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알고 보면 에로틱한 화장품 사용설명서

김훤주 2009. 10. 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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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입니다. 하하. 선배가 후배한테 묻습니다. "어이 자네, 아내랑 한 달에 몇 번이나 하나?" 후배가 대답합니다. "에이~ 선배님도. 같은 집안 식구끼리 어떻게 거시기를 한단 말입니까!"

서로 사랑해 결혼했으면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에게 데면데면하게 구는 부부들이 많다고들 합니다. 성(性)으로 포장되기는 했지만, 이런 현실을 나름대로 꼭 집어내는 그런 농담입니다.

같이 산 지가 오래돼 서로를 그냥 예사롭게만 대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한결같은 부부라면, 이런 책 하나 장만해 놓고 같이 읽으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꼼꼼한 화장품 사용 설명서>입니다. 저야 물론 화장품을 얼굴에 거의 대지 않지만, 요즘은 남자들도 화장품을 많이들 쓴다니까 아내 말고 남편에게도 조금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 지난해부터 표시되는 화장품 성분

오랫동안 화장품 회사들은 화장품의 제조법을 절대 공개해서는 안 될 비밀처럼 꽁꽁 숨겨왔다고 합니다. 신비주의 전술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제 그런 시대가 우리나라에서도 끝이 났습니다.

"2008년은 우리나라 화장품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 해다. 10월 18일부터 판매되는 모든 화장품의 포장이나 용기에 성분을 모두 기재하는 '화장품 전(全) 성분 표시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소비자가 화장품 품질을 판별하는 정보를 갖고 제품을 스스로 고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화장품에 적힌 내용은 주로 성분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제품 정보나 주의사항과 같은 것들이었다네요.

"화장품 회사들은 특수 제조공정을 거쳤다거나 효능이 대단하다고 자랑하지만 실은 여러 성분들의 단순한 혼합물일 뿐이다." "지금까지 많은 여성들은 피부에 맞거나 필요한 효능을 지녔다는 데만 관심을 쏟았을 뿐 성분은 확인하지 않은 채 가격만 보고 지갑을 열었다. 제조사의 일방적 마케팅 전략에 따라 소비해 온 것이다."

화장품 성분 표시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답니다. 완벽주의자들이라고나 할까요? 성분 명칭 자체가 충분하지 않고, 소비자를 위한 보호 장치도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바탕입니다. 그러나 지금 수준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나름 쓸만한 지표가 되는 것 또한 사실이랍니다.

2. '지속 가능한' 좋은 화장품 생산 전략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하답니다. 좋은 제품만 골라 사고 나쁜 화장품은 사 쓰지 않으면 되니까요.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렇게 '영향력을 창조하는 소비자'가 드물지요. 화장품 회사의 현란한 이미지 광고까지 겹쳐지면 그런 가능성은 아예 싸그리 뭉개져 버리고 맙니다요.

이런 현실에 맞서서, <깐깐한 화장품 사용 설명서>는 '영향력을 창조하는 소비자'를 '창조'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힙니다. 숱한 여자와 남자를, '화장품에 대한 분석적 관점과 정확한 지식'을 갖춘 소비자로 새롭게 창조하고자 하는 것입지요.

이런 식입니다. "소비자의 구매는 화장품 산업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추천받는 제품이 생기는 반면 외면당하는 제품도 나올 수 있다. 소비자들은 선택을 통해 화장품 회사의 생산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 "소비자의 의견이 반영돼 더욱 좋은 제품이 생산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소비자가 생산자의 역할을 하여 자기 피부와 머릿결을 아름답게 꾸미는 기쁨"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3. 화장품 회사들의 전략

경남도민일보 사진.


아시겠지만 화장품 회사들도 다른 제조업체들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이 아니라 돈벌이에 더 큰 관심을 둡니다. "화장품 회사들은 25세부터 서서히 피부의 노화가 진행된다는 메시지를 대중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터뜨렸다. 젊은 여성들은 늙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여자뿐 아니라 이제는 남자에게까지도 주름, 피부 건조, 피지, 땀, 유해 산소에 대항하라고 부추긴다. 최첨단 화학 기술로 개발한 제품만이 피부가 지닌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광고하는 화장품 회사의 과욕은 소비자의 건전한 상식과 비판 정신을 마비시키고 있다."

"셀룰라이트와 노화를 앞세운 신종 질병이 생겼다. 화장품 산업이 꾸며낸 거짓일 뿐이다. 오십 줄에 들어서면 의학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이 생각한다. 이제 노화는 자연스런 생리 현상이 아니라 마치 화장품만이 치료할 수 있는 신체 장애로 여겨지는 것 같다. 얼마나 날조된 거짓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4. 성분 사전을 화장대 두자

화장품 구성 물질 가운데 화학 성분과 자연 성분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여태까지 '대중적으로는' 없었습니다. <깐깐한 화장품 사용 설명서>는 말미에 '화장품 성분 사전'을 끼고 있습니다. 자주 쓰이는 2000개남짓 물질을 골라, 효능과 유해성 테스트 결과를 담았답니다.

"화장품 성분을 이해하면 화장품의 실체를 완벽하게 알 수 있다. 어떤 제품이 자기 피부에 맞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고 어떤 제품이 해로운 성분을 함유하는지도 알 수 있다. 게다가 다른 사람 경험담을 듣지 않고도 화장품을 살 수 있다."

성분 사전은 알기 쉽게 '아이콘'까지 쓰고 있네요. 보기만 해도 자기 피부에 좋은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웃음 띤 아이콘과 폭탄에 불이 붙은 아이콘은, 오히려 혼돈하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화장품 제조 과정 전반과 기본 원료에 대한 상식, 화장품 회사들의 태도·관점과 전략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갈수록 손길을 끌고 있는 이른바 천연 화장품에 대해서도, '천연'이라 해도 죄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사실적으로 반복적으로 밝힙니다.

5. 진짜 훌륭한 화장품은?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다른 책에도 종종 들어 있기는 하지만요. "졍신과 육체가 젊어지는 비결은 건강하고 바른 생활에 있다. 슬픔이나 괴로움에 빠지면 피곤하거 매력이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걱정은 주름이라는 자취를 남긴다."

몸에 좋다는 영양 보조제(이를테면 비타민이나 미네랄)를 살갗에 바르거나 알약 형태로 먹으면 어떨까요? 과일이나 야채·채소 상태로 먹는 때와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독일 식품청의 2004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정답은 '아니오'랍니다.

보고서는 이렇습니다. '카로틴' '플라보노이드' '글루코시놀레리트' '페놀산' '식물스테롤' '식물성 에스트로겐' '황화물' 등을 아무리 '섭취'해도, "과일과 야채를 대체할 수 없으며, 콩을 비롯한 곡물류를 포함해서 과일과 야채는 기본 식단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표현도 있습니다.(꼭 이렇게 무게까지 재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만)  "400g정도 야채와 250g정도 과일을 날마다 먹는 버릇을 들이면 '건강미 넘치는 아름다움'에 이를 뿐 아니라 건강한 삶의 기반도 마련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위해 한 권 장만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으시는지요? 화장품의 참 모습과 아름답게 가꾸기의 진실을 일러주는 이 책은 전나무숲에서 냈고 545쪽이며 2만5000원 합니다.

비싸다고요? 요즘은 친구랑 단 둘이 술을 한 잔 해도 이보다 더 나올 텐데요……. 그런데도 비싸다고 하시면, 그것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마음이 없는 것일 가능성이 95%는 되겠다 싶습니다만. 하하.

김훤주

깐깐한 화장품 사용설명서 - 10점
리타 슈티엔스 지음, 신경완 옮김/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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