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대통령이 외면한 진실을 실천하는 군수

김훤주 2009. 9. 2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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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가 지은 <삼국지> '방통전'을 보면 백리지재(百里之才)라는 말이 나옵니다. "유비는 형주를 다스리게 되자 방통에게 종사 신분으로 뇌양현 현령을 대행하게 했는데, 방통은 현에 재임하여 치적을 쌓지 못해서 면직되었다. 오나라 장수 노숙이 유비에게 편지를 보내 말했다. '방사원은 백리지재가 아닙니다. 치중이나 별가의 임무를 맡겨야 비로소 뛰어난 재능을 펼칠 수 있습니다.'" 사원은 방통의 호라 하지요.

<연의 삼국지>에도 나오는 이 이야기의 이어지는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유비는 방통을 새로 불러 군사 중랑장으로 삼습니다. 천리지재한테 걸맞게 천리를 맡긴 것입지요. 백리지재는 사방 백 리쯤 되는 땅을 다스릴만한 재주라는 뜻이니, 요즘으로 치면 기초자치단체 시장이나 군수쯤 되겠습니다.

물론 백리지재는 전혀 나쁜 뜻이 아니랍니다. 보통 사람보다는 뛰어나기에 백 리라도(또는 씩이나) 다스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명환경농업을 알리는 리플렛 표지.

경남 고성에는 이학렬이라는 군수가 있습니다. 그이는 지난해부터 생명환경농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토착 미생물'을 활용해 화학 비료나 농약이 전혀 없이 농사를 짓고 화학 사료나 항생제 같은 약품을 전혀 쓰지 않고 돼지나 닭 또는 소 같은 짐승을 기르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친환경농법과 달리 첫 해부터 농약 따위를 전혀 쓰지 않았고, 소출 또한 관행농법보다 늘어났답니다.


이학렬 군수는 이같은 생명환경농업은 4대강 살리기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논이나 밭에 농약을 치지 않고 화학 비료를 뿌리지 않으면 당연히 시냇물이 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토착 미생물을 축산에 활용하면 이른바 축산 폐기물도 거의 생기지 않으니, 강물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도 심각한 오염원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지요.


이학렬 군수는 생명환경농업을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이른바 4대강 유역에서 실행하면 4대강 살리기는 저절로 이룩된다고 했습니다. 상류가 맑아지면 하류는 저절로 깨끗해지는 이치랍니다.

그래서 그이는 홍보 리플렛에서 4대강 유역 논 78만ha와 밭 54만ha에 녹색 성장 농업을 실천하면 4대강의 물을 생명수로 만들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냇물이 더러워지지 않은 채 강으로 흘러가게 되니 강물이 크게 맑아질 것은 정한 이치입지요. 고성군의 생명환경농업 실천 현장에 가보면 정말 실감할 수 있답니다.

리플렛 28쪽 내용. '4대강 살리기 사업과 녹색성장농업(생명환경농업)의 만남.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명박이라는 대통령도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처음 서울과 부산을 잇는 운하를 만들겠다고 했다가 국민 반대에 부딪히자 대신 '4대강 살리기'를 하겠다고 바꿨습니다. 강 바닥을 파내고 곳곳에 보나 댐을 만드는 사업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들이겠다면서 환경영향평가조차 졸속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항이 잇따르고 수질이 나빠진다는 지적까지 나왔지만 '걱정마라, 나빠지지 않는다'며 마구 삽질을 해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질 악화는 불을 보듯 뻔해서 정부 스스로도 수돗물 취수원을 변경하는 문제를 들고 나왔답니다. 지금까지 낙동강 본류에서 끌어온 물을 정화해 수돗물을 만들어 보냈는데, 앞으로는 낙동강 본류는 버리고 대신 지류에서 물을 끌어오겠다는 얘기랍니다.


8월 24일 대구에서 열린 '취수가능지역 조사사업 공청회'에서 나온 방안입니다. 환경부는 이날 사업 추진 배경으로 △낙동강 취수원이 하천 표류수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중·하류의 수질 오염이 심각하며 △낙동강 상류에서 수질 사고가 터지면 취수 중단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내놓은 대안이 낙동강 본류에 있는 취수장은 폐쇄하는 대신 남강이나 밀양강 같은 지류에 건설된 댐에서 물을 끌어오는 방안이랍니다. 부산·양산·마산·창원 등은 남강댐에서, 밀양·김해·창녕은 밀양댐에서 물을 끌어오도록 바꾸는 방안이 나와 있습니다.

낙동강 본류의 수질을 포기하는 정책으로 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본류 수질을 좋게 하려면 지류를 정화해야 한다는 전문가들 주장은 일고(一考)도 하지 않았으니 말씀입니다.


심지어 함양과 거창은 있지도 않은 임천수계댐(함양 문정댐)을 취수원으로 삼는 방안이 제시돼 있답니다. 문정댐은 정부 문서에만 있을 뿐 실재로는 없는 댐이지요. 정부는 문정댐 짓는 계획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내놓고 있지만, 환경 파괴도 걱정되고 지리산 자락 유명 관광지까지 물에 잠긴다는 반대 목소리가 높아 백지화 선언 또한 잦았던 그런 댐이랍니다.  


4대강 살리기는 수질 개선과 전혀 상관없는 토목공사일 뿐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자주 쓰이는 속담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요. 그래서 위에 있는 물이 깨끗하면 아래에 있는 물은 절로 좋아집니다. 이토록 단순한 진리를, 백리를 다스리는 이학렬은 알고 천리를 다스리는 이명박은 모르는 것입니다.

천하를 알아야 할 대통령이 군수 같은 백리지재만도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백리지재도 못 되는 이에게 천하를 맡긴 사람들이 비참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김훤주
※월간 <전라도닷컴> 2009년 10월호에 실은 글을 조금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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