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뉴미디어

블로거가 지켜야 할 윤리 가이드라인은?

기록하는 사람 2009. 9. 1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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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이었던가? 한 재벌기업 노동조합의 파업을 취재하던 기자들에게 회사측이 지나친 취재편의를 제공해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다. 기자실을 마련해주고 직원을 배치해 커피와 컵라면 등 간식을 제공해주는 정도를 넘어 최고급호텔에 재워주고 세끼 식사까지 대접하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던 것이다. (아마 <한겨레>가 폭로했던 걸로 기억한다.)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상황에서 취재기자들이 그처럼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언론보도의 공정성에 큰 타격을 주었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어서 신문과 방송이 전하는 소식 말고는 진실을 접할 길이 없었고, 그래서 더 배신감이 컸던 것으로 기억된다.

기자 파워 못지 않은 블로거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신문과 방송 외에도 수많은 인터넷언론이 생겨났고, 각종 블로그는 물론 아고라와 같은 인터넷 게시판도 미디어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일부 파워블로그들은 '1인미디어'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웬만한 소규모 지역신문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들이 쓰는 글은 수만~수십만 명이 읽고, 수백~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RSS나 다음 마이뷰, 즐겨찾기 등을 통해 그의 글을 구독하는 고정독자만 수천 명에 이르는 블로그도 적지 않다.

검찰 블로거기자단 모집공고. 원고료도 지급한다고 한다. http://blog.daum.net/spogood/403

블로그의 커진 영향력만큼 그들을 상대로 한 마케팅도 다양하다. 여행사나 항공사, 자치단체들이 블로거들을 초청해 먹여주고 재워주고 구경시켜주는 팸투어는 흔한 일이 되었고, 기업의 신제품 출시 때도 기자 설명회와 블로거 설명회가 따로 열린다.

어떤 기업은 특정 파워블로그와 제휴를 맺어 자기회사 제품의 사용기를 써주는 대가로 적지 않은 원고료를 주기도 한단다. 블로그마케팅 업체를 통해 아예 공개적으로 자사 제품 홍보글을 모집하고 대가를 지급하는 것도 흔한 일이 되었다.

심지어 정부 부처나 정부투자기관, 지방자치단체도 제각기 블로그 서포터즈를 모집해 취재를 지원하고, 활동비 또는 원고료를 지급한다. 시민단체나 노동단체가 블로거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여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기자가 돈(이른바 '촌지')이나 과도한 취재편의를 제공받고 홍보성 기사를 써주는 것은 문제가 되는데, 블로거들은 그래도 괜찮은 것일까?

물론 블로거들은 신문사나 방송사의 기자와 달리 소속된 조직의 직업윤리에 구속받을 필요가 없는 개인이다. 따라서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신문윤리강령이나 실천요강, 광고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할 의무도 없고, 회사의 자체 강령이나 취재준칙, 사규 등을 지켜야 하는 대상도 아니다.

대개 직업윤리란 사회구성원(소비자=언론의 경우 독자 또는 시청자)들이 해당 직업에 대해 기대하는 내용을 반영한다.

따라서 신문사나 방송사는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독자나 시청자의 기대에 부응할 필요가 있고, 그걸 반영한 것이 '공정한 보도'라든지 '금품수수 및 향응금지' 등을 규정한 윤리강령인 것이다. 한겨레나 경남도민일보 등 시민주주신문이 기존의 신문윤리강령보다 훨씬
강력하고 엄격한 자체 강령실천요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는 것도 그들 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와 요구가 다른 신문보다 높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블로거에게 기자윤리를 강제할 순 없지만…

이처럼 신문과 방송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와 그걸 반영한 윤리강령 때문에 언론은 '공정성'을 인정받는 것이고, 그 상품이 가치를 갖는 것이다. 앞서 예를 든 재벌기업의 과도한 취재편의 제공이 여론의 지탄을 받은 것도 기자들이 스스로 윤리강령을 위반함으로써 그 파업 보도에 대한 '공정성'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문사 기자가 원고료을 받고(또는 받을 것을 조건으로) 특정 회사와 회사제품에 대한 홍보성 글을 자기회사가 발행하는 신문에 실었다면 명백한 신문윤리 및 기자윤리 위반이다. 마찬가지로 기자가 법무부나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부처의 블로그 서포터즈가 되어 정책 홍보성 글을 자사 신문지면에 싣는 것도 당연히 용납될 수 없다. 백배 양보해 그런 글을 실어주고 어떤 대가를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해당 신문사가 받아야 할 몫이지 기자 개인이 챙겨선 안된다. 기자는 취재활동의 대가로 이미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로거는 다르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개인자격이고, 그 블로그가 독자의 신뢰를 얻느냐 마느냐 하는 것도 오롯이 개인의 선택이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해 법의 처벌을 받거나 돈을 받고 홍보성 글을 쓴 사실이 탄로나 비난을 받더라도 그건 개인의 책임일뿐이다. 사회고발성 블로깅을 하든, 홍보성 블로깅을 하든 그것 역시 자기 마음이다.

또한 블로거는 언론의 '공정성'을 지켜야 할 의무도 없다. 기자와 블로거의 근본적인 차이는 이른바 '객관저널리즘'이냐, '주관저널리즘'이냐는 것이다. 블로그를 읽는 독자들은 신문이나 방송에서와 같은 '객관적 사실보도'나 '공정성', '불편부당'을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굳이 신문·방송의 뉴스가 아닌 블로그를 보려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을 알고싶기 때문이다. 물론 팩트 자체를 왜곡시켜선 안되겠지만, 블로그에서 왜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대해 공평하게 보도하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다. 또한 너는 왜 원드걸스만 좋아하고 소녀시대는 미워하느냐고 따질 사람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다음뷰나 티스토리, 올블로그 등에서 베스트블로거나 우수블로거쯤 되고 어느정도 파워블로그 대접을 받는 사람이라면 전체 블로고스피어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자율적인 가이드라인 정도는 가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커진 영향력만큼 사회적 책임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란 '블로그를 통해 공개하지 못할 대가나 협찬은 받지도 말자'는 것이다. 기자의 촌지수수나 공짜 해외여행이 독자들 모르게 이뤄지는 것도 그것이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떳떳하다면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최소한의 고지의무는 지켜야 신뢰성 유지될 것

예컨대 나는 신문사 기자라도 (촌지는 어떤 경우에도 안 되지만) 기업이나 행정기관의 협찬·지원을 받아 해외 취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단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것이 충분히 공익에 도움을 주는 가치있는 일이고 내용 또한 알차야 한다. 그게 충족된다면 시민의 세금 일부가 기자의 해외취재에 지원된다 하더라도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대개 공공의 예산이나 기업의 협찬으로 이뤄지는 기자들의 해외취재가 오히려 공공의 이익에 반하거나 내용없는 유람성 여행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기자들도 스스로 그런 문제가 있음을 알기 때문에 떳떳하게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고, 그게 알려졌을 때 비난을 받는 것이다.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지원이나 협찬을 받아 쓴 글이라는 사실을 공개하지 못한다는 것은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떳떳하지 않은 일들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로 만연돼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을 때 전체 블로고스피어의 신뢰성은 한순간에 추락해버릴 수도 있다. 마치 프로레슬링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소문 때문에 그렇게 되었듯이….

따라서 스스로 떳떳하다면 반드시 그 사실을 글 속에서나 글머리 또는 글꼬리에 어떤 지원이나 협찬을 받았는지를 공개하자. 그건 독자에 대한 기본 예의이며,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글의 내용으로 지원과 협찬의 정당성을 평가받아보자.

※ 이 글은 지난 8월 22~23일 2012년여수세계박람회 여수시준비위원회가 1박2일간의 숙식을 제공한 블로거 팸투어에 다녀온 후, 이런 팸투어 방식의 행사 홍보마케팅을 블로거 입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에 대한 뒤늦은 자문과 자성의 결과를 정리해본 것이다. 글로 정리해봐야 겠다는 생각은 하늘바람몰이 님의 블로그 제휴 제안 유혹일까 기회일까 라는 글이 동기가 되었다는 것도 밝혀둔다.

아울러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거나, 내 생각과 다른 분들의 의견도 적극 환영한다. 사실 다른 분들의 생각이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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