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케이티엑스에는 민주주의가 없다

김훤주 2008. 4. 6.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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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백성을 주인으로 삼자는 주의(主義)입니다. 어떤 사안이 생겼을 때, 백성은 대개 다수와 소수로 나뉩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다수의 뜻대로 하면서도 소수 의견이나 권리 또한 존중하고 배려합니다. 바로 다수결 원리와 개개인 인권 보장 원칙입니다.

케이티엑스에는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엄청난 빠르기를 자랑하는 이 열차를 탈 때마다 느끼는 일입니다. 대신 자본의 탐욕이 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케이티엑스 텔레비전에는 연합뉴스가 이른바 콘텐츠를 대주고 있습니다. 뉴스도 있고 교양도 있고 오락도 있습니다. 때로는 도움이 되는 정보가 나오기도 합니다.

한국철도공사(자기네들은 코레일이라 해 달랍니다. 그래야 고상하고 산뜻해 보인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와 연합뉴스가 방송을 하는 까닭은 물어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손님에 대한 서비스가 절대 아닙니다.

방송의 목적은 광고 수익을 올리는 데 있습니다. 여기 광고를 보면 대부분 자치단체에서 하는 것들입니다. 특산물이나 관광지를 홍보하고 있습니다. 광고 수익금은 둘이 일정한 비율로 나눠 갖겠지요.

케이티엑스를 타면 누구나 볼 수밖에 없도록 텔레비전 화면을 배치해 놓았습니다. 열차 한 칸에 앞뒤로 네 개씩, 여덟 개가 달려 있습니다. 손님을 볼모 삼아 광고 수익을 올리는 셈입니다.

문제는, 텔레비전을 보기 싫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도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냥 멍하니 있고 싶은데도, 조용히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 싶은데도, 고개만 들면 화면이 눈에 쏙 들어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여성이 텔레비전에 눈길을 빼앗겨 치어다보고 있습니다.

억지로 차창 밖에다 눈길을 꽂아두지만, 여러 화려한 화면은 여지 없이 눈으로 침투!합니다.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예쁜 여자 잘 생긴 남자가 나오는 화면을 따라가다 보면 자기가 처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까먹기도 합니다.

물론, 이렇게 느끼는 이가 얼마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는 사람은 적지 않은 것 같고, 때로는 편안하게 타고 오가지 못한다는 불만도 나옵니다.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텔레비전이 달려 있지 않는 열차칸을 한둘 만들고, 차표 끊을 때(요즘은 또 이를 두고 '발권'이라 하더군요.) 손님으로 하여금 둘 가운데 하나를 골라잡게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 방송은, 반쪽짜리입니다. 화면만 보일 뿐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수신 장치를 연결해야만 하는데, 이것은 1500원인가 정도 주고 사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사는 사람을 여태 본 적이 없습니다.

승무원한테 까닭을 물었더니, 처음 만들 때 수신 장치에 건전지를 끼워야 되도록 하는 바람에 이리 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수신 장치를 공짜로 마련해 놓는다 해도 때마다 건전지를 손님에게 줘야 하는 번거로움과 돈 듦 때문에 하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케이티엑스 텔레비전 방송에는 보지 않을 권리가 없습니다.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으니 편리함도 없는 셈입니다. 대신, 그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돈벌이가 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텔레비전이 보고 싶지 않은 소수가 있다는 생각은 아예 못 했을 것입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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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KTX열차승무원지부 지음 | 갈무리 펴냄
KTX 승무원이 직접 쓴 진솔하고 감동적인 에세이. 100일 넘도록 파업을 통해 국민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싸우고 있는 KTX 승무원의 삶의 애환을 생생하게 담았다. KTX 승무원의 투쟁에 연대하는 문인 16명의 글도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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