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주완

담배 때문에 후배 여기자에게 혼이 났다

기록하는 사람 2009. 8.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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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편집국 맨 안쪽에 이른바 '골방'이라 불리는 작은 휴게실이 하나 있다. 휴게실이라기 보다는 제보자나 손님이 찾아오면 응접하는 공간이라 하는 게 맞겠다.

오래 전부터 이 방은 '흡연'이 허용되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손님이 없을 땐 편집국 내 골초들이 자주 애용하는 방이기도 하다. 나 역시 하루종일 내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 방을 흡연실로 애용해왔다.

이 방 외에는 바깥 계단 아래에 지정돼 있는 흡연공간에 선 채로 피워야 하므로, 느긋하게 앉아서 창밖을 보며 담배를 즐기기에 좋았다. 나뿐만 아니라 옆 자리의 자치행정부장이나 김훤주 기자 등 몇몇 애연가들도 그 방을 이용해왔다.


바로 저기 보이는 문이 골방 출입구다.


그런데, 이틀 전 오후 6시쯤이었다. 그 시간이면 조간신문의 1차 마감시간이다. 한참 바쁘게 기사 데스킹을 하던 중 흡연욕구가 치솟아 그 골방으로 들어갔다. 급히 한 대를 빼어물고 너댓번 길게 연기를 빨아들인 후 꽁초를 비벼끄고 다시 데스크로 돌아왔다.


그 때였다. 맞은편 시민사회부에 앉아 기사를 작성 중이던 한 후배 여기자가 금방 내가 나왔던 그 '골방'으로 걸어가 문을 열어본 후 다시 닫더니, 내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부장님, 방금 저 방에서 담배 피셨죠?"
"응, 그래."
"저번에 여기자 모임에서도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그 방에서 피워도 담배냄새 다 나거든요?"
"어, 으...으응?"
"여긴 금연건물이기도 하고, 피우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굳어졌다. "그래, 알았다." 후배는 대답을 들은 후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약간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미리 '공지'도 없이, 마치 내가 거기 들어가서 담배 피우는 걸 벼르기라도 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그 후배 여기자는 얼마 전에 나와 함께 그 방에서 마주 앉아 얘기를 하던 중 내가 담배를 피우기도 했던 적이 있었다.


골방 내부 모습. 여전히 재떨이가 놓여 있고, 꽁초가 수북하다.


몇 일 전이었다. 노조 지부장이 넌지시 나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몇시쯤 되면 편집국에서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나요?"
"뭐, 기자들이 대부분 퇴근하고 흡연자들만 남으면 피우는 경우가 있지."
"정XX 부장이 먼저 피우나요? 아니면 부장님이 먼저 피우나요?"
"몰라, 아마 비슷할 걸?"
"그런데, 편집부 여기자들이 판을 들고 내려갈 때 담배 피우는 모습 보인 적 있죠?"
"그럴거야."
"그래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무실에선 좀 자제해주셔야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렇게 그렇게 할께."


그 이야기에서도 나는 '골방'에서까지 피우지 말라는 뜻은 아닌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골방'의 흡연도 문제가 됐던 모양이다. 오랜 관행에 대해 합의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그렇게 지적하고 나선 것도 약간 억울했다.

하지만, 요즘 흡연자는 무조건 약자다. 그냥 깨~갱 하고 물러서는 게 상수다. 괜히 토를 달았다간 '공공의 적'이 되기 십상이다. 아니, 이미 '흡연자'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공공의 적'인지 모른다.

그동안 '흡연권도 권리'라는 논리를 개발해보려고 궁리도 해봤지만 실패했다. 사실 담배 때문에 몸의 피로도가 높아졌다는 느낌도 든다. 기침도 점점 잦아지는 듯 하다.

아~. 술과 함께 내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인 담배. 이놈마저 끊어야 하나, 그래도 꿋꿋이 피워야 하나. 갈등이다.

애연가 여러분! '흡연권'에 대한 뭔가 획기적인 논리를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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