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MB, 왜 결선투표제는 제안하지 않았을까

김훤주 2009. 8. 16.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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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회의원 선거구만 건드린 광복절 경축사

이명박 대통령이 16일 광복절 64주년 경축사에서 '정치 선진화'를 내세웠습니다. 그이는 "정치의 선진화 없이 나라의 선진화는 없습니다."라며 '깨끗한 정치'와 '생산적 정치'를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좋은 말입니다.

'깨끗한 정치'를 두고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여러 번의 정치개혁을 통해 과거보다 깨끗해진 것이 사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불법 자금을 받지 않는 대통령"을 "다시 한 번 약속하는" 한편 "친인척 비리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울러 공직사회 부정·'토착 비리'·'권력형 비리'의 근절 방안도 적극 모색하겠다 했습니다.

이어서 그이는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입니다. 하지만 너무 잦은 선거로 국력이 소모되고 있습니다. 한 해도 선거가 없는 해가 없습니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재보궐 선거 등이 이어지고 그럴 때마다 정치적으로 갈라진 우리 사회의 골은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비생산적인 정치의 뿌리에는 지역주의 정치가 자리 잡고 있"고 "현행 선거제도로는 지역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며 "100년 전에 마련된 낡은 행정구역이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효율적인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있"다는 진단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역주의를 없애길 원한다면 선거제도를 바꿔야" 하며 "행정구역 개편은 제가 이미 여러 번 그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고, 민주당과 자유선진당도 제안한 바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당의 이익을 떠나 정치의 선진화와 나라의 미래에 대해 깊이 숙고하여 정치개혁을 이루어 주시기 바랍니다."고도 했습니다.

2. 선거구 개정만으로 생산적 정치가 될까

선거제도 개정은, 논의 과정에서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을 수 있겠지만 기본에서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통한 소선거구제 타파와 정당명부 투표 도입과 비례대표제 심화 확대로 나타날 것입니다. 또 행정구역 개편은, 제가 보기에 이를 뒷받침하는 구실을 할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정치 선진화가 이뤄질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구를 광역화하고 정당 명부와 비례대표를 확대 도입한다 해도 남는 문제가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입니다. 정치 선진화를 이루는 데는 오히려 대통령 선거제도 개정이 더욱 필요하다고 저는 봅니다.

지난 시기 대통령 선거들과 대통령들을 보면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모든 정치 세력은 사생결단으로 달려들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과 정당은 권력을 다른 세력과 나누지 않고 오로지했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이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왕적으로 굴지 않았는데, 이것은 제도가 아니라 개인 의지에 바탕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3. '제왕적' 대통령이 가장 문제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권력이 다른 정당은 물론이고 집권 여당에게도 제대로 배분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금 보면 아시겠지만, 한나라당에서는 국회의원 공천조차 대통령의 뜻이 결정적 절대적 영향을 받습니다. 또 야당은 '존중'이 아니라 '제압'의 대상일 뿐입니다.

또다른 문제점은,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지배(=통치)가 시스템이나 법률이 아닌, 대통령에 대한 충성 경쟁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대퉁령 중심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 폐해는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검찰 경찰(그리고 독립적이어야 할 법원조차도) 따위의 촛불, 용산, 쌍용차 처리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이 같은 제왕적 권력 행사는, 이른바 지역주의와 함께 우리 사회를 근본에서 더욱 갈라놓습니다. 지금 같은 부자만을 위한 통치에서, 노동자가 통합되겠습니까, 비정규직들이 통합되겠습니까, 아니면 절대 빈곤 상황에 놓인 도시빈민 농민 집단이 통합되겠습니까.

게다가 여기서 뽑힌 대통령은 집권 기간 내내 '소수 대표' 대통령이라는 딱지가 붙습니다. 이명박 당시 후보가 유례 없는 높은 48.7% 지지율로 2007년 12월 당선됐지만, 절반을 넘지(과반) 못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죽 꼽아보면 하나 같이 그렇습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누구도 과반 당선은 못했습니다. 집권 말기로 가면서 집행력이 떨어지는 빌미가 되기도 합니다.

4. 대통령 결선투표제 요구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헌법 개정(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의 주기 조정을 하려면 개헌이 필요합니다.)까지 포함되는 선거제도 개정을 표면에 떠올린 상황에서, 진정한 '정치 선진화'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을 가장 중요한 요구로 앞장세워야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큰 틀에서 보기를 들면 이렇게 됩니다.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창조한국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제각각 후보를 뽑아 선거에 나서 운동을 벌입니다. 1차 투표에서 1등을 한 사람이 투표 인원의 50%를 넘으면 나머지는 깨끗하게 승복하고 그렇지 못하면 1등과 2등이 결선투표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합종연횡이 되는 것이지요.

1등과 3등이 짝을 이룰 수도 있고 2등과 4등 5등 6등과 짝이 될 수도 있습니다. 1등이 3등 4등과 편을 먹을 수도 있고 2등이 5등 6등과 편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정책 연합 또는 야합이 이뤄질 것입니다. 1차 투표에서 2등을 한 후보가 결선에서 역전 당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유권자들 투표 성향도 정책 연합에 따라 갈리겠지요.

어쨌거나, 이렇게 하면 선거 한 판에 사생결단을 하는 행태는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선거 과정에서 바라든 바라지 않든 연합을 할 수밖에 없으므로, '제왕적'인 권력 행사는 줄거나 사라질 것입니다. 또 결선투표를 통한 당선자는 자연스레 과반 대표가 될 수밖에 없기에, '소수 대표'라는 딱지는 절로 떨어질 것입니다.

5. 노동조합은 이미 결선투표를 하고 있다

그러면 많은 이들이 물을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번 경축사에서 '갖가지 선거가 해마다 치러지고 선거 때마다 정치적으로 갈라진 우리 사회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고 했는데, 선거를 한 번 더 하면 비용 문제도 작지 않을 뿐 아니라 갈등만 더 심해지지 않겠느냐?"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대통령의 이번 경축사 해당 발언은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제대로 공부하지 못해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 교과서에는 선거를 하는 효과 가운데 하나가 '통합'이라 이릅니다. 이명박 대통령 발언이 원론적으로는 맞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달리 나타난다는 얘기일 뿐입니다.

이런 현실에 대한 처방은 둘 다가 될 수 있습니다. 쓸데없이 갈등만 부추기는 선거는 줄이거나 한꺼번에 치르는 반면, 보람있고 의미 있는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선거는 늘리자는 얘기지요. 선거가 하나 더 생긴다는 면에서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쓸데없는 갈등을 없애자는 면에서는 부합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결선투표제를 하는 데가 어디 있느냐는 얘기도, 어떤 이는 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러면 그것은 무식한 소리가 됩니다. 노동자 출신 룰라가 대통령으로 있는 브라질도 결선투표를 하고요, 엘리트 출신 보수 정치인 니꼴라스 사르꼬지가 대통령인 프랑스도 그리 합니다.  더 챙겨보면 더 많은 나라가 그리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런 복잡한 투표를 할 여건이 돼 있느냐는 물음도 누군가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충분히 돼 있습니다. 전혀 낯선 제도가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는, 대부분 노동조합에서는 결선투표제도를 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노동자도 하는 민주주의를, 대다수 국민이 할 수 없다고 어떻게 잘라 말할 수 있습니까.

6. 한나라당과 이명박은 당리당략에 충실하지만

이런 제도를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에 제안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결선투표제가 이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이리 한 것은 아닙니다. 잘 알면서도, 당리당략 때문에 하지 않았고, 결선투표가 필요하다고 떠들어대는 다른 정치세력이 없어서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리당략은, 그 자체로는 나쁜 뜻이 아닙니다. 정당끼리 다투는 정치 마당에서, 당리당략을 챙기지 않으면 사리사욕을 챙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정당은, 당리당략을 내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거나 한나라당의 당리당략에는 지금 같은 '단판'이 훨씬 낫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유권자 정치 성향이 보수 대 개혁 대 진보가 1 대 1 대 1 정도 비율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지금 정당 구조에서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고 가정해 봅니다. 한나라당은 과반 지지를 절대 얻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1등은 따 놓은 당상입니다. 단판에서 소수 득표로도 당선이 안전하게 되니까 지금 같은 수구적 통치 행태를 고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민주주의 따위는 개나 먹어라 던져주고 거들떠보지 않아도 됩니다.

한나라당에게 민주주의(특히 절차상 민주주의)는 민주당이나 창조한국당 같은 야당을 끌어들일 때나 필요한 미끼 상품입니다. 이회창의 자유선진당과 연합에는 민주주의가 필요없습니다. 한나라당이 자력으로 당선될 개연성이 크게 낮을 경우에만, 권력 분점을 통해 손 잡을 것입니다. 선례는 1992년 김영삼과 김종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선투표제를 하면 한나라당은 절대 대통령 당선자를 낼 수 없습니다. 1차 투표에서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과 진보신당이 자유롭게 '각개약진'하겠지요. 유권자들은 이들의 각개약진을 이제 더이상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전에는 이것이 한나라당이라는 강적을 앞에 둔 '이전투구'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유권자들에게 이쁘게 보여 2차 투표에 진출하려는 '간택 경쟁'이 되기 때문입니다.

7. 야당들은 죄다 당리당략에 무관심하고

결선투표는 어떻게 될까요? 1등 한나라당과 야당 연합의 대결이 될 것입니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니까, 그리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씀입니다. 1등 한나라당과 야당 연합의 대결을 한나라당이 반기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결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결선투표제를 제안하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반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과 진보신당 같은 야당은, 1등 한나라당과 연합해 맞서면 전혀 나쁘지 않습니다.(적어도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옛날처럼 '제왕적' 대통령 행세를 할 수 없어서 그렇지, 집권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민주노동당이나 창조한국당 진보신당은, 민주당에 끌려다닐 수 있다고 걱정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나마 집권할 수 있다는 측면이 엄청나게 더 크고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이들 정당에게서 대통령 결선 투표제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기껏해야 국회의원 선거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정도뿐입니다.) 정당이면서도 이처럼 당리당략에 관심이 없습니다.(물론 제가 보기에 그렇다는 얘기지요.) 그래 당리당략을 위한 행동도 없다 보니 자기 정당이 다른 정당보다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나 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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