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조선시대 왕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기록하는 사람 2009. 9. 1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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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마산의 근대문화유산인 일제시대 헌병분견대 건물이 노무현 정부 시절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최근 또다시 몇몇 보훈유관 친목단체 등에 무상임대될 상황에 처했다는 소식을 이 블로그에서 전한 바 있다. (☞ 문화유산을 왜 특정단체에 무상임대하나?)

나는 그 글에서 마산 헌병대 건물이 근현대 문화유산인만큼 문화재의 용도에 맞게 '근현대 마산 역사기록관(아카이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이 올린 글을 보니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에 설립될 예정이던 대통령 기록관도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
전진한 : 향후 퇴임 대통령 기록은 관리 안하겠다?)


정권이 바뀌고 나니 조선시대 이후 단절된 기록문화를 되살리겠다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는 간단히 부정되고 이미 예정된 기록관 건립마저 무산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실 일반 국민들 중 기록물과 기록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게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갖는 건지, 그게 민주주의와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예전에 써놨던 관련 글을 좀 손질하여 약 두, 세차례에 걸쳐 올리고자 한다.

조상의 찬란한 기록유산, 왜 단절됐나

조선시대 태종 임금이 사냥을 나갔다가 말에서 떨어졌다. 놀란 신하들이 우르르 달려가 왕을 부축하려 했다. 무안해진 태종은 아픈 것도 잊고 황급히 신하들에게 소리쳤다.

“사관(史官)이 이 꼴을 볼지 모르니, 짐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하라.”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 사관에 의해 기록으로 남겨지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관은 왕의 낙마 사실은 물론, 이를 감추라고 지시했던 했던 것까지 소상히 사초(史草)에 기록해버렸다. 왕도 은폐시도는 할 수 있었지만, 사관의 붓까지 꺾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태종 4년(1404년, 실록에는 태종 3년으로 기록)의 일이다.

600년 전 임금의 이런 에피소드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기록’의 힘이다. 이처럼 조선시대 왕들은 사관들을 경계하면서도 역사의 기록자로서 그들의 역할을 인정하고 존중했다.

당시 사관들은 공식적인 어전회의와 왕이 참석하는 모든 행사는 물론 단 둘이 독대(獨對)하는 자리까지 참석해 모든 대화내용을 기록했다. 심지어 사관들은 왕비가 거쳐하는 내전에도 여사관(女史官)을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물관·도서관만 있고 기록관은 없는 이상한 나라

그런데 수백 년 전의 이런 기록물이 어떻게 멸실되지 않고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을까. 그건 조선시대 때부터 이미 ‘아카이브(Archive)’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자료관이나 기록보존소 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아카이브는 조선시대 당시 ‘사고(史庫)’라는 이름으로 전국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지금의 국가기록원(전 정부기록보존소)에 해당하는 춘추관과 충주·성주·전주 등 3대 사고를 비롯, 묘향산·태백산·오대산·마니산·정족산·적상산 사고 등이 그것이다.

흔히 1789년 프랑스혁명 때 설치된 국립 기록보존국을 아카이브의 효시로 보지만, 우리나라는 그보다 훨씬 일찍 기록유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유네스코는 <조선왕조실록>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한국 기록문화의 위대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찬란한 기록문화의 전통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이후의 독재정권에 의해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아니, 차라리 일제 총독부는 훨씬 체계적으로 기록유산을 지켜왔다. 그러나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독재정권은 기록을 남기는 것 자체를 자신의 범죄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생각한 탓인지 철저히 증거인멸 정책을 썼다. 그 때문에 웬만한 지자체마다 도서관(Library)과 박물관(Museum)은 있어도 역사기록관(Archive)은 하나도 없는 이상한 나라가 되었다.

기록에 무지한 대통령과 자치단체장들

문화선진국일수록 도서관 숫자만큼이나 아카이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연구하려면 미국의 국가기록보존소를 뒤져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경남도사>나 <마산시사> 등 각 지자체가 지방지를 편찬하고 있지만 한심한 수준이다. 그 내용과 체계는 내버려두더라도, 편찬하는 과정에서 수집한 역사자료나 기록물에 대한 인식이 도무지 없다. 도지사나 시장이 문화에 대해 무식하기 때문이다. 인쇄된 책자보다 1차 자료인 기록물이 역사적으로 훨씬 높은 가치를 갖고 있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단체장은 없는 듯 하다. 이 때문에 정말 소중한 지역의 역사기록물들이 자리잡을 곳을 찾지 못해 해마다 수도 없이 훼손·멸실되고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또다시 특정 보훈관련단체에 무상임대하려는 등록문화재 198호 마산 헌병분견대 건물.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이라도 앞장서 기록을 체계적으로 생산, 관리하고 보존하려고 했고, 정부부처 장관들이나 자치단체장들도 어쩔 수 없이 하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나니 대통령도 기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고, 장관이나 단체장도 다시 무관심으로 되돌아 갔다. 2007년까지 광역자치단체의 지방기록물관리기관 설립계획을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모두들 입을 싹 닦아버리고 모른 척 하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인듯 하다.

그리고 마산의 등록문화재인 일제 헌병대 건물을 또다시 특정 보훈유관단체에 무상임대해주려는 것도 유난히 보수단체의 뒤를 봐주려 애쓰는 정권의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 답답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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