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김주완 '기자정신(?)' 많이 죽었다

기록하는 사람 2009. 7. 1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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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살현장 유골 사진촬영을 포기한 까닭

나는 매주 월요일자 신문의 17면(기획면) 한판을 채워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그때그때의 이슈를 취재해 기획기사를 출고하거나 '김주완이 만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뷰 기사를 내고 있다.


지난 금요일(10일) 알고 지내는 '민간인학살 진주유족회'의 한 회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드디어 유해발굴 현장에서 유골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명석면 용산리에서 진행돼왔던 발굴은 사실상 실패했다. 그런데 문산읍 상문리에서 성공한 것이다. 그는 다음날인 11일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번주 월요일자 기획을 그걸로 잡기로 했다.


다음날 마침 진주 가는 후배의 차를 얻어타고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 법륜골에 도착했다. 카메라 가방을 메고 골짜기로 오르는 길에 발굴책임자인 이상길 경남대교수를 만났다. 그는 대구에 볼 일이 있어 가는 길이라고 했다.

발굴현장을 떠나는 이상길 교수의 뒷모습.


이 교수는 "비가 와서 지금 막 발굴현장을 덮어버렸는데…"라고 했다. 선 채로 유해의 상태 등 몇 마디를 물어본 후, 이 교수를 보내고 현장으로 올라갔다. 예상대로 기자는 나뿐이었다. 진주유족회 회원들이 현장에서 발굴된 유해를 어떻게 안치할 것인지를 놓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함께 논의과정에 참여한 후, 회의를 마치고 일어섰다.


그제서야 남아 있는 발굴팀 책임자(연구원)에게 "덮어둔 방수포를 잠시 들추고 사진 좀 찍으면 안될까요?"라고 부탁해봤다. 예상은 했지만 단호하게 "안됩니다"라고 말했다.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뻔했기 때문이다. 일단 책임자인 이상길 교수의 부재상황이어서 결정권한이 없었고, '특정' 기자에게 먼저 유해를 공개했다간 타 언론사 기자들에게 온갖 원성을 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이상길 교수에게 전화를 하든지, 아니면 싸워서라도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도저히 안되면 발굴팀이 철수하길 기다렸다가 살짝 가서 찍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욕 먹는 건 잠시뿐이다.

하지만 순순히 포기하고 말았다. 타 언론사 기자들보다 단지 시간상으로 좀 더 일찍 보도했다는 게 대단한 특종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다, 그럴 경우 잘 삐치는 기자들의 속성상 발굴팀원들이 괴롭힘을 당할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덮여있는 방수포 중 가운데 볼록한 곳에서 두개골 등 유해 3구가 드러났다고 한다.


특히 이런 역사와 관련된 사안은 센세이셔널한 사진을 좀 더 먼저 보도하는 것보다는, 좀 더 정확한 내용으로, 올바른 의제를 잡아 보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또한 좀 더 많은 매체에서 널리 보도해주는 것도 좋다. 그래서 방수포가 덮혀 있는 현장 사진 몇 장을 찍고 조용히 돌아섰다.


유골 사진은 없었지만, '발굴된 유해 갈 곳이 없다'는 방향을 잡아 20매 짜리 기사를 작성했다. 강병현 유족회장의 짧은 인터뷰도 덧붙였다.

아마 내일자로 이 기사가 나가면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찾는 기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기꺼이 유골 사진은 그들에게 양보한다. 예전 김주완의 무모한 기자정신(?)도 이젠 많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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