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대운하를 경남에 시범건설하겠다고?

기록하는 사람 2008. 4. 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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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를 하나 내 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대운하에 대한 추진의지가 가장 강력한 정치인은 누굴까? 이명박 대통령일까,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일까?

아니다. 정답은 김태호 경남도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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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경남도지사.

김태호 지사의 대운하 소신

청와대의 입장은 "1년 정도 충분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칠 것이고 여론을 수렴하다 보면 대운하의 장·단점이 나올 것"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입장도 비슷하다. 그는 며칠 전 경남을 방문해 "환경전문가와 경제전문가들이 총선 이후 차분하게 검토하고, 국가에 도움이 되겠는지 파악해서 당·정이 논의하고 국민 여론을 수렴해 결론 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도내에 출마한 한나라당 후보들도 대부분 이런 신중한 입장이다. '반드시 운하를 파야 한다'고 용감하게 말하는 한나라당 후보는 거의 없다.

오직 김태호 도지사만 소리높여 '운하 건설'을 외치고 있다. 그는 총선을 코앞에 둔 지난달 중순 <경남일보>라는 신문에 "경남에서 먼저 대운하를 시범적으로 건설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그 자신도 대운하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은 걸 알긴 아는 것 같다. 그래서 "전국에서 동시에 운하를 건설하는 것보다는 경남에서 시범적으로 건설해 운영해 보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방안까지 제시했다. 말하자면 국민의 반대여론과 우려가 크니까 경남이 먼저 실험대상이 되어 보겠다는 것이다. 경남에서 해보고 문제가 많으면 그만이고, 좋은 점이 많으면 전국으로 확대하자는 말이다.

이건 부작용이 검증되지 않은 약을 경남도민들에게 먹여보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경남도민은 그에게 '실험용 흰쥐'일 뿐이다. 정말 무서운 발상이다.

그러나 80%가 넘는 경남도민들은 그의 실험쥐가 되길 거부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가 3월 19일부터 22일까지 여론조사기관인 'Q&A 리서치'에 의뢰, 도민 4500명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그 결과 '건설해선 안 된다'는 도민이 33.6%, '신중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49.2%였다. 김태호 지사처럼 '건설해야 한다'는 의견은 17.2%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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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번 칼럼(2월 21일 자)에서 김태호 지사에게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질문을 던졌다.

1.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경남은 어떻게 될까. 득이 될까, 실이 될까. 경남도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질까, 아니면 오히려 힘들어지게 될까.

2. 득이 된다면, 그 혜택을 누릴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떤 계층일까. 또한, 피해를 보게 될 지역과 사람들은 어디에 사는 누구일까.

3. 잘 흐르는 낙동강을 파헤치고 둑을 쌓아 물을 가두면 썩게 된다는 데 사실일까. 그렇게 되면 낙동강 물을 식수로 먹는 경남도민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4. 운하를 만들어 강바닥을 깊게 하여 많은 물을 가두게 되면, 우포늪 같은 습지는 말라 없어지거나, 장마철 같은 때에는 범람하게 된다는 데, 그렇다면 정말 큰일 아닌가.

지극히 상식적인 물음이지만, 김 지사는 이에 대한 답변은커녕 '실험적으로 경남에 먼저 운하를 파보자'는 주장만 내놨다.

나는 그보다 앞서 신항 명칭싸움 때도 도지사에게 몇 가지 공개질문을 했지만 역시 답을 듣지 못했던 적이 있다. 내 글이 대답할 가치가 없는 건지, <경남도민일보>를 물로 보는 건지, 답변이 궁색해서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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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도지사가 시범건설하겠다는 한반도 대운하와 남해안프로젝트 연계 구상도.

말이 먹혀들지 않는 시대

지난 3월 28일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이 대전 강연에서 이렇게 한탄했다고 한다.

"말이 먹혀들지 않는다. 말이라는 게 먹혀들어야 가치가 있는 거 아닌가. (…) 운하 논쟁을 보라. 이쪽 질문(반대)에 저쪽(찬성)에서 제대로 대답하는 거 봤나."

김종철 발행인의 한탄은 계속된다.

"(박정희 정권 시절) 군부 독재는 지식인들을 고문하고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때는 그런 방법으로 지식인을 대우해줬다.(대중들 웃음) 존경을 한 것이다. 언어가 무섭다는 것을 그 사람들이 알았던 것이다. 지금은 아예 지식인들의 말에 대답을 안 해 버린다."

나도 지금 김태호 지사에게 김종철 발행인과 똑같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도대체 말이 먹혀들지 않는다.

물론 김 지사가 운하전문가는 아니다. 그래서 스스로 답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운하TF'도 만들었고, '(대운하)민자유치팀'도 만들지 않았는가. 거기 똑똑한 사람들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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