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대학 교수 찜쪄 먹는 초등학교 교사

김훤주 2009. 10. 1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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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장 조사 연구에 대한 심각한 푸대접

대학 교수는, 머리가 텅 비어 있어도 무슨 전문가라고 권위를 쉽게 인정받습니다. 모든 대학 교수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니까, 제 말이 지나치다고 여기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대학 교수 훨씬 뛰어넘는 전문가가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이들은 대학 교수가 아니고 전문 연구 기관에서 일하는 연구원이 아니라는 까닭만으로 지나치게 푸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이들 직업 때문입니다.

푸대접을 하는 주체는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보도 매체들이고 다른 하나는 여태 별로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전문가로 인정받아온 대학 교수와 전문 연구 기관 연구원입니다.

보도 매체는 보도 내용을 더 믿음직스럽게 만들려고 그런 권위에 쉽게 기댑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실속을 갖췄으나 직업이 '권위가 없는' 진짜 전문가는 푸대접을 받습니다. 또 교수나 연구원은 지금과 같은 이런 독점을 지키려고 푸대접을 해댑니다.

푸대접을 받는 사람들은, 지금도 사람들이 그리 푸대접을 하거나 말거나 일절 신경쓰지 않고 꿋꿋하게 알차게 조사·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에서 꼽자면 거제 계룡초등학교 선생님 변영호가 됩니다.

2. 누구도 못 따라올 변영호의 성과

변영호는 8월 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 동안 국립중앙과학권에서 열린 제55회 전국과학전람회에서 교원 분야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같은 거제 계룡초교 선생님 박훈구·최규태·원진안과 남방동사리팀을 이뤄서 말입니다. 주제는 '거제도의 담수어류상과 분포상의 특징 탐구'.

남방동사림팀 : 왼쪽부터 최규태 변영호 박훈구 원진안.


1999년부터 2008년까지 10년 동안 거제도 소동천과 산양천 고현천 연초천 둔덕천 외포천 간덕천 등을 샅샅이 조사한 결과들에 더해 올 한 해 연구를 거듭해 내놓은 성과물입니다. 연구·조사는 변영호가 주도했습니다.

변영호는 이에 앞서서 '거제도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 긴꼬리투구새우 생태 및 서식지 조사'(2005), '거제도산 잠자리목(目) 연구'(2007) 같은 연구 결과를 잇달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것들은 그 때마다 안팎에서 높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두 연구 모두 제51회와 제53회 전국과학전람회에서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신문 방송에도 집중 보도된 긴꼬리투구새우는 서식지가 남부 지역 일부 못자리 논이라는 기존 규정은 큰 잘못이며 남한 전역(북방 한계선이 경기도 연천 동막골)이라는 점을 실증했습니다.
 

서식지 표시를 잘 보세요.


이번 연구는 물론 앞서 논문들도 저마다 새로운 성과를 풍부하게 내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뒤이어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먼저 간단하게 말해 놓자면, 대학이나 전문 연구 기관에 몸담고 있는 이른바 전문가들조차 제대로 알아내지 못한(게을러서), 실적을 올린 것입니다.

모두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 거제도를 그야말로 발로 돌아다니지 않았으면 풀어낼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학교 수업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체험 학습을 하거나 사육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학교 수업 밖에서는 틈나는 대로 해당 지역을 찾아다녔습니다. 이런 변영호를 9월 13일 거제에서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3. 제대로 '뻘짓'을 하는 변영호

-10년 넘게 거제에 머물러 있는데, 거제가 고향이신지요?
△아니오. 1974년 1월 1일생인데 산청이 고향입니다. 그러나 99년 거제로 첫 발령지로 골라 온 뒤 11년째 거제에 있습니다. 바다에서 보면 뭍이 시작되고, 뭍에서 보자면 뭍이 끝나는 데가 바닷가라 생각해 선택한 측면도 있고, 도-농이 공존해서 선택한 측면도 있어요. 거제는 제가 사는 데서 어디를 가든 자동차로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조사·연구에 딱 맞는 조건이죠.

-거제 발령받자마자 바로 시작했겠습니다?
△처음에는 전통차와 풍물 같은 문화 방면 작업도 같이했는데 학생들이랑 함께하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환경 쪽으로 치중했습니다. 교육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문화와 환경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처럼 현장을 누비는 사람이 생태 연구 쪽에는 드물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저를 두고 사람들은 '뻘짓한다'고 하지요.(웃음) 전문화·세분화가 안 됐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전문가 그룹에서 저는 '현장의 본질적 궁핍함', 그리고 '조사·연구 자체가 안 됐다는 점'과 '조사·연구 성과의 공유가 안 돼 있다는 점'을 봅니다.

이론 연구나 개별 학문에서 뛰어난 능력이나 식견을 갖춘 이는 많습니다. 저는 이런 이들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현장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아무 이유 없이 다 줍니다. 제가 채증한 1차 자료까지도요. 물론 그렇게 넘길 때 관심 분야를 체계 있게 조사한 사람으로서 서글픔 같은 것은 있지만…….

-이론 전문가랄까 하는 쪽에서 충분히 인정하고 대접하지는 않으리라 짐작이 되는데요.
△실정이 그렇지 않다면, 현장에서 무언가를 창조해서 가치가 더 높아지고 대우를 더 받을 수 있도록 해야지요. 정보 자체가 새로운 가치이지요. 게다가 우리 현실이 관념적인 주장만으로는, '중요하니까 중요하다'는 식으로는 많은 우군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워졌습니다.

현장을 샅샅이 자세히 조사하고 결과를 대가 없이 공개하는 자체가 이런 우군을 양성해 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환경·생태운동의 진화·발전이지요.

4. 전문가들만의 배타적 공유 허물어야

-그래도 무언가 모자라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만.
△무슨 대접을 받고 값어치를 인정받고 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제 시절에 가능것 같지도 않고요. 하하. 일본에서 학회에 한 번 참석한 적이 있는데 이렇습디다. 이론 전문가와 현장 전문가, 일반 관심자가 한데 어울려 있습니다. 학회로부터 현장 전문가가 공간을 확보받고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학회를 위한 사람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 분들이 다가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다가가야 합니다. 저도 그래서 여러 학회에 가입해 회비를 내고 자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 전체가 발전·확대돼 나가 현장의 가치가 인정받으면 되겠지요.

그런 관점에서 전문가들만의 전유 또는 배타적 공유를 허물어야 합니다. 제가 조건없이 공개하는 까닭입니다. 이런 공개가 많아지고 있어요. 월간 <자연과 생태>에서 '생물 공개 수배'를 하지요. 연구의 영역과 지식의 지평이 대가없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긴꼬리투구새우를 보호종으로 지정해 놓고도 서식지 실태는 파악이 안 돼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호하겠다는 얘기인지 알 수 없습니다. 대학이나 전문 연구 기관에 있는 이른바 '전문가'들의 게으름 탓입니다.


-선생님 활동의 궁극 지향은 무엇일까요?
△저는 교사입니다. 교사로서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현장 체험 프로그램이나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이를테면 사육 프로그램 같은 것도 되겠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책을 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생물 도감 따위에서 A급은 죄다 일본 자료입니다. 물론 일본이나 미국 자료가 A급이라 해서 안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민들레·할미꽃이라 했을 때 거기에는 자연적 속성을 넘어서는 마음 아리게 하는 그 무엇이 있지 않습니까?

전문가뿐 아니라 어린 학생을 비롯해 일반 초보자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토착 지식을 바탕으로 한 생태'를 쓰고 싶습니다. 그러나 절로 흘러넘칠 때 내는 게 책이라고 봅니다.

5. 두려워 하지 말고 그냥 하면 된다

손에 잡혀 있는 녀석은 잠자리.


-선생님처럼 하고 싶어하는 초심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요?
△첫째 '두려워 하지 말자'입니다. 이를테면 물고기를 알아서 물고기를 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물고기를 모르기 때문에 물고기를 연구하지요. 하고 싶으면 해야 하고요, 그렇게 하려면 도와줄 사람에게 다가가게 됩니다. 요즘은 인터넷이 잘 돼 있기 때문에 찾고 묻고 조사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계속 관심을 갖고 하려면 희생이나 욕심이 아니라 신념이 요구된다'입니다. 자기 스스로 시간 내고 자기 스스로 돈 대고 하는데 이를 살아가는 목적의 하나로 삼아야 합니다. 자기 삶의 일부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시간도 내고 돈도 낼 수 있습니다.

셋째로, '기술적인 부분은 시작하는 데에는 필요 없다'입니다.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제가 한 일은 무언가를 채집해 와 인터넷이나 도감에서 그림 맞춰보기를 거듭한 것밖에 없습니다. 이게 여기 있는데 무슨 의미일까, 여기 있는 게 과연 맞나, 이것을 두고 다른 데서는 이렇게 얘기했던데 그게 맞을까 틀릴까 등등을 생각하고 따져보고 한 것이 전붑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이 잘 돼 있어서 정보·지식은 손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고 따지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해당 분야 지식이나 정보를 갖춘 사람들을 풍부하게 만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시작하는 데는 스승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필요한 것은 자세입니다.

6. 세상을 바꾸는 힘은 딱 한 사람에게서 나온다

거제도 미기록종 별망둑. 이번에 변영호 등 남방동사리팀은 거제도 미기록종을 14가지나 찾아냈습니다.


-마지막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제일 기쁜 것은 있습니다. 제가 제 방식으로 연구하고 축적하고 교육하고 산출하고 생각하고 결론을 내고 했는데, 이렇게 한 자기 식이 인정받을 때 그렇습니다. 영화 <파워 오브 원>의 마지막 대사가 떠오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이럴 겁니다. "세상은 많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변한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딱 한 사람이다."

저는 다른 여러 사람들보다 결코 잘 난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전부 옳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류나 실수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진정성을 갖춘다면 그런 따위는 충분히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냥 신념은 그 자체로는 중요하지 않고 몸으로 그것을 실천할 때 의미가 있다고 여길 뿐입니다. 

7. 인터뷰 마치고 덧붙이는 말

저는 <영화 파워 오브 원>을 본 적이 두 번 있습니다. 흐릿한 기억인데,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흑인 청년이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자기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생각해 보니 그랬습니다. 흑인 청년은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다만 자기와 세상이 바뀌어 나가는 자체로 보람스러워 합니다. 그 흑인 청년이 바뀌지 않았으면 흑인 청년 둘레에 있던 많은 사람들 또한 바뀌지 않았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선생님 변영호가 그런 사람입니다.

변영호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마 몇 년 안 가 거제를 뜰 것입니다. 자기가 눌러붙어 있으면,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앞서 나가 있는 변영호가 겁이 나서 못한다는 것입니다. 후배들을 위해 자기 자리를 비워주겠다는 얘기입니다.

그대로 눌러 앉아서, 거제도 민물에 사는 물고기를 알려면 변영호한테 물어야 한다, 거제도에 사는 잠자리를 알려면 변영호에게 가야 한다, 거제도에 사는 긴꼬리 투구새우는 변영호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그런 지위를 충분히 누릴 수 있을 텐데도 말씀입니다. 어떻습니까? 멋지지 않습니까!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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