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봉쇄 푼 수녀님들이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록하는 사람 2009. 10. 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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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마치고 돌아와보니 반가운 소식이 메일로 들어와 있네요. 바로 이 블로그를 통해서도 여러 번 알려드렸던 '수정 트라피스트 수녀원'의 수녀님들이 '제4회 가톨릭환경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입니다.

그동안 알려드렸듯이 트라피스트 수녀원은 '봉쇄수도원'입니다. 한 번 들어가면 평생 속세로 나오지 않고 수도만 하는 곳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 수녀님들이 봉쇄를 풀고 22년 만에 바깥세상으로 나왔습니다. 바다를 메우고 매립지 인근의 주민들을 쫓아내면서까지 조선기자재 공장을 유치하겠다는 마산시의 개발행정에 항의하는 마을 주민들과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관련 글 : 블로거들에게 취재 호소하는 수녀와 할머니
※관련 글 : 봉쇄 수녀들, 수녀원 박차고 나선 이유
※관련 글 : 수녀원 앞에서 불경 틀며 농성하는 사람들
※관련 글 : 수녀원 향해 '남자 냄새' 운운 지나치다
※ 수정만 관련 글 전체보기

마산시 구산면 수정리에 있는 트라피스트 수녀원.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본부는 로마 교황청에 있습니다. 전 세계에 있는 트라피스트 수도원 중 봉쇄를 푼 것은 살해 위협에 처한 아프리카 난민을 위해 허락한 것이 처음이고, 한국의 마산 사례가 두 번째라고 합니다.

로마교황청의 수도원본부는 현지 조사에 이어 총회를 열어 이같은 결정을 내린 후, 총장 명의로 세 가지 원칙을 전달해왔다고 합니다.

첫째, 주민들이 받지 않는 어떠한 특혜도 받아서는 안 된다.
둘째,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셋째, 공동체 전체가 합의한 방법으로 함께 행동해야하고, 대외활동은 선출된 세 사람만이 전담하도록 한다.
 

로마교황청 수도원 본부의 총회 결과 번역문.


선출된 세 사람은 요세파 원장수녀와 오틸리아, 스텔라 수녀입니다. 이들 세 분의 수녀는 주민들과 천막농성은 물론 그동안 열린 각종 집회에도 함께 하면서 행정의 막가파식 개발행정에 저항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스텔라 수녀님은 홍보전문가가 다 되었고, 오틸리아 수녀님은 동영상 촬영과 편집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카메라의 '카' 자도 모르던 분들이 주민들과 고통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동영상 촬영 편집 전문가가 다된 오틸리아 수녀님.


어쨌든 이런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보답하기 위해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최기산 주교) 환경소위원회(이하 ‘환경소위’)가 2009년 가톨릭환경상 대상에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수녀원'을 선정했다는 것입니다. 장려상은 가톨릭대안교육기관인 충북 청원군의 양업고등학교를 선정했다고 합니다. 시상식은 10월 7일(수) 오후 2시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회의 4층 강당에서 열립니다.


메일로 보내온 보도자료에 따르면 환경소위는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을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수녀원은 수정 마을 주민이자 수도자로서 이 마을 주민들이 STX 측의 불법 조선소 건립 작업으로 고통당하고 또 마산시의 비민주적 기업 중심 개발 정책을 직접 체험하고 나서, 주민들과 함께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며 문화와 후손의 자연권을 돌보는 길을 복음적으로 제시한 공로가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수정만 주민들과 함께 한 촛불집회에 참석한 스텔라 수녀님.


보도자료는 또한 트라피스트 수녀원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

1987년에 한국에 들어왔으며, 한번 들어가면 평생 바깥 출입을 삼가는 완전봉쇄 수도원이다. 그런데 2007년 11월 장 요세파 원장수녀와 27명의 수녀들은 세계 180여 개 장상들의 투표로 로마 총원의 허락을 받고, 봉쇄를 풀고 세상밖으로 나왔다. 서울 법제처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경제논리를 앞세운 기업과 행정 앞에 생계 터전을 잃게 된 주민들을 도와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다.

조선·유통 업체인 STX가 경남 마산시 구산면 수정리 일대 매립지에 주거용지를 공장용지로 불법 전용해 조선소 공장으로 활용하고 있어서 홍합과 굴을 키우며 생계를 유지하는 지역 주민들을 위협하고 있고, 전문가로 구성된 환경영향평가에 따르면 분진과 소음 그리고 바다환경 파괴 등 환경오염이 다른 조선소보다 몇 배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가톨릭 환경상에 대한 설명도 함께 소개합니다.

‘가톨릭 환경상’은 창조질서 보전을 위해 노력한 개인이나 단체를 선정하여 그 공로를 격려하고, 그들의 활동을 널리 알림으로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아름답게 보전하는 것이 신앙인의 책무(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임을 세상에 확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지난 2006년에 제정된 상이다.

생태학의 주보 성인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적 생태영성을 함양하고 이를 계승하여 교회가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데 앞장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시상식을 성인의 축일(10월4일)에 즈음하여 거행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제1회 가톨릭 환경상은 유기농 직거래장을 설립하고, 녹색 화폐 ‘덤’ 운동을 펼친 전주교구 이덕자 씨가, 이어 2007년 제2회 환경상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하여 생태평화학에 대한 교회의 비전을 제시한 ‘제주교구 평화의 섬 특별위원회’가 대상을, ‘되살이’ 운동, ‘아나바다’ 운동을 펼친 광주대교구 비아동 성당 곽홍순씨가 특별상을, 제3회 환경상 대상에는 환경운동의 파수꾼 역할을 수행하며 가톨릭 생태영성의 연구 보급에 큰 역할을 한 대구대교구 정홍규 아우구스티노 신부, 특별상에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 상주협의회 솔티분회, 장려상에 수원교구 생명환경연대와 인천교구 허필자 마리안나씨가 각각 선정된 바 있다.

아울러 첨부되어온 환경상 대상 선정이유도 덧붙입니다. 이 상의 수상은 수녀님들의 투쟁이 로마의 수도원본부에 이어 한국 가톨릭에서도 그 정당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랜 투쟁에도 아랑곳없이 변하지 않는 마산시와 STX의 태도에 적잖이 지쳐 있을 수녀님들과 수정마을 주민들에게 이 상이 큰 힘이 되길 기원해봅니다.


제4회 가톨릭 환경상 선정 이유

대상 수상자: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마산교구)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7월 발표한 회칙 [진리 안의 사랑]에서, 자연과 인간과 사회가 발전과 평화에서 서로 분리 불가능한 형태로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하면서 자연에 대한 깊은 존중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연민을 피력하셨다([진리 안의 사랑] 48항과 51항 등 참조). 이를 통하여 발전을 추구할 때 가난한 사람들과 시대를 넘어 자연을 공유할 후손들에 대한 근본적인 배려는 물론, 하느님의 창조 가치를 증거하는 자연과 대화하는 기쁨과 충만을 일깨워 주셨다.

지방자치 기관과 기업들이 지역 사회 주민들의 생존과 행복에 대한 기본 권리를 존중하지 않고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절차를 무시하며 주민의 합의에 역행하면서 개발 정책을 펴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은 마산 수정 마을에 조선소를 건립하려는 STX와 마산시의 일련의 행위들에서 이같은 비민주적 기업 중심 개발주의를 직접 체험하였다.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은 수정 마을 주민이자 수도자로서 이 마을 주민들이 STX 측의 불법 작업으로 고통당하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주민들과 함께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며 문화와 후손의 자연권을 돌보는 길을 복음적으로 제시해 왔다.

그동안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은 오늘 우리 시대에 일과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과정에 참여하는 길을 풍요롭게 해 왔다. 성경과 자연에서 하느님의 온 창조물에 대한 사랑을 읽어 내서 이를 자신들의 기도와 노동 속에 통합해 온 수도 공동체로서 합리적인 절차를 지켜 가는 가운데 기업과 관의 부당한 개발에 정의롭게 응답하는 모범을 보여 주었다.

수녀원은 생태 환경 문제에 대응하면서 그 과정에서 교도권과 수도 공동체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며 21세기의 시대적 징표를 식별하였을 뿐 아니라 이를 예언자적 활동으로 승화시켜 왔다.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은 이를 통하여 그동안 전 국민과 신자들에게 생태 평화에 대한 교회의 모범을 제시한 공로를 인정하여 환경상 본상을 수여한다. 아울러 수녀원과 수정 마을 주민들에게 진정한 평화가 어서 오기를 바란다.

가톨릭마산교구청 마당에서 천막농성 중인 요세파 원장수녀님(왼쪽)과 스텔라 수녀님(오른쪽).

수정만 주민들과 함께 한 촛불집회에 참석한 수녀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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