈에 띄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멸절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2. 꺽저기, 쉬리, 남방동사리에 주목

우리나라서는 거제도에만 사는 물고기, 남방동사리. 보호가 필요하다.


남방동사리팀은 특히 탐진강과 둘레 하천을 비롯해 낙동강과 거제도 일부 지역에만 산다는 희귀종 꺽저기와, 동해로 흐르는 일부 하천과 영산강을 제외한 모든 곳에 사는 한국 고유종 쉬리의 멸절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밀 조사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정밀조사까지 벌였으나 결국 찾아내지 못한 쉬리.


이에 대해 "물놀이 등 사람의 간섭과 수질 오염, 하천 제방 공사에 더해 먹이 경쟁·서식지 경쟁에서 패배(쉬리)가 원인"이라며 "쉬리는 거제도 하천이 내륙 중요 하천과 과거에 연결돼 있었다는 지사학(地史學)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띠는데 이제는 문헌에서만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게다가 이전에는 한반도 섬에서는 꺽저기가 사는 곳이 거제도뿐이었습니다.

남방동사리팀은 팀 이름으로 채택한 남방동사리에도 주목했습니다. 남방동사리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제도 산양천에만 삽니다. 일본에서는 남서부 일대 키타쿠슈 지역에 살고 있답니다. 여기에 일본 남서부와 우리나라 탐진강에 살고 있고 거제도에 살았던 꺽저기를 겹쳐 보임으로써 옛날 일본과 거제도와 탐진강이 뭍으로 연결돼 있었다는 지사학적 결론을 끌어내는 성과를 냈습니다. 돋보입니다.

더불어 섬진강 자가사리와 낙동강 자가사리의 분포 현황을 재확인한 성과도 있습니다. 섬진강 자가사리는 거제도 남서부 하천에만 있고 낙동강 자가사리는 북동부 하천에만 있습니다. 둘이 한데 섞여 있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거제도가 오랜 옛적에는 섬진강 수계·낙동강 수계와 이어져 있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3. 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섬 거제도

민물고기 조사에 참여한 학생들.


남방동사리팀은 이밖에 거제도가 우리나라 섬 가운데 물고기 종류가 가장 다양한 지역임도 재확인했습니다. 이전 개별 연구에서는 28가지가 가장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44가지로 확인이 됐습지요. 진도 24가지, 강화도 22가지, 남해 19가지, 완도 16가지, 제주도 13가지, 돌산도 12가지에 견줘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음을 드러내 보인 것입니다.

또 우점종·아우점종이 밀어·갈겨니에서 참갈겨니·갈겨니로 바뀐 사실을 확인하고 하천 평탄화 등 인간 개입으로 말미암은 생태 변화로 서식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득력 있는 분석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개입과 간섭이 아무리 조그만 것이라 해도 생물들의 생태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입니다.

이 같은 성과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이들이 현장을 샅샅이 조사했다는 점입니다. 시작은 1999년 변영호가 했습니다. 그때부터 올해까지 11년 동안 소동천 산양천 고현천 연초천 둔덕천 외포천 간덕천 소동천 등을 훑어내렸습니다. 여태까지 어떤 전문 학자도 이렇게까지 거제 지역 생태를 몸으로 풀어낸 적은 없었습니다.

4. 대학교수들 게으르다 소리 안 들으려면?

남방동사리팀. 왼쪽부터 박훈구 변영호 원진안 최규태.


변영호를 비롯한 남방동사리팀은 이번 조사·연구를 통해 이른바 전문가들에게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장비와 시설과 비용과 시간이 없어서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번 연구에서 일본과 한반도와 거제도가 한데 붙어 있었다는 결론을 이끌어냈습니다. 꺽저기와 남방동사리의 존재를 통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진짜 전문가들이 나서서 일본에 사는 꺽저기와 남방동사리, 그리고 거제도에 살았던 꺽저기와 살고 있는 남방동사리를 유전자 분석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둘 사이가 얼마나 가깝고 얼마나 먼지를 따지는(이른바 유연관계 연구) 것입니다.

저는 잘 모르지만, 이런 작업은 종다양성이라든지 생물 자원 확보라는 이른바 국가 생존·발전 차원에서도 중요한 과제라고 합니다. 이른바 전문가들이, 이런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야말로 쓰레기만도 못한 대접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기록

선행 조사·연구와 이번 조사·연구 모두에서 확인된 물고기(31가지)

뱀장어 잉어 붕어 참붕어 돌고기 버들치 갈겨니 참갈겨니 치리 쌀미꾸리 미꾸리 미꾸라지 왕종개 미유기 자가사리 섬진강자가사리 은어  숭어 송사리 농어 남방동사리 날망둑 꾹저구 검정꾹저구 문절망둑 밀어 검정망둑 민물검정망둑 날개망둑 미끈망둑 사백어


선행 조사·연구에 있었으나 이번 조사·연구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물고기(10가지)
무태장어 쉬리 참마자 황어 왜몰개 눈동자개 꺽저기 갈문망둑 두줄망둑 가물치

선행 조사·연구에는 없었지만 이번 조사·연구에서 발견된 물고기(13가지)
이스라엘잉어 복섬 얼룩망둑 별망둑 모치망둑 흰발망둑 베스 나일틸라피아 큰가시고기 돌팍망둑 빙어 메기 긴몰개

김훤주

※관련 글 : 대학교수 찜쪄 먹는 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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