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천에 깔린 자라풀이 '희귀식물'이라니

자라풀이라고 있습니다. 잎이 자라 모양으로 생겼고 꽃은 대체로 하얗게 피는, 물 위에서 사는 풀입니다. 환경부는 이 자라풀을 자연환경보전법에 따라 1993년 특정야생식물로 분류했습니다. 1998년 법률을 고치면서('특정'을 '멸종위기'와 '보호'로 구분) 모니터링 등을 하는 대상에서 뺐습니다. 대신 산림청이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에 따라 2006년 희귀식물 217가지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나 이 자라풀이, 중부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지 모르지만 제가 사는 남부 지역에서는 흔하디 흔한 물풀입니다. 물론 특정야생식물이나 희귀식물로 지정한다 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지정하는 본래 취지에는 전혀 걸맞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조사가 무엇보다 관건인데, 지정할 때도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정한 뒤에도 모니터링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사전에 제대로 조사가 됐다면 남부 광범한 지역에 아주 흔하게 자란라는 사실이 확인돼 보호 대상으로 꼽히지 않았을 테고, 사후라도 모니터링을 똑바로 했다면 계속 보호 대상으로 머물지는 않으리라는 얘기입니다.(그래도 보호하겠다는데 왜 딴죽거리느냐는 식으로 잘못 받아들여지지 않기 바랍니다. 이런 기준으로 하면 갈대나 환삼덩굴은 물론 강아지풀, 토끼풀조차 보호 대상 목록에 올라야 합니다.)

창녕 소벌에서 가장 많이 찍히는 풍경. 경남도민일보 유은상 기자 사진.


소벌(우포늪)이 있는 창녕 한 환경운동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호종을 선정하는 사람들이 한강 유역 대학이나 기관에 있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중부나 북부에 잘 없어서, 자기들 눈에 안 띈다고 말입니다." 이런 지적에 서울이나 수도권에 있는 학자들은 어떻게 대꾸할까요? '아니오, 그렇지 않소.'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조사 관찰은 정부가 하지 않습니다. 대학이나 전문 연구 기관이 정부 따위에서 용역을 받아 보호야생식물 선정 또는 희귀식물 선정 관련 조사·연구를 합니다. 용역은 대부분 서울 또는 수도권 대학이나 연구 기관에 갑니다. 제대로 조사 관찰하지 않는 게으름은 바로 이들의 것입니다. 남부 지역에는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도 자기네 터잡은 수도권 일대만 훑어보고는 이리 딱지를 붙입니다.

2. 천성산 습지는 특정 인물에게만 보여준다?

경남 양산에는 천성산이 있습니다. 내원사 산감(山監) 지율 스님의 고속철도 터널 관통 반대 운동으로도 널리 알려진 명산입니다. 북쪽 울산으로는 정족산이 이어집니다.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이 대학이나 전문 연구기관에 있는 학자들에게 3억6000만원에 용역을 줘서 93~94년 진행한 환경영향 평가에는 여기에 아무 늪도 없고 보호할 생물도 있지 않다고 나옵니다.

천성산 화엄벌.


그러나 여기에는 엄청나게 많은 산지늪이 있습니다. 1995년 정족산 무제치늪이 발견된 이래 정우규라는 중등학교 선생님이 들어서 1999년에는 화엄늪과 밀밭늪이 잇달아 발견이 됩니다. 이들 늪은 보호 가치를 인정받아 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정우규 선생은 지금 울산환경운동연합 공동 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조사 연구는 대학 강단에 서거나 전문 연구 기관에 종사하는 학자들의 몫입니다. 그러나 이이들은 정부 기관의 용역이 없으면 움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용역을 받더라도 독자적인 조사 연구 활동은커녕 용역을 준 기관의 입맛에 맞춰 결과물을 내놓을 뿐입니다.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의 천성산 일대 환경영향평가가 대표적입니다.

정우규 선생 같은 이는 용역으로 돈을 받지도 않습니다. 대학 따위에 종사하는, 이른바 전문 학자로 쳐주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운동단체나 개인 돈을 들이고 팀을 꾸려서 이렇게 산 들 강을 돌아다니면서 엄청난 발견을 하고 있습니다. 2001년에는 안적늪과 대성늪 등 천성산에서만 13개 산지 습지를 이들이 발견합니다.

이들은 또 천성산 습지 둘레에서 줄기에 가시 대신 털이 나 있는 털두릅나무, 벌개미취에 흰 꽃이 피는 흰벌개미취 등 한 번도 알려진 적 없는 새로운 식물도 찾아냈습니다. 정우규 일행이 2002년에는 울산 울주군 웅촌면 못산늪을 찾아내면서 멸종위기식물인 순채가 떼지어 자라고 있음도 확인했습니다. 2004년에도 울산 동대산에서 뻔지늪을 발견합니다.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 교사들의 모임 소속 한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습지들이 꼭꼭 숨어 있다가 정우규 선생만 지나가면 나타난다",입니다. 물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대학이나 전문 연구 기관에 소속된 공인된 학자들이 연구실에만 쳐박혀 있으면서 제대로 돌아다니지 않은 탓이 더 크겠지요.

3. <어린 왕자>에 나오는 지리학자의 게으름

이쯤 되면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의 작품 <어린 왕자>가 절로 생각이 납니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작품인데 읽다 보면 지리학자가 나온답니다. 어린 왕자가 자기랑 다투던 꽃을 두고 별을 떠나 여섯 번째 들른 별에서 만납니다.


어린 왕자는 이 지리학자에게 흥미를 느끼고 바다가 있는지 산이 있는지 도시와 강과 사막이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러나 지리학자는 "나는 알지 못한단다."라고밖에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어린 왕자는 실망합니다. 거기에는 까닭이 있었습니다. 이 지리학자는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라서 돌아다닐 수가 없'습니다. "지리학자는 책상을 떠나는 법이 없는 거야."라고까지 얘기하는 지리학자입니다.

지리학자가 할일은 "서재에서 탐험가를 맞아들이"고 "그들에게 질문을 하고 그 탐험담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그이는 말합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그 자체로서 세상을 뒤집어 보여주는 커다란 우화(寓話)이지만, 우리가 슬픈 까닭은 이런 일이 소설이나 동화에서만 생기지 않고 현실에서도 종종 일어난다는 데 있습니다.

4. 그들은 어린왕자를 읽어보기라도 했을까?

<어린 왕자>에서 게으른 지리학자는 자기 별을 떠날 줄 모릅니다. 현실에서 게으른 학자들은 주로 수도권에 머물러 벗어날 줄 모릅니다. 이른바 일반 사회에서 알아주는 대학이나 전문 연구 기관이 거기 몰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들에게 입맛대로 용역을 줄 수 있는 정부 행정 기관 따위가 거기 쏠려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끊임없이 찾아다닙니다. 여섯 번째 별에서 만난 지리학자에게 묶이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정신과 마음과 신체가 자유로운 이들은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있습니다. 정우규 선생은 울산에 있으며, 환경운동을 하면서 자라풀이 희귀식물이 아님을 아는 이들은 남쪽에 널려 있습니다.

나중에 자세하게 말씀드릴 기회가 있겠지만, 멸종위기종으로 알려진 긴꼬리투구새우가 사실은 널리 퍼져 있으며, 학자들이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서식지가 남부 지역 일부 못자리 논'이라 한 것이 큰 잘못임을 밝혀낸 변영호 선생님도 경남 거제 한 초등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이들을, 서울이나 수도권에 있는 학자들은 <어린 왕자>에 나오는 지리학자가 어린 왕자를 다루듯이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학자들은 이들이 어린 왕자보다 몇 배나 더 소중하고 훌륭한 존재인 줄을 모릅니다. 그나저나, 저이들 게으른 학자들은 <어린 왕자>를 한 번이라도 읽어봤는지가 궁금해지네요. 하하.

김훤주
※ 매체 비평 전문 인터넷 매체 <미디어스>에 9월 30일 보낸 글을 조금 가다듬었습니다.

어린왕자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생텍쥐페리 (인디고,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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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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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부인권 2009.10.05 1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예사롭지 않은 시각입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 Favicon of http://100in.tistory.com 김훤주 2009.10.05 23: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말씀 하시지 않으면 안 될까요? 제가 몸이 떨리고 굳어집니당~~~

      제가 오히려 선생님께 배워야 합니다. 저는 언제나 자신이 없거든요........

  2. Favicon of http://bada92.tistory.com 무릉도원 2009.10.05 19: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글이라 생각됩니다....환경영향 평가를 한 사람들이 정말 발품을 팔았는지 안봐도 비디오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한 주도 늘 행복하세요......*^*

    • Favicon of http://100in.tistory.com 김훤주 2009.10.05 2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관련 환경영향평가는 100% 가 보지 않고 작성했습니다.

      가 봤다면 엄연히 있는 천연기념물들이 보이지 않았을 리 없지요. 그토록 흔하다는 도롱뇽조차 있지 않다고 적혀 있으니까요.

      이런 것이 생물 또는 무생물에 대해 얼마나 커다란 죄업이 되는지 모르는, 그래서 불쌍한 중생입지요. 한편으로는.

  3. Favicon of http://snowall.tistory.com snowall 2009.10.05 2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학 전공이 아닐테니 어린왕자는 안읽었겠죠.

    학자는 모름지기 세상의 모든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돈에만 관심을 가지는 학자가 많아지는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 Favicon of http://100in.tistory.com 김훤주 2009.10.05 2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옳으십니다. '전공'이 사람 잡습니다. 'specialist'가 사람 잡습니다. 누구든지 묻잖아요. 그러면 '그건 내 전공이 아니라 모르겠는데.......' 그럽니다.

      프로페셔널은 필요하지만, 스페셜리스트는 없어져야 좋습니다. 대신 제너럴리스트가 많아져야 합니다. 전공밖에 모르는 전문가는 '흉기'입니다. 법률 전문가가 '나는 정의에 대해서는 모르겠고......' 얘기하는 지경입니다.

  4. Favicon of http://kisilee.tistory.com 구르다 2009.10.05 2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훤주님 톤으로..
    게으른 학자들은 이 글을 읽어 보기나 할까요..ㅎㅎ

    • Favicon of http://100in.tistory.com 김훤주 2009.10.05 2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장님 덕분에,,,,

      제가 억수로 많이 웃었습니다.

      그래서 좀 미안하기도 하네요.

      제가 좀 많이 건방지지요? 딴에는 건방지지 않으려고 많이 애는 쓰는데......

  5. 구준모 2009.10.06 0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역전문가들의 연구와 조사활동이 지리학회 등에 보고 되고 있나요?
    힘들게 발품 팔아 조사한 결과물을 수도권의 게으른 교수님들이나 박사과정,대학원생들에게도 공유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식의 헛발질은 우리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데, 조사기관이나 해당교수들에게도 일차적 책임이 있겠지만 정보를 공유하거나 전달하는 채널이 없다는 시스템적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환경운동연합'이란 단체가 가지는 특수한 성격때문에 소통에 문제가 있다면 더욱 안되겠지요.
    게으른교수님들이나 어린왕자 탓하는 것보다는
    잘못된 시스템을 조금씩이나마 고쳐가는 방법을 찾아야 할듯합니다.

    • Favicon of http://100in.tistory.com 김훤주 2009.10.06 1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우규 선생도 제가 알기로는 다 보고를 하지만 변영호 선생은 일부러 더 공공 유통을 하고 있습니다.(공짜로).

      문제는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서식'하는 전문 학자들에게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자기 지식 창고에 그냥 쌓아두기만 합니다. 사진 같은 것, 거제 계룡초등학교 변영호 선생은 공짜로 나눠주지만, 저는 그렇게 하는 전문 학자가 많다는 애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서식'하는 학자들은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회적으로 공인된 딱지를 배경으로 삼아 변영호 정우규 같은 선생을 '하수'로 취급합니다. 전부는 물론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변영호 선생은 그런 수모도 달게 받아들입니다.
      지식 정보 공유가 어느 정도 실현되면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서식'하는 전문 학자>들의 특권도 따라서 사라지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환경운동연합이란 단체에게 있는 특수성은 아무래도 오히려 소통을 강화하는 측면이 셉니다. 이른바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서식'하는 학자들>이 하는 연구의 폐쇄성이라든지 성과의 독점 같은 측면이 소통을 가로막지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6. Favicon of http://rusham.com Rusham 2009.10.06 0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만큼 충격이 오는 내용이네요.
    정말이지 무슨 연구 논문 성과를 기업들 보고서 작성하듯
    생명연장만을 생각하는 일부 교수들은 학계를 막론하고 퇴출이 옳습니다.

  7. 잠늠 2009.10.06 0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기사글 재미잇게 잘 읽엇습니다 감사합니다 ^^
    얼마전에 비스한 요지로 끄적거려본게 하나 잇어서 트랙백겁니다. 취지에 안맞다 싶으시면 지우셔도 됩니다. :)

    • Favicon of http://100in.tistory.com 김훤주 2009.10.06 18: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당~~

      그리고, 트랙백을 지우기는 왜 지우겠습니까?

      글 쓰신 당사자께서 의미가 있다고 해서 거셨을 텐데 말씀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

  8.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t__nil_login=myblog 실비단안개 2009.10.06 08: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이곳도 자라풀이 많습니다.

    식물을 올릴 때 알지만 그래도 검색을 한 번 하는 경우가 많은데,
    분포 지역과 개화시기 등이 잘못 기록 된 부분이 많습니다.
    포털 등에서 새로고침없이 몇 년씩 방치하니 그런 것 같은데, 검색한 이는 그대로 받아쓰기를 하니,
    잘못된 정보가 더 많은 세상이며, 인터넷입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추석은 잘 쇠셨나요?

    날씨만큼 좋은 일들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고요.^^

    • Favicon of http://100in.tistory.com 김훤주 2009.10.06 1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선생님. ^.^

      지난해는 추석 때 울적했는데 올해는 상큼했습니다.

      현실이 나아졌다기 보다는 현실이 나아질 개연성이 높아졌기 때문인가 봅니다.

  9. Favicon of http://minimonk.tistory.com 구차니 2009.10.06 0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으면서 답답한 생각이 들기만 하는군요..
    너무나 적절해서 답답한 마음이 들정도의 어린왕자의 이야기가 말이죠..

  10. 2009.10.06 1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학 강단에선 강단 교수들 대부분이 거즌 다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ㅎㅎ

    물론 연구에 몰두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자칭 현장에서 땀 한 방울 안 흘려본 노동 전문가들.. 교수들 정말 밉습니다.

    지들이 공장이나 논이나 밭, 혹은 사무직이라도.

    돈을 벌어벌려고 땀 한 번 흘려 본 적 없는 자들이.

    노동을 너무 쉽게 애기하지요.

  11. 봉길 2016.03.05 2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른살이 되기전부터 나는 그,,,'교수' 알러지가 있습니다.
    슬픈 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