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우리말 살려쓰면 공직 부패 크게 줄까?

김훤주 2009. 10. 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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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진주 경상대학교 남명학관에서 열린 학술대회 '선비 정신과 공직자의 윤리'에서 백미(白眉)는 바로 최봉영 한국항공대 한국학 교수의 주제 발표였습니다.

그이 발제 '조선시대 선비와 의리, 그리고 우리'의 요지는 '같은 성리학을 했어도 조선과 중국의 토양은 달랐다', '중국의 바탕은 <나>이고 조선의 바탕은 <우리>다', '성리학의 의리는 어디까지나 현실이 아닌 이상이었다'였습니다.

<나>와 <우리>의 대비는, 속되게 보면 겨레붙이를 이상화하고 미화하려는 말장난으로도 비치지만, 발표에서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학자 최봉영의 발언이 그런 정도 자신과 설득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마침 장관·총리 후보자 국회 청문회가 잇달아 열리고 있었습니다. 청문회서는 후보자들의 불법·비리·투기 사실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드러났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또한 2007년 선거 과정에서 갖가지 비리가 터져나왔으니, 오히려 어느 정도는 비리가 있어야 공직자가 되는 시대가 닥친 셈이지요.

학술대회 주제 발표 장면.


어쩌다 이리 됐는지……. 이런 상황에서 최봉영의 발제는 충분히 눈길을 끌만했습니다.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공직자의 윤리는 공(公)의 뜻만 밝혀도 제대로 지켜진다." 그런데 옛날에는 이것이 생활에서 바로 느껴지고 몸에 익숙해지고 했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말입니다.

1. 중국과 다른 조선의 바탕

차례대로 정리해 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중국에서 성리학 문화를 가져와 교과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성리학 문화는 중국인이 실제로 살아가는 중국 문화가 아니었습니다. 정자·주자 같은 성리학자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이상을 학문적으로 다듬어 놓은 꿈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선비들은 중국인이 성리학 문화를 꿈이 아니라 생활로 실현할 수 있는 것이고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는 것으로 착각을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착오가 생겼습니다. 조선이라는 바탕에 제대로 적용하려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대강은 이렇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윤리의 핵심을 의리(義理)로 보고 세상에 공의=공공(公共)의 의리를 펴는 일이 목적이었습니다. 중국과 조선 성리학은 목적이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의 질서를 펴는 것'입니다. 바탕은 달랐습니다. 중국은 '나로부터 남에게 이르는 의리의 세계'가 바탕인 반면 한국인은 '나와 남을 아우르는 우리의 세계'가 바탕이었습니다."

2. 중국말에는 '우리'가 없다

이런 차이는 중국말과 한국말의 차이(말의 차이는 또 생각과 인식의 차이를 뜻합지요)에서 온답니다. "중국말에는 '우리'가 없습니다. '우리'에 상응하는 말(吾等)이 있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하면 그것은 '나+들'일 뿐입니다. '나'와 '너'를 넘어 통째로 아우르는 '우리'가 없는 것입니다.(한국말에는 물론 '우리'가 있습니다.)"

최봉영은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중국인과 달리 '나'가 아닌 '우리'를 바탕으로 삼아 의리의 세계를 세우고 익히는 일을 했습니다. 중국에서 학문으로 가져온 의리의 세계가 조선 땅 이곳에서 오랫동안 갈고 닦아온 우리의 세계와 하나로 어울리게 됐습니다." 증거는 의병의 존재입니다.

최봉영은 "외세 침략에 한국서는 의병이 일어났지만 중국에서는 의병이 없었습니다. 몽골(원)이나 여진족(청)의 지배에 그이들은 고개를 숙였습니다."라 했습니다. '우리'가 없는 중국에서는 고통받는 사회 구성원이 내가 아닌 남이지만 '우리'가 있는 한국에서는 나와 남을 넘어선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그럴 듯하지 않습니까?)

최봉영은 공(公)의 뜻을 나와 너를 전제로 설명했습니다. '公'을 조선 시대에는 '그 위'라 새겼답니다. '너'와 '나'를 넘어선 '위'라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나'나 '너'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우리'의 경지라고 했습니다. 이런 뜻이 오히려 중국서는 약해져, 사람 심지어는 개의 호칭으로도 쓰인답니다. '견공(犬公)'입니다.

3. 공직 윤리는 공(公)에 달렸다

주제 발표하는 최봉영 한국항공대 한국학 교수.


최봉영은 한국인이 이렇게 나와 우리를 여김으로써 '사람다움에 대한 열망'을 품어 왔다고 합니다 "한국인은 나를 비롯해 너, 그, 저, 남에 이르는 모든 것을 우리에 담아 함께 어울림으로써 사람다움에 이르고자 합니다." "(이렇게) 선비들은 중국에서 가져온 의리의 세계를 '우리'의 세계에 담아 한국적인 것으로 만들어왔습니다."

최봉영은 이날 발표에서 공직자의 윤리는 아예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발제문에서 이런 정도 언급은 했습니다. △시대를 선구하는 학문적 능력(道學之蘊) △역사를 통찰하는 장기적 안목(經世之眼) △폐단을 개혁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更張之具) △염결에 바탕한 모범적 삶의 태도(淸貧愛敬) 같은 표현입지요.

그보다는 이런 말이 사실은 더 귀에 잘 꽂혀 들어왔습니다. "스스로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리는 버릇을 버리고 우리 문화를 새롭게 이해합시다. 우리는 조선 시대에도 성리학이 있든지 없든지 무관하게 우리들 나름대로 우리말을 갖고 매우 슬기로운 생각을 가꿔왔습니다."

4. 우리말 되살리기가 중요한 까닭

조금 뜬금없다는 느낌이 드시지요? 그러나 이어지는 말씀을 조금만 더 보시면 바로 이해되실 것입니다. 발제 요지는 아니었고, 요지 설명에 쓰인 주변적 요소였지만, 제게 더 중요하게 다가온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 말글과 한문의 뜻만 제대로 새겨도 엄청난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봉영은 말뿌리를 더듬어 내보였습니다. 이를테면 조선 시대 공(公)은 지금처럼 '공번되다'로 새기지 않고 앞에 말씀드린 대로 '그 위'라 새겼습니다. 공번(또는 공변)되다는 뜻이 '사사롭지 않고 치우치지 않는다'임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공번되다가 이두식 한자 표현임을 아는 사람 또한 아주 드물 것입니다.

최봉영은 나아가 '공번되다'가 지금처럼 모호한 뜻이 아니었고 '(안으로는) 고루고루' '(밖으로는) 두루두루'라고 일러줍니다. 덕(德)에 대해서도 일러줍니다. 우리는 지금 새기는 '크다'는, 핵심은 조금도 파고 들지 못합니다. 최봉영은, "'나'와 '너'를 넘어섰으니까 큰 것입니다."라 했습니다. '큰' 까닭까지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얼다'라는 옛말도 풀어줍니다. '얼다'를 두고 하는 해석은 '남녀간의 육체적 사랑'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최봉영은 '어울리다'로 풉니다. 그래서 어른은 '얼+우+ㄴ'이 됩니다. 우리말에서 '우'는 사동(使動)형입니다. 사(使)는 시킨다는 뜻입지요. 그래서 어른은 어울리게(얼) 하는(우) 사람(ㄴ)이 됩니다.

또 어린이는 '얼+이+ㄴ이'로서 어울림(얼)을 받는(이) 사람(ㄴ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말에서 '이'는 피동(被動)으로도 쓰이니까요. 결론 삼아 말하자면 어린이는 '(어른이) 어울리게 해 줘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풀어 놓으면 어른과 어린이의 뜻이 아주 뚜렷하게 드러나 보입니다.

사람은 무엇일까요? '사롬(살+옴)'입니다. 살아가는 임자입니다. '나와 남이 어울려 우리가 되고자 하는 열망'인 사랑은 또다른 '살다'가 뿌리입니다. 사람이 어떤 것을 불이나 물에 살라서 하나의 불과 물을 이루는 것을 말한답니다. '반갑다'는 낱말도 같은 해석을 겪어'반과 같다'='(당신은) 나의 반과 같다'는 뜻이 된답니다.

5. 다스리다의 뜻을 아시나요?

'다스리다(治)'도 같은 이치로 '다'+'살'+'이'+'다'가 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써 모두 다 살라서 하나의 온전한 우리를 만드는 일'이라 풀이합니다. 나와 너를 뛰어넘어 이룩하는 새로운 경지입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물론 한편으로는 참담합니다. 지금 다스리는 인간들(이명박을 비롯해서)을 보자면, 그냥 지배하는 데에만 목적을 두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또 공(公)에 맞서는 사(私)를 지금과 달리 '사사롭다'고 새기는 대신 '아름'이라 새겼다고 했습니다. 아름은 '낱낱의 개체'를 뜻한답니다. 여기에서 '아름답다'는 말이 생겨났는데 '-답다'는 '(개체의) 속성이 남김없이 실현한 상태'를 뜻합니다.

경(敬)도 얘기했습니다. 
敬을 조선 시대에는 '공경하다'가 아닌 '고마'라 새겼다 했습니다. 고맙다,입니다. 해와 공기와 부모를 공경하는 까닭을 얘기했습니다. 자기를 만들고 있게 하는 원천이니까 고맙고, 고마우니까 공경한다는 설명입니다. 

성리학을 공부하고 실천한 선비들이 꿈꾼 것은, '고루고루 두루두루 다스리고 얼우고 얼이고 아름다워지고 아름답게 하고 고마워하는 우리 세계'였습니다. 최봉영의 말을 한 번 더 빌려온다면, "우리는 조선 시대에도 성리학이 있든지 없든지 무관하게 우리말을 갖고 매우 슬기로운 생각을 가꿔왔습니다."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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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영 지음/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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