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오바마를 거울에 비추면 MB가 보인다?

김훤주 2009. 9. 15.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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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미국, MB의 대한민국>이라는 책,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바마를 거울 삼아 한국 사회를 바라보다'가 부제(副題)로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 책을 잡을 때는 부제가 솔깃했지만 읽을수록 시큰둥해졌습니다. '오바마의 미국'에 비춰보니 'MB의 대한민국'이 거꾸로 찍혀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보니, 부제가 아주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울' 덕분에 생긴 연상(聯想)이었습니다. 거울에 비추면, 왼손이 오른손이 되고 오른손이 왼손이 되지 않습니까. 뒤바뀌어 보인다는 얘기입니다.(출판 의도와는 아마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미국은 대통령이 왼쪽에 있고 국가가 오른쪽에 있지만, 한국은 왼쪽에 국가가 있고 오른쪽에는 대통령이 있는 식입니다. '오바마는 미국보다 진보적이지만, 이명박은 대한민국보다 퇴행적입니다.' 이렇게 잘라 말할 수 있겠지요.

1. 현실을 고려해 생각보다는 오른쪽으로 가는 오바마

'그래서?'라 묻기도 전에 지은이 김종철은 이렇게 답합니다. "'대통령으로서' 오바마는 미국의 현실태를 충분히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본인의 진보 성향을 정부 정책에 그대로 나타내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바마에게 크게 기대한다면 실망 또한 그에 걸맞게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오바마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제대로 가늠해 보는 슬기가 필요하다."

지은이 김종철은 미국 대통령 오바마를 두고 그 한계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오바마의 한계가 아니라, 오바마를 둘러싼 조건의 한계일 것입니다. 그런 한계는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에 내장(內藏)돼 있는 모양입니다. 이런 방식이지요.

"독립전쟁으로 세운 미합중국의 초대 대통령(워싱턴)이 엄청나게 많은 노예를 거느린 대지주였다는 사실은 그 이후 미국에서 전개될 역사를 예고하는 주요한 지표였다. 다시 말하면 '아메리카의 비극'이 단시일에 쉽게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근거나 다름없었다."

"오바마 자신이 미국의 건국과 발전은 물론이고 원주민 학살과 흑인 억압에 대해 격렬하게 비판적인 표현을 한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시카고 빈민 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일한 경험 덕분에 21세기에 미국에서 많은 흑인들이 겪고 있는 빈곤과 소외, 범죄와 자학행위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으로 시작해서 연방 상원으로 도약했고, 마침내 대통령이 된 오바마는 미국 역사의 치부와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혁명적으로 사회체제를 개혁하기에는 너무나 조심스러운 현실 정치인이다."

60년대 미국 흑인운동의 지도자 마틴 루터 킹은 대다수 흑인과 꽤 많은 백인들에게 지지와 존경을 받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미국 730개 도시가 킹의 이름을 딴 거리를 두고 있으며 미국 성공회와 루터교회는 킹을 '성인'으로 추대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킹이 박사 학위를 받은 보스턴대의 조사 결과 킹은 여러 사람들의 다른 논문에서 학위 논문 주제의 주요 부분들을 표절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니까 현실은 이렇습니다. 오바마의 좌고우면(左考右眄)입니다. "만약 오바마가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나는 조지 워싱턴이 연방 공직자 전체보다 많은 노예를 소유한 대지주였는데도 그를 국부로 떠받드는 미국이 부끄럽다'거나 '표절 의혹을 받은 마틴 루터 킹 2세를 위한 공휴일을 제정한 것은 미국민들과 세계를 기만한 일'이라고 공언했다면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3등 안에도 못 들었을 것이다."

2009년 6월 16일 백악관. 경남도민일보 사진.


앞선 보기도 있습니다. 진보적이라는 케네디 대통령도 60년대 그렇게 했답니다. 1959년 2월에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친미 독재 바티스타 정권을 축출하고 사회주의 정부를 쿠바에 세웠습니다. 그러자 "케네디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재임 중 중앙정보국이 만든 쿠바 침공 작전 계획을 '확대'해서, 1961년 4월 17일 미국이 훈련한 쿠바 망명자 1500명을 피그만에 침투시켰다.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석 달이 채 안 되던 때였다." 물론 결과는 참패였습니다만. 하하.

또 있습니다. "1963년 6월 11일 저녁 케네디는 전국으로 방송되는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그 유명한 인권 연설을 한다. 1964년에 민권법으로 제정될 내용을 그 때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혁신적인 정책을 실행한 케네디도 공산주의자를 혐의를 받던 마틴 루터 킹을 포함한 수많은 개인들을 도청하라고 연방수사국에 명령했다."

2. 중동 북-미 같은 대외정책도 마찬가지

중동 문제는 어떨까요? "제2차 세계대전 뒤 제33대 트루먼부터 제43대 조지 부시까지 11명의 대통령들보다 오바마가 이스라엘 중동 아랍국들 간의 문제에 관해 훨씬 진보적인 견해를 가졌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건국 역사와 그 이후 60여 년의 팔레스타인 압박 그리고 그 나라가 일으킨 여러 차례의 무자비한 전쟁은 오바마 대통령이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나 다름없다."

이런 말도 일러두고 있습니다. 오바마도 마찬가지라는 얘기입니다. "클린턴은 2000년 베트남을 방문하는 평화외교를 선보였다. 그러나 클린턴이 레이건이나 부시 2세보다 정도는 훨씬 덜하더라도 팍스 아메리카나의 기치 아래 외국의 내전에 개입해서 인명을 살상하라는 명령을 군대에 내린 것은 사실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2월 17일, '악화되는 상황을 안정화시키는 등 긴급한 안보 필요에 대한 대처'라면서 미군 1만7000명을 아프가니스탄에 추가로 파병하는 것을 승인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오바마가 아프가니스탄에 힘을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에너지 주도권을 지키거나 확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3. 그래서 어쩌자는 말이지?

저는 다시 묻습니다. '그래서?' "미국 역사에서 정의나 진리와는 거리가 멀어도 '국민적 존경'을 받는 우상들을 타파하거나 미국을 지배하는 세력이 굳혀온 국제적 우호 관계를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정치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이해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가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과 도저히 깨뜨리기 어려운 장벽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자는 뜻이다."

한 번 더 묻습니다. '또 그래서?' 지은이 김종철은 오바마 자세는 바꿀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오바마 대통령 혼자서 미국의 거대한 기득권 세력과 싸워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끝내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국제사회에서 부시 2세와 다른 면모를 보일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가 넓고 크게 전략적 사고를 하면서 참모들과 함께 겸손한 자세로 약소국들을 대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 아닐까?" "아무튼 미국의 대표인 오바마가 겸손하고 포용력 강한 태도로 국제문제에 접근해야, 주로 미국의 일방주의 때문에 일어난 전쟁과 갈등이 차츰 해결의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중요한 지적입니다. 깡패 나라에 신사가 대통령을 맡았다고 해도 깡패짓을 근본 하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대신 신사가 두목 노릇을 하니 깡패짓도 좀 신사적으로 하고, 이권이 크게 걸려 있지 않은 때는 깡패짓도 좀 덜하려고 할 것이라는 얘기. 그리고 그것만 해도 어디냐는 얘기. 하지만, 읽고 나니 무력감이 '좀' 세게 제 몸을 덮쳐오고 짓누르고 합니다요.

4. 현실 무시하고 오른쪽으로만 가는 이명박

이명박 대통령은 어떨까요? 김종철의 생각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명박이 퇴행적이라는 말은 본인 가치관뿐 아니라 행태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국정을 독선적으로 운영하면서 자신을 정점으로 하는 권력집단을 상명하복식으로 끌어가고 있다. 서민과 복지, 인간다운 사회를 위한다면 민주주의로 기준을 삼아 연합해 맞서야 한다." 현실을 무시할 뿐 아니라 다른 상대방 얘기는 듣지도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김종철은 한미관계를 역사적으로 짚으면서 경제정책과 부자 밀착 정도, 대통령의 도덕성 같은 줄기를 타고 미국과 대한민국 정권을 비교 대조합니다.

"이명박은 정치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 박정희와 맥락이 닿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노무현 정부의 유산을 물려받아야 했다.

얄궂게도, 그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원인 중 하나가 그 유산에 담겨져 있는 '경제적 난제들'이다. 본질은 다르지만 부시 2세와 버락 오바마를 연상시킨다고나 할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여기 나오는 구절 '본질은 다르지만'은 '구실(또는 역할)은 뒤바뀌었지만'으로 고치는 편이 더 맞갖을 것 같습니다만.

견론은 단순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진 것은 '삽 한 자루뿐'이라는 표현은 진중권 특유의 독설이라기보다는 '산업사회를 넘어 산업이후사회, 곧 정보사회로 진화하고 있는' 한국을 '토목공사 시대'로 되돌리려고 하는 그의 경제의식 수준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말이다."

김종철은 덧붙여서 "'부자들을 위한 세상 만들기' '경쟁을 끝없이 강요해서 극소수만 살아남게 하기' '나의 신상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것을 부정하기' '남의 부도덕은 철저히 추궁하고 나의 부도덕은 지워버리기' 같은 고정관념이나 허위의식도 들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대책으로 민주대연합을 내놓았습니다. 소박합니다. 주도권에 목매달지 말고 민주주의 살리기에 동의하는 정당과 사회단체와 학생운동 세력이 결합해서 '겸허하고 헌신적인' 지도부를 구성한다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고 했으니까요. 또 순진합니다. 현실에서 어느 정도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그림이 좋기 때문입니다. 김종철은 87년 6월 항쟁을 일궈낸 기억을 갖다댑니다.

지은이가 내린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많을 것입니다. 저도 그 가능성을 좀 미심쩍어 합니다. 그러나 <오바마의 미국, MB의 대한민국>을 한 번 읽고 나면, 미합중국과 대한민국 정치 현실과 역사 배경에 대해 알기 쉽게 알려주고 정리해주는 구실은 아주 톡톡히 하고 있다는 데 대해 동의하는 사람은 많을 것입니다.

김훤주

오바마의 미국, MB의 대한민국 - 10점
김종철 지음/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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